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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윗 Nov 05. 2021

오, 한나!

한나와 엘가나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무자(無子)함에서 오는 실패감과 자신의 다른 아내로부터 조롱당함으로 인해 날마다 눈물의 세월을 보내는 아내에게 더 이상 아들 타령을 관두고 열 아들 보다 나은 남편인 자신을 보며 살아달라고 아내의 젖은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기적인 남편의 제안이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내의 고통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아이가 없었지만 그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내는 날마다 눈물로 삶을 이어갔지만 그의 입가에는 늘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남편은 눈물이 음식이 된 아내를 향해 더 이상 울고만 세상을 살지 말고 자신과 함께 좋은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자주 말했다.      

그것은 아내의 행복을 진심으로 염려해서가 아니라 날마다 울음을 보이는 아내가 보기 싫어 좋은 세상을 즐기며 살아가자는 은근한 협박이었음을 아내도 모르지 않았다.      

한나는 남편을 미워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인생을 그저 남편의 겉 다리가 되어 그렇게 방치되는 것을 용납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불행의 구석을 남편의 위로나 금전적 보호로 상쇄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 한나


   많은 어리석은 여자들과는 달리 한나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에게 당한 시련을 극복하기를 원했다. 그녀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자신의 자궁을 그대로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식 없음으로 인해 생긴 불행을 자식 대신 다른 것을 찾으므로 그의 불행의 틈을 메우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 불행의 중심을 쳐 들어가 그것을 기어이 물리치고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행복을 얻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증오의 길목에서 하나님을 보다     

  한나는 더 이상 남편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남편을 통해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지만 그것이 남편의 능력 안에 있는 것이 아님을 한나는 알았다.     

그리고 한나는 날마다 자신을 격동케 하는 남편의 다른 아내인 브닌나를 향해 증오의 칼을 갈지도 않았다. 자신을 조롱하는 이는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자신으로 하여금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길을 막는 자가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자식이 없음으로 인해 그녀가 조롱한 것이지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앞에 서다     

  한나는 하나님을 기억했다. 매년 성전의 제사에 참여하는 예배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그 하나님 앞에서 한 영혼으로 서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고통을 아실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새 생명을 주실 분도 그분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서원의 문을 들어가다     

  한나가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사무엘상 1장 11절).”     


하나님의 아이를 구하다     

   한나는 이제껏 남편의 다른 아내처럼 자신도 아이를 갖기를 원했다. 자신도 아이를 낳아 젖을 물려보기를 원했고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고 장터를 돌아다녀보기를 간절히 원했다.      

한나는 여느 여인처럼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한나는 기도를 바꾸었다.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한 아들이 아니라 보란 듯이 안고 다녀볼 자신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께 낳아 드릴 하나님의 아이를 한나는 구했다.     


위기속에서 내린 결단      

   한나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몸을 알았다. 그녀도 그렇게 세월 속에 있다보면 곧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할 노쇠한 몸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평생을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성으로, 늙어 줄을 때까지 무자한 여인으로 살아남는다는 사실이 그녀를 두렵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드디어 마음을 바꾸었다.      

한번만이라도 아이를 낳아볼 수 있다면, 한번이라도 자신의 태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아이를 낳아 도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울며 부르짖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아이를 구하다     

   사실 하나님도 이 세상에 보낼 아이가 필요했다     

당시 ‘실로’라는 성읍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다.

그곳에는 연로한 제사장 엘리가 있었고 또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젊은 제사장으로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더 이상 필요한 제사장이 아니었다. 그곳의 젊은 두 제사장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을 이용했고 심지어 성전에서 봉사하는 여성들을 그들의 노리갯감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엘리 제사장은 자식을 하나님보다 소중히 여겨 불한당 같은 자식들을 향해 제대로 호통 한 번 치지도 못하는 불쌍한 아버지였다.      

이미 하나님은 그 성전의 제사장들을 일시에 제거하시고 새로운 제사장을 세우시기를 계획하고 계셨다.     


서원으로 드린 한나의 기도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사무엘상 1장 11절).        

한나가 평생의 눈물을 모아 올려드린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고 진실로 올려드린 그녀의 값진 서원은 하나님의 때를 맞추었다.        


그녀를 생각하신 하나님     

   그녀의 기도에서처럼 하나님은 그녀를 생각하셨다. 그녀가 그간 흘린 눈물을 보셨고 그녀가 평생을 올려드린 기도를 기억하셨다.


드디어 아들을 낳다     

   서원을 올려드린 실로의 성전에서 돌아 온 그녀가 남편과 함께 동침함으로 인해 그녀의 태속에는 새 생명이 잉태되었다.      

한나는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했다.     


사무엘

-‘내가 그를 하나님께 구하였다.’     

    사무엘은 한나가 눈물로 낳은 아들의 이름이었다. 그의 결단의 열매인 서원으로 기어이 낳은 아들의 이름이 사무엘이었다. 그녀가 하나님께 구하여 얻은 아들의 이름이 사무엘이었던 것이다.     


꿈을 꾸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있어야 할 이름사무엘         

    인생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사무엘이 있어야 한다. 인생의 고통에 파묻혀 쓰러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사무엘이 있어야 한다. 극한 인생의 고난 속에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입술에는 사무엘이란 이름이 떠나서는 안 된다. 


사무엘은 인생의 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불러야 할 이름이다.      

사무엘은 우리의 인생에서 찾아내야 할 우리의 권리이다. 그 권리는 우리의 적극적인 영적 활동인 서원으로만이 얻어낼 수 있는 값비싼 보석이다.     


역전 인생     

   한나는 사무엘을 낳으므로 그녀를 둘러싼 인생의 고통을 물리쳤다. 그 아들로 인해 그녀를 붙들고 있던 모든 치욕은 그녀를 떠났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향해 무자한 여인이라 말할 수 없었고 그녀의 뒤를 대고 저주 받은 여인이라 소리칠 수 없었다.      

그녀는 비로소 웃을 수 있게 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의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머니의 이름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은 그가 올려드린 서원으로 얻어낸 값진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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