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가스카르는 생각보다 먼 곳에 있었다. 아프리카대륙이 아닌 인도양에 홀로 떠 있는 아프리카였다.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에 한국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하루라도 빨리 마음껏 골프를 연습할 욕심이 컸다.
항공기의 직항노선이 없는 마다가스카르행은 몇 나라를 경유해야만 했다. 우리는 두바이와 모리셔스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택했다. 항공료는 꽤 비쌌다.
모아둔 돈이 있을 리 만무한 우리는 우리 가족의 유일한 직장인이었던 스무 살을 갓 넘긴 아들 다윗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찌 모아둔 돈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가 있겠는가. 배움에도 때가 있다면 지금이 적기인데 돈이 우리 길을 막게 해서는 안되지 않은가.
두 딸의 오빠인 다윗은 고맙게도 난생처음 대출을 받으면서도 함께 기뻐했다.
멀고도 먼 땅 마다가스카르
한 밤중에 인천을 출발한 항공기는 9시간을 훌쩍 넘긴 비행 끝에 현지시간 이른 새벽에 우리를 두바이국제공항에 내려놓았다. 그곳에서 17시간을 기다려야 두 번째 경유지인 모리셔스행 항공기를 탈 수가 있는데 우리는 공항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두바이는 우리의 목적지도 아닐뿐더러 여비를 아껴야 했다. 비스듬히 누울 수 있는 긴 의자에 기대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마다가스카르를 마음에 그리고 있었다. 거저 그 길목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새벽부터 기다린 그곳에서 자정을 넘긴 후에야 탑승한 모리셔스행 항공기는 다음날 이른 아침에 모리셔스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시우사구르 람굴람 경 국제공항에 우릴 내려놓았다. 모리셔스에서 열 시간 가까이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있어 아름다운 섬나라인 모리셔스를 두 딸에게 보여주고 싶어 시내로 나가보려 했지만 체류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모리셔스의 입국은 거절되었다.
우리는 다시 그 낯선 공항 면세구역에서 아홉 시간 반을 체류했다. 두 번의 밤을 항공기를 바꿔가며 타고 날아왔지만 마다가스카르는 아직 먼 곳에 있었다. 살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는 모리셔스의 면세점을 골프라운딩을 하듯이 돌고 또 돌았다.
2박 3일 만에 도착한 마다가스카르
골프백 두 개와 이민가방 세 개를 가득 채운 짐을 카트에 싣고 공항을 나서며 난생처음 만난 마다가스카르의 하늘은 맑고 사랑스러웠다. 머물기로 한 호텔로 가는 길은 마치 EBS 방송의 세계테마기행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좁은 도로를 달리는 검은 연기를 내뿜는 오래된 자동차들, 등에 혹이 달려있는 혹소 두 마리가 끄는 수레, 맨발의 남자가 끌고 달리는 짐을 가득 실은 수레들......
아, 여기가 마다가스카르로구나. 남반구인 마다가스카르는 여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앞으로 세 달 동안을 살아야 할 이곳 마다가스카르는 우리가 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치 내가 보냈던 1960년대와 비슷한 세상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있었다.
마중을 나올 페친이 잡아놓았다는 호텔에 도착했을 때에 그곳에는 빈 방이 없었다. 늘 한산한 호텔이라 호텔이라 예약을 안 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호텔로 우리를 인도했다.
쓰레기 더미 앞에 있는 호텔
첫 날밤은 보내고 일어난 이른 아침에 눈을 떠보니 호텔 바로 길 건너편에는 쓰레기가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서 닭은 모이를 쫓고 있고 강아지들은 먹이를 찾아 쓰레기더미를 헤집고 있었다. 쓰레기차가 와서 쓰레기를 쏟아놓으면 사람들이 달려들어 쇠붙이나 비닐과 플라스틱 조각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큰 저울을 두고 즉석에서 쇠붙이나 비닐류를 달아 매입하는 사람도 먼지를 마시며 앉아있었다.
식당을 겸한 호텔에서 당분간 지내며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지만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과 쓰레기장에서 날아드는 악취는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이곳에 놀러 온 것이 아니고 휴가를 즐기러 온 것도 아니었지만 너무 빨리 이곳 마다가스카르의 뒷마당을 본 것이 아닌가 해서 마음이 저려왔다.
Golf du Rova(언덕 위의 골프장)
다음날 골프장을 찾았다. 얼마나 기다리며 꿈꾸어왔던 곳이던가. 그리고 페친이 구해 놓았다는 우리가 지낼 골프장 부근의 셋방을 빨리 보고 싶었다. 당장에라도 옮겨야 경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골프장에서 가까운 내리막 도로의 비탈길에 서 있는 우리가 지낼 셋방의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다 돌아온 페친은 이미 그 집이 나갔다 한다며 자동차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꽤 오래 살았다는 그는 현지사람이 되었는지 그 후로 그도, 나도 셋집에 대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호텔에서 골프장은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산을 깎아 만든 골프장은 지대가 높은 곳에 있었다.
마다가스카르의 유일한 18홀 정규 골프장이다. 겨울을 끝내고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고 있는 건기의 골프장의 페어웨이는 바짝 마른풀들 덮여있었고 여기저기 패인곳은 붉은 흙이 드러나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린은 말 그대로 푸르렀다. 물이 귀해서 그린에만 물을 준 것 같았다.
첫 라운딩
페어웨이가 말라서 딱딱해져 있어 드라이버샷은 런이 길었고, 아이언 샷을 칠 때마다 붉은 흙먼지가 꽃처럼 피어올랐다. 공이 그린을 때리면 공은 여지없이 그린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연신 물을 들이키며 라운딩을 마쳤을 때엔 장갑이며 골프화며 하얀 티셔츠는 붉은 먼지로 물들어있었다.
이곳에서 골프연습이 가능할까. 이곳에서 익숙해진 골프기술이 우리나라의 골프장에서도 효과가 있을까.
혹여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아님 이런 곳에서 연습을 하면 다른 골프장에서는 쉬워질 수도 있을까. 뒤섞인 여러 생각들을 하며 호텔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두 딸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우린 아직 시차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린 두 딸의 어깨에 골프채를 짊어지우고 이렇게 먼 곳 아프리카까지 이끌고 온 이 아빠는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딸들이 이곳에서 행복하고 여기온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붉은 먼지를 많이 마셔서인지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잠에 빠진 딸들을 보며 머릿속 생각은 온통 뒤엉켜 있었다.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