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폭의 수채화 속에 새겨진 김 나제즈다 뻬뜨로브나부부

by 김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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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수채화 속에 새겨진 김(金) 나제즈다 뻬뜨로브나 부부

그들이 언제부터 교회에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들을 알게 되었을 때에 이미 그들은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부인인 나제즈다 삐뜨로브나씨는 고려인이었지만 그녀의 남편인 블라지미르 삐뜨로비치 씨는 러시아인이었다. 그들은 둘 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오십 대 후반의 화가 부부였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둘 다 멀리멀리 날아가 버릴 듯한 그렇게 연약해 보이는 부부였다. 실제로 부인은 만성 어지러움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고 남편은 몇 년 전에 당한 큰 교통사고로 인해 심한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것 같았고 언제 보아도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가난한 부부였다. 더러 그들의 집을 방문할 때면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결코 누추해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그림 그릴 물감과 종이가 없어 난처해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 몹시 안타까웠다. 그들이 그린 그림을 시장에 내다 놓으면 팔 수도 있고 그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덜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했다. 마치 키운 자식을 시장에 내어 놓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부끄러워 그림을 들고 시장에

서 있을 수가 없다고도 했다. 단지 그림을 그리는 일만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았다. 그들을 위해 전시회를 한번 열어 주고 싶은 생각이 그들을 만난 이후로 나의 소망이 되었다. 그들이 그린 그림들은 참 훌륭해 보였다. 파스텔화가 많았는데 모두가 그들처럼 따뜻하고 맑아 보였다. 젊었을 때엔 러시아 정교회의 천정이나 벽에 성화(聖畵)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교회의 사무실이나 나의 방에 그들의 그림을 걸어 주기도 했다. 심방을 가겠다고 전화를 하며 차만 마시고 돌아오겠다고 연락을 하고 간 어느 날 고려인 친구가 준 김치가 있는 데 어떻게 밥을 안 차릴 수 있겠느냐고 얼마나 오래되었을지도 모를 시어 빠진 김치를 밥과 함께 내어 놓기도 했다. 심방을 갈 때마다 함께 차를 마시며 그들이 젊었을 때 여행 중에 촬영해 둔 슬라이드 필름을 방의 조명을 온통 끈 채로 설명을 해가며 보여 주었다. 흑해와 혹은 이름 모를 산악 지대를 돌며 배낭을 짊어지고 스케치 여행을 하며 그들이 새겨 둔 추억들을 하나하나 보여 주었다. 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그 이른 모스크바의 봄에 싹이 난 어떤 나무의 가지를 아내를 위해 꺾어 준 남편과 그것을 소중히 병에 꽂아 책장에 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뭉클한 적이 있었다. 나는 항상 그들 앞에서는 부끄러웠다. 그들 앞에 나는 성직자의 옷을 걸치고 서 있지만 그들은 알이고 난 항상 껍데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이들이 나의 교인이 되어있는 것은 참으로 크나 큰 나의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지난여름 시골에 있는 그들의 농가에 나를 초대했었다. 날 위해 샤워장을 만들어 놓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초대에 응하지 못했다. 올여름엔 꼭 한번 가서 그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진솔한 삶을, 그들의 끝없는 사랑을 배우고 싶다. 그들은 모스크바의 해 질 녘의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자작나무 잎처럼 빛나는 사람들이다. 꽃과 같은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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