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사람들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의 말대로 그는 그의 인생을 믿음으로 이끌어 갔다.
고향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그의 나이 일흔 다섯 때에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다. 왜 하필 그를 택하시어 부르셨는지는 우린 모른다.
우린 스스로도 하나님이 왜 우리를 택하시었는지도 설명하기 어렵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듣고 즉각 반응한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아직 보여 주신 게 아니다).”
아브라함은 아직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는 떠날 마음을 정한다.
그는 ‘어디로 갈까요?’라고 묻지 않고 짐을 꾸린다.
성서는 말하기를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나아갔다고 기록한다.
그는 그를 부르심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이고도 완전한 믿음을 가진 채 그의 인생을 몰아간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이유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가 부를 때에 전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을 택하신다.
우린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반응하게 될 때 그분은 우리를 이 시대의 아브라함으로 부르신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과 순종의 사람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내가 너로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
나는 이번 장에서 아브라함의 모든 삶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기근을 만나 이집트로 간 일들, 그곳에서 아름다웠던 아내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받을 것을 우려해 아내를 누이로 속인 사건들은 그저 접어두고자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다 못해 아내의 하녀에게서 아들을 낳았던 일을 새삼 들추므로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할 마음이 없다.
그 이유는 그의 실수를 우린 발견하지만 그는 그것이 그의 한때의 실수였을 뿐 그 일로 인해 그의 삶이 송두리째 파멸에 이르도록 그는 방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 사소한 실수는 그를 위대한 믿음의 거장이 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 후의 그의 놀라운 믿음의 순종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되었고 하나님마저 놀라시고 감탄하시는 것을 우린 목격할 수 있다.
이제 그의 놀라운 믿음의 삶을 찾아 함께 떠나자.
소돔을 위하여 빌다
소돔에는 그의 조카인 롯이 살고 있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나올 때 아브라함은 그의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왔다. 이집트에서 돌아온 아브라함은 다시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곳에선 롯과 함께 동거하는 일에 어려움이 생겼다. 각자의 가족과 가축 그리고 종을 거느린 그들은 피차에 함께 있기엔 그 땅이 충분치 못함으로 인해 아브라함은 롯에게 먼저 아름다운 땅을 선택할 기회를 주어서 그를 소돔 땅으로 분가시켰다.
그런데 롯이 사는 그 소돔 땅이 타락하여 하나님은 그 도시를 유황불로 멸하실 것을 정하시고 그의 사자를 보내 아브라함에게 그 사실을 알리신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나아가 소돔 땅을 살리려 그 앞에 엎드린다. 그 땅에 의인 오십 명이 있어도 그 땅을 멸하시어 그 의인들을 살리지 않으실 것인지를 아뢴다. 그는 하나님의 정의를 앞세워 그 하나님께 자비를 구한다. 사십오 명의 의인을 찾으시면, 사십 명을, 삼십 명을, 이십 명을 찾으시면 그 땅을 어찌하시려는지를 아브라함은 그의 하나님께 끈질기게 여쭙는다.
아브라함보다도 더 그 땅을 살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간구를 받아들이신다.
노하지 마옵소서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아브라함은 끈질기게 소돔 땅의 구원을 위해 그의 하나님께 간구하고 그의 하나님은 그의 종 아브라함의 간구를 다 들어주신다.
“내가 의인 열 명으로 말미암아 그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피나는 흥정은 끝이 나고 하나님은 하늘로 가시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곳엔 의인 열명이 없었다
불행의 땅 소돔에는 아브라함의 예상과는 달리 의인 열명이 없었다. 아니 의인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그것은 내 생각이지만 그 땅에 의인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하나님은 그 땅에 유황불을 내리실 분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과 바꾸고자 하는 열망으로 하나님 앞에서 애처로운 간구를 올려드렸지만 결국은 자신의 조카 롯과 그 딸들을 구원하는 것으로 그 일은 끝이 났다.
아브라함의 도고의 간구는 하나님께 올려지고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것 같은 아브라함의 도고는 하나님이 그대로 받으셨다. 절대적인 공의의 하나님은 죄가 관영한 소돔 땅에 의인 한 명 없음으로 인해 유황불을 내리셨지만 아브라함의 그 하나님을 닮은 마음을 받으시고 그에게 축복을 부어주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구약의 모세와 신약의 바울의 공통점은 그들이 동족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 범죄한 그 백성을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기를 간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 달라고 기도했으며 바울은 자신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한다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조차도 원한다고 고백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들을 하나님처럼 사랑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그렇게 애타게 원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이 땅에서 믿음의 거장으로 살았고 이 땅의 그의 큰 발자취를 새겼다.
