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계획은 아시아를 돌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지만 성령님은 그 길을 막으시고 환상을 보이시어 그 길을 돌려 마케도니아로 가게 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를 경유하고 네압볼리를 거쳐 빌립보로 향하고 있었다.
기도하러 가다 하나님의 일을 만나다
마케도니아의 첫 번째 도시인 빌립보(현재의 그 도시명은 ‘빌립비’이다)에 도착한 그들은 첫 번 안식일을 맞아 기도할 곳을 찾았다. 어느 도시건 유대인 남자 열명이 거주하는 곳이면 그들은 회당을 세운다. 그렇지 못한 도시에는 유대인들 위한 기도처소를 마련한다.
그들은 그 기도처소를 찾기 위해 강가에 앉아있던 여자들에게 묻게 되는데 그때 그들은 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라는 한 여자를 만나 복음을 전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다. 그들은 기도하러 가다가 루디아를 만났고 그를 구원시킨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하러 성전으로 가다가 성전 문 곁에 앉아있던 지체장애자를 만나고 그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운다.
그로인해 루디아는 주의 전도자들을 자신의 집에 기쁘게 초대하여 그들을 그곳에 머물게 한다. 빌립보 교회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전도자들의 주요 사역은 기도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들을 기쁨으로 사용하신다. 그들은 또다시 기도하러 가다가 귀신들린 한 여인을 만난다. 그 여인은 귀신이 들려 그 귀신의 힘을 받아 점을 치게 된 악한 영의 종이었고 그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매여 있는, 육신으로도 종이었다. 더군다나 한 사람에게만 종 된 여인이 아니라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나 여인은 여러 사람들에게 매여 있는, 주인이 여럿 있는 종이었다.
그녀가 소리 질러 이르되
귀신들린 그녀는 바울과 그 일행을 여러 날 따라 다니며 소리를 지른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귀신들린 사람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조심스럽지만 위의 말은 귀신이 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 여인은 비록 귀신들려 그 같은 일을 했지만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났을 때에 그들이 누군지를 귀신의 능력으로 알게 되었고 그 귀신에게 매여 고통 하던 여인은 그의 의지적으로 진리를 실토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친 사람이 아니었고 평상시에도 일반인과 대화가 가능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점을 봐주고 그들의 삶에 관한 조언을 했던 것이다.
사탄의 나라에는 혼란이 있다
사탄은 큰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전능(全能)하지 않다. 그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전지(全知)하지 않으며 현재에도 많은 공간을 자신의 소유로 지배하고 있지만 하나님처럼 그는 편재(遍在)해 있지도 않다. 그리고 사탄의 왕국도 막강한 조직을 가지고 있지만 그 조직은 항상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어둠이 빛을 만나면 산산이 부서지듯 악한 영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면 쫓겨나게 되어있다.
늘 무덤 사이에서 거처했었던 군대 귀신 들렸던 거라사 지방의 남자도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으며 엉겁결에 돼지 떼들에게 들어가서 살게 해 달라고 해 놓고선 모두 물에 들어가 몰사하기도 했다.
빌립보의 한 여인을 사로잡아 그의 종 삼았던 사탄은 그를 완벽히 통제하지 못했다. 그녀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 얼쩡거리는 바람에 그녀를 붙들고 있던 귀신은 쫓겨나게 되고 그녀도 더 이상은 점(占)을 치지 못하게 되었다.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자신들의 종이었던 그 여인에게서 귀신이 떠남으로 그녀가 더 이상 점을 치지 못하게 되자 그녀의 주인들과 그들이 동원한 무리들이 일어나 바울과 실라를 거짓으로 모함하여 그들을 도시의 상관들에게 넘긴다.
내 생각에는 그들이 그 도시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바울과 실라를 벌하게 했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그 도시의 통치자들은 적법한 법적인 절차를 통하지도 않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흉악범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지 않는다.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그날 그들이 맞은 매는 사십에 하나 감한 태장이라고 말하는 신학자들도 있고 그보다 많은 매를 맞았다고 주장하는 이들로 있다. 어쨌든 그날 두 사도는 옷을 찢기어 벗겨진 채 수 없는 매를 맞았다. 그리고 그 혹독한 매로 고통을 주었으면서도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보내주지 않았다. 도리어 깊고 깊은 옥에 그들을 가두고 그 복음의 신을 신은 그 귀한 발에 차꼬를 채웠다.
아무 잘못도 없이, 도리어 악한 영에 사로잡히고 물질에 눈 먼 사람들에게서 종노릇했던 불쌍한 여인을 구원한 그들은 그날 목숨이 흔들리는 참혹한 고통을 받고 아무도 찾아올 수 없는 깊은 감옥에 투옥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그 위대한 종들은 그저 그 밤을 고통으로 신음하며 긴 한숨을 몰아쉬며 길고 긴 고통의 밤을 보내지 않는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그 밤이 어떤 밤이었던가. 모진 매를 맞고 지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게 차꼬가 그 발을 붙들고 있던 그 밤에 그들은 몸을 일으켜 주님께 기도하고 그 이름을 찬양한다.
나는 바울의 그 기도가 그저 빨리 석방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었고 실라의 그 찬양이 고통을 잊어보려 그저 흥얼거리는 단조풍의 노래가 아니었음을 확신한다.
도리어 바울이 드린 그 기도는 주의 백성들을 박해하던 박해자에서 주의 이름을 위해 박해받는 하나님의 종 된 것을 감사하는 기도였을 것이고 믿는 자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던 그가 이제 갇힌 자되어 주의 이름 부르는 자가 된 것이 감격스러워 드리는 기도였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 기도가 깊어져 하늘을 향한 그들의 영혼이 뚫렸고 그 뚫려진 영혼 사이로 찬양이 흘러나와 그날 밤의 찬양이 그 온 감옥을 적셔놓았다.
