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집에 수일 만에 돌아오시자 그를 기다렸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집을 찾았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사람들로 꽉 차있어 발을 디딜 틈도 없었다.
죽음만을 기다리던 사람
그 중풍병자는 그 병이 깊어질 때로 깊어져서 도무지 스스로는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인생이 되고 말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그를 간호하며 돕는 사람들도 지칠 대로 지쳐 소망의 끈을 놓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의 몸은 무덤만이 반겨줄 죽은 몸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그를 메고 왔던 네 친구
그 중풍 병에 걸린 사람에게 아직도 친구가 있었다는 것은 놀랄 일이다. 그 소망 없던 묵은 사람에게 그토록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 중풍 병에 든 사람에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믿음의 친구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가.
그의 친구들은 그 환자를 메어다 갈 침상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가 덮고 있는 오랜 담요의 먼지를 털어내고 튼튼한 끈을 준비했다. 그들은 침상의 모서리마다 끈으로 묶어 고정하고 그들의 어깨에 메었다.
믿음만이 그를 메어 갈 수 있었다
그들은 분명히 예수께 가면 그 친구가 나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예수를 만나고 돌아올 때에는 그들의 친구에게 침상이 필요치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날이 친구가 누운 마지막 날이라고 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믿음은 행동을 유발시킨다.
가자, 지붕으로 올라가자
그들이 도착한 가버나움의 예수의 집에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디가 문이고 어디가 입구인지도 모르게 사람들이 그 집을 덮고 있었다. 그들이 메고 간 침상이 들어갈 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사방이 막혀 있는 그 집 앞에 서서 그들을 위를 쳐다보았다.
하늘은 비어 있었다.
어떤 지붕이건 하늘아래 있다.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믿음의 행동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 망설이는 자는 행동할 힘을 모우지 못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행동 너머의 결과를 본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장 1절).”
그들은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예수가 서 계신 곳으로 침상을 달아 내렸다.
삽시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사게 된 그들의 행동에 감동하신 예수는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중풍 병자를 고치셨다.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는니라
모든 병의 원인이 죄라고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 중풍 병자의 오래된 그 병은 죄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병과 죽음은 인류에게 죄가 들어오고 난 뒤에 생겨난 슬픔들이다.
주께서 그에게 죄가 사하여졌다고 말씀하신 것은 단지 그의 병을 고치시는 것으로 만족치 않으시고 그 병의 근본을 뿌리 채 뽑으심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분은 이 세상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시지 않는가.
그가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나가다
그는 친구들에 의해 그 침상에 누워 예수께 나아왔지만 이젠 더 이상 친구의 도움 없이 자신의 침상을 들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오랜 투병 생활로 인해 그의 몸은 힘이 빠질 대로 빠지고 그의 팔과 다리는 어린 아이들의 것보다도 가늘어져 있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그를 치료하시자 그의 몸은 완전한 건강을 되찾았고 그의 사지는 놀라운 힘으로 가득해졌다.
그의 치유는 그의 믿음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상식을 벗어나 그의 치유는 그의 친구들의 믿음에서 온 것이었다. 그에게는 믿음이 없었을 뿐 아니라 설사 있었다 한들 그것을 표현할 능력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를 사랑했던 그의 놀라운 친구들의 믿음이 그를 구원했다.
믿음이 필요한 사람들
자신을 대신한 그 누군가의 믿음을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어린 아이라든지 의식이 없는 사람, 정신이 온전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죽은 사람들은 믿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그 누군가의 믿음이 필요하다.
귀신이 들려 말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자신의 아이를 예수께 데려왔던 한 남자는 자신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소리쳤을 때 주님은 그를 도와주셨다. 자신의 열두 살 된 딸이 죽어가고 있자 예수께 달려 나온 야이로는 예수를 모시고 자신의 집으로 간다. 하지만 도중에 자신의 딸이 죽었다는 기별을 듣게 된다. 그 순간 야이로의 믿음이 약해진 것을 아신 예수께서는 그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그의 믿음을 붙잡아 주신다.
친구들의 믿음이 있어 그는 치유될 수 있었다
이 세상에는 믿음이 없거나 아예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의식이 없는 사람과 같은,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과 같은, 그리고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특징은 그들 스스로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을 가진 친구들이다. 그들을 메고 주님께 나갈 믿음의 친구가 그들에겐 필요하다.
이 땅의 믿는 자들이 모두 세상을 위해 그런 친구가 될 때 이 땅은 구원의 역사들로 충만해질 것이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이다.
그 친구들의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께로 그 친구를 데려가기만 하면 그 친구의 병이 낫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믿었다. 예수를 향한 그들의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남의 지붕을 뜯었고 그 아래로 친구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믿음에도 수준이 있다.
전능자 앞에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그것은 의사를 찾아가는 발걸음과 다르다. 그것은 그저 상담자를 방문하는 행동과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전능자를 찾아갈 때는 전능자를 감동케 할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가야 한다. 좋은 믿음과 절대적인 믿음은 다른 것이다. 큰 믿음과 절대적인 믿음도 다른 것이다. 절대적인 믿음은 전능자를 향한 결코 흔들림 없는 완벽한 믿음이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받으시기에 어울리는 분이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