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작년에 마다가스카르로 와서 처음 골프장을 찾았을 때에 곳곳에 뿌리내린 웅장한 자카란다 나무는 자주색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난생처음 보는 자카란다 나무는 그 후로도 우리가 햇빛 내리치는 골프장에서 얼음물을 들이키고 헉헉거리며 적응할 동안 꽃이 지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그 자카란다가 다시 일 년 만에 우리에게 안부를 전하듯 골프장 여기저기에서 반가운 꽃을 피우고 있다. 자카란다는 꽃잎이 떨어지면서도 또 피어나기를 반복해서 개화기간이 가장 오랜 꽃들 중의 하나라고 한다. 우리도 꽃을 피우되 가장 오랫동안 세상을 물들이고 싶다.
하루를 천 년처럼, 천 년을 하루처럼
어제 같은 오늘을 변함없이 매일 걷는 길을 걸으며 매일 열여덟 개의 그린을 향해 한아름 희망을 안고 골프채를 휘두르며 열심히 땀을 흘리는 와중에도 문득문득 고단한 육체는 투정을 부린다. 두통을 동반한 몸살이 잊을만하면 찾아든다. 이유도 원인도 모르는 채 흐르는 황금 같은 시간을 거저 손가락도 꼼짝 못 하는 고통을 주며 우리를 붙들어놓는다. 그 아까운 시간 동안을 연습을 할 수 없는 것이 뼈 아프다. 그러다 끝까지 우릴 떠나지 않을 것같이 괴롭히며 깊은 안타카움으로 몰아넣었던 몸살은 고맙게도 또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여기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쉽게 죽는다. 얼마 전에도 우리 골프백을 간혹 매던 캐디의 아내가 병원을 몇 번 오가더니 착한 남편과 어린아이들을 두고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혼자가 된 그 캐디는 다음날 골프백을 메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공을 따라 페어웨이를 누빈다.
우리도 한동안 아프고 나면 다시 골프백에 걸려있는 쪼그라든 장갑을 펴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티박스를 향해 걸어가 힘껏 티샷을 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Merry Christmas
다윗과 마리아는 서너 달 남은 크리스마스까지는 꼭 제로 핸디캡에 이르겠다는 다짐을 하며 매일 이른 아침 고단한 육체를 깨우고 집을 나선다. 작년부터 신축을 시작했던 클럽하우스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완공하여 멤버들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12월에 있을 마다가스카르 챔피언십이 끝나고 있을 시상식은 예쁘게 꾸며진 완공된 클럽하우스에서 했으면 좋겠다.
나는 마리아와 다윗이 그날에 챔피언이 될 것을 믿는다.
무얼 먹을까, 무얼 마실까
하루 세끼를 걸러지않고 꼬박꼬박 잘 챙겨 먹지만 매번 무얼 먹을지가 늘 과제다. 나는 오랫동안 요리를 했지만 한 밤중에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드는 새벽 꿈속에서는 늘 요리를 한다. 부엌 한편에 서 있는 이른 아침에 여는 키 작은 냉장고엔 늘 물이 흥건하다. 한밤중에 늘 있는 정전으로 인해 얼었다 녹았다 하는 가엾은 냉장고는 이틀 치 식재료를 보관해 주질 못한다.
오늘은 어제 장을 보지 못해 도시락을 못 싸왔다. 이른 아침에 시작한 라운딩은 채 점심이 되기 전에 끝이 나지만 이미 그때는 시장기가 아이들을 흔든다. 갈등하지 않고 25분 거리에 있는 본죽으로 간다. 다윗은 돈가스를 시켰고 마리아는 치즈라면에 참치삼각김밥을 주문했다. 무엇보다도 행복한 시간이다. 본죽이 없었으면 지치고 시장한 아이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이리저리 다니며 고민을 할뻔했다.
다시 돌아와 숏게임을 연습하는 아이들에게 저녁은 뭘 먹을까 물으니 다윗은 하던 칩샷을 멈추고 돈가스를 외친다. 그래 오늘은 밥 안 하련다. 저녁에도 본죽으로 가자.
이번 금요일에는 아는 선교사님께서 운영하시는 고아원에 초대를 받았다. 바비큐로 모두가 즐거운 점심식사를 한 후 우리 셋이서 콘서트를 연다. 다윗의 기타 반주에 마리아와 내가 노래를 한다. 우리가 골프를 시작한 것도 도움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아직은 이름난 프로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으로도 세상에 행복을 전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오늘은 조금은 여유로운 수요일이다. 아침을 천천히 먹고 오전에 두 시간 동안 마리아와 다윗은 프랑스어 레슨을 받는다. 그 후엔 연습장으로 가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골프레슨을 받는다. 남아공에서 얼마 전까지 프로선수로 활약하던 프랑스인 프로가 와서 가르친다.
오늘은 천천히 커피 한잔을 하며 아이들이 프랑스어 수업이 마치기를 기다리는 감사한 하루다. 시간이 조금 여유로우면 두고 온 딸들 생각에 가슴이 저린다. 어쩌다 우리 집에 와서 나의 딸이 되었는지 고맙고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