어찌 그들의 기도를 주님이 듣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그들이 올린 찬양을 받으시지 않을 수가 있겠는 가. 그들이 드린 기도와 찬양이 하늘의 보좌를 흔들었고 그날 그 놀라운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은 그들이 갇혀있는 감옥을 흔드셨다.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더 이상 가둘 수 없었던 감옥은 지진으로 흔들리고 문이 다 열렸으며 모든 쇠사슬이 죄수들을 다 풀어놓았다.
빌립보의 악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세상의 온갖 방법을 동원해 무죄한 이들을 때리고 가두었지만, 두 사도는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들처럼 그저 맞고 찢어진 육체를 그들이 아무렇게나 던지는 대로 굴렀지만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그들의 하나님은 그 밤을 그냥 넘기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자신의 종을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을 위해 그들과 함께 매 맞고 찢기셨다. 그 종들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그분은 그날 밤 친히 임하셔서 그 영광을 드러내셨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한밤중에 졸다가 깨어난 어제의 그 간수는 감옥 문이 열린 것을 보고 자결하려 하였다. 당시의 로마법은 간수가 죄수들을 지키다 그 죄수들이 탈출하게 되면 탈출한 죄수들의 죄를 그 간수가 지게 되어 있었다. 혹독한 매로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 힘들었던 바울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친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28절).”
구원받지 못한 영혼의 안타까운 죽음을 그대로 볼 수 없어 바울은 생명을 사랑하는 전도자의 심정을 입으로 내뱉어 그의 죽음을 가로 막았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한 마리의 어린 양을 찾기 위해 온 벌판과 골짜기를 헤매는 목자처럼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생명을 다시 얻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온맘다해 생명을 구하는 사람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자신의 인생처럼 그날 밤을 졸고 있던 간수가 정신 차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고 묻는 그의 삶의 목마름을 향해 바울은 이 한마디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 혹독한 매를 견뎠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구원키 위해 자신의 종이 고난당하는 것을 막지 않으셨다. 바울과 실라를 통해 빌립보의 간수와 그 가족을 구원하고 고난당한 종들을 하늘의 복으로 채우시기 위해 주님은 그날 밤 빌립보에 임하셨다.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사역이나 지역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이 복음 전하는 것과 관계없는 일이라면 그 행위들은 의미가 없다.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짓고 빵을 나눈다 하더라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복음을 노골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상과의 타협이다. 그것은 돈 낭비이고 시간 낭비이다.
우리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단 일 초라도 복음을 전하는 일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 벳세다 들녘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도 당신께서 세상의 영혼을 살리는‘생명의 떡’임을 알리시는 일이었고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던 나사로를 살리신 것도 그분만이 이 땅의 ‘생명’이심을 선포하신 사건이었다.
감옥의 바울은 그날 영혼의 도움을 청하는 간수에게 자신이 죄 없이 매를 맞았음을 변명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찢겨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그런 것들은 영혼이 목마른 그 간수를 구원하기에는 너무나도 구차한 것들이었다. 일단은 사람을 살려놓아야 한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만날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황급히 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고 성령님이 주신 능력으로 그를 살려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한마디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이다. 일년이 다 가도록 자신의 입으로 이 귀한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받을 사람은 아니다.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생명
바울과 실라가 그날 맞았던 모진 채찍은 한 생명을 살려내기 위해 지불한 대가였다.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매달려 흘리신 피가 인류를 구속한 값이었듯이 그날 그의 종들이 당한 고통과 울부짖음과 신음이 한 생명과 그 가족을 살리는 희생이었다. 우리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한 마디를 외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날이 새매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그 역사적이었던 날의 통이 트고 전날 사도들을 참혹한 고통으로 이끌었던 그 도시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부하를 보내어 사도들을 석방시키려 했다. 자신들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 될 말이다. 때릴 때는 언제고 ‘평안히 가라’는 말은 또 무언가.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했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공중 앞에서 때리고 가두었다가
당시의 로마법은 어떤 경우에도 로마 시민권자들은 적법한 재판 절차 없이 때리거나 구금할 수 없음을 명기해 놓았다.
두 사도가 로마 사람임을 알았던 그들은 심히 놀라고 두려워했다. 전날 두 사도를 죄인 취급하고 노예처럼 대했던 그 도시의 상관들은 친히 와서 용서를 빌고 아무 일없이 그 도시를 떠나주기를 부탁했다.
그들은 매를 피할 수 있었다
전날 그들을 위협하고 때리려 할 때 그 두 사도가 자신들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혔다면 그들은 단 한대의 매도 맞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도는 고난을 비껴가려 하지 않았다. 그들을 마케도니아로 인도하셨던 그들의 주님을, 기도하러 가는 길에 귀신들린 여인을 만나게 하셨던 그들의 주님을, 그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게 하셨던 그들의 주님을 그들은 신뢰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했던 자신들의 주님을 본받아 자신들을 고난으로 이끄시는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자신들의 앞길을 맡겨드렸다.
어떻게 해서라도 어려움을 피해 갈려는 사역자들이 많은 이 땅에서 더 이상의 구원받는 빌립보의 간수가 없는 이유를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나는 끝으로 나의 영으로 기웃거린 빌립보 감옥의 그 위대한 거장들을 보며 내가 적었던 시를 독자들에게 바치며 그 놀라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맺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