그는 단지 소돔에 사는 조카 하나를 살리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애원하지 않았다. 사람 사는 하나의 도시에 유황불이 내린다는 사실에 안절부절못해서 그의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었다.
그것이 그의 삶에 찍힌 거장의 브랜드다.
또 하나의 이야기
백세에 낳았던 그의 아들이삭을 하나님은 번제로 자신에게 바치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물론 그것은 시험이었다.
그를 시험하시는 것은
그를 위해 주실 복이 아직 남았다는 것이다. 축복에는 공짜가 없다.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야고보 사도의 권면 속에는 그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았다. 그는 밤새 고민하느라 한 잠을 못자고 새벽녘에 잠이 들어 늦게 일어나는 보통 사람의 행동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그의 행동을 보면 그가 도무지 그 일로 인해 걱정한 흔적이 없다. 그는 여느 날처럼 일찍 일어나 아무 일 없는 듯이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준비하고 아들 이삭과 두 종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내 생각엔 아내에게 이삭을 번제의 제물로 쓸 것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은 것 같다. 아내와 상의하지 않는 일은 칭찬 받을 만한 일이 못되지만 하나님을 향한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서는 때로 예외도 필요하다는 것쯤은 알아두어야 할 일이다.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그곳을 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은 지금 가족과 함께 2박 3일의 지중해 휴가를 떠나는 길이 아니다. 아들을 죽이러 가는 3일간의 행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할만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것은 필자의 쓸데없는 기우이다.
그는 꿈쩍도 않고 아들을 제물로 바칠 하나님이 일러 준 그 산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
내 아버지여,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삼일간의 여행 끝에 모리아 산 아래에 이르자 아브라함은 종들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번제에 쓸 나무를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양손에 들고 산을 오른다.
그때 어린 아들 이삭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반짝이는 두 눈으로 묻는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어린 양을 잡아 번제를 드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란 아들 이삭은 어린 양 없이 번제를 드리러 가는 아버지가 이상스러워 물었다.
또 한번 필자가 가슴을 쓸어내릴만한 상황을 맞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사랑스런 아들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거짓말도 참말도 아닌 대답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나님을 향하여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아니했던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의 대답은 그 눈망울 맑은 아들에게 실망을 안기지 않는다. 어린 아들 이삭을 향해 아브라함이 뱉은 말이지만 신실하신 그의 하나님이 그 말에 대해 책임을 지신다.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하나님이 일러주신 그곳에 이른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제물을 태울 나무를 그 위에 벌여 놓았다.
그의 준비는 끝났다.
이제 하나님이 지정해주신 제물만 그 위에 놓고 불로 사르면 그 제사는 끝이 난다.
그 어린 양은 다름 아닌 그의 아들 이삭이지만 말이다.
그 때는 오고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았다.
사탄은 망설이고 엄살을 부리는 자를 주목한다. 그리고 그를 삼킨다.
아브라함은 아들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아브라함은 그때에 눈물을 흘리거나 눈이 빨개지지 않았다.
“오늘 번제에 쓸 어린 양은 바로 너로구나.”
이삭은 놀랐지만 이내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도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던가.
반항하기는커녕 아버지를 도와 자신이 그 제단위의 벌여진 나무위로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하나님의 입가엔 미소가 사탄의 이마엔 식은땀이 나는 순간이다.
망설임 없는 아브라함이 지체 없이 칼을 든 손을 아들을 향해 내리 꽂으러 높이 쳐들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놀라신 건 하나님이다. 다급해지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연거푸 부르셨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하나님도 놀라셨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브라함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러실 줄 알았다.’는 투로 그분의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그는 음식점에서 손님이 부를 때 달려오는 웨이터처럼 ‘또 어떤 말씀이든 하시면 따르겠습니다.’라는 태도로 하나님께 귀를 기울였다.
산을 내려오며
하나님이 예비해주신 수풀에 걸린 숫양을 잡아 번제를 드리고 산을 내려오는 부자(父子)는 서로 말이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하여 아들마저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 아브라함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의 믿음에 순종하여 자신을 죽음의 자리에 내 놓았던 아들 이삭은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과 신뢰를 마음 속 깊이 나누며 그 산을 내려 왔으리라.
그리고 그 사랑스러운 두 사람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가문을 들어 더 큰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려 그들을 축복하셨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리우시기를 기뻐하셨던 이유는 그날 그 산에서 일어난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히브리서의 저자는 아브라함이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번제로 드린 이 일에 대하여 ‘그는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릴 줄로 생각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이 그 아들 이삭을 죽인다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를 분명히 살릴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더 이상 할말을 찾을 수가 없다. 그에 그 위대한 믿음에 대해 나는 더 이상 할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