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이라곤 한 뼘도 없는 채석장에서 그들은 하염없이 망치를 내리친다. 커다란 돌은 망치에 맞아 부서지고 거듭거듭 내리치는 망치질에 주먹만한 돌이 된다. 산산이 부서진 가루는 바람이 이끄는 대로 어디론가 흩어진다. 마땅히 놀 곳도 없는 채석장의 아이들도 부모를 따라 옹기종기 모여 돌 깨는 놀이를 한다.
본격적으로 여름을 향해 가는 골프장에도 채석장의 햇빛이 내리비친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골프장엔 손님이 뜸하다.
오늘도 마리아와 다윗은 지독스럽게 연습을 한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세상 어디에도 이들보다 많은 연습을 하는 골퍼들이 있을까 생각할 정도다.
보기(bogey)를 범하면 빚을 지는 것이다
골프를 하다 보면 누구나가 보기를 범한다. 규정 타수보다 한 타를 더 치면 보기가 된다. 버디를 염두에 두고 있어서 보기가 나온다. 한 타수를 덜 치려다가 한 타수를 더 치는 것이다. 인생도 마잔가지다. 하루하루 변함없는 망치질이 인생의 보기를 막는 길이다. 손 목에 힘을 빼야 망치질이 수월하고 큰 돌이 적당한 크기로 부서지듯이 골프스윙을 할 때도 백스윙은 힘을 빼야 한다. 보기(bogey)가 그냥 보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골퍼들에게 보기는 빚을 지는 것이다. 버디를 잡기 전에는 그 빚을 갚을 길이 없다. 어제보다 게으른 오늘은 빚을 지는 것이다. 그 빚을 갚기 전까진 언더파는 없다.
파(par)는 기회를 보는 것이다
파는 수익도 손실도 아니다. 그냥 그대로이다. 하지만 하나마다인 것 같지만 파는 파의 의미가 있다. 파는 보기를 메울 수는 없지만 버디(birdie)를 유지시켜 준다. Par만으로는 승리를 가져올 수 없지만 파는 버디를 도와서 트로피를 안겨줄 수도 있다. 파는 버디의 후원자이고 보기와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다. 버디가 골프의 열매이면 Par는 골프의 꽃이다.
망치로는 골프를 칠 수가 없지만 골프채로도 돌을 깰 수가 없다. 망치로 골프를 치면 공이 망가지고 골프채로 돌을 깨면 골프채 또한 망가진다. 채석장 사람들이 골프를 치지 않고 골퍼들이 채석장에서 돌을 깨진 않겠지만 채석장에도 par가 있다. 손이 부러 트도록 돌을 깨어 가족들을 부양하고 새 망치를 구입한다면 그것도 파다. 적은 돈이라도 모아 판잣집을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채석장에서 얻는 버디다.
그들은 쉴 새 없이 돌을 깨고 내 아이들은 그린을 향해 끊임없이 샷을 한다
누군가는 햇빛아래서 종일 망치질을 하고 누구는 종일 햇빛 아래에서 골프채를 휘둘지만 그 모두가 다 인생이다. 파는 아직 성공은 아니지만 성공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파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버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버디는 한 번의 행운이 필요하지만 파는 땀을 흘리며 쌓아 올린 실력의 결과물이다. 어떠한 세계적인 선수도 나흘동안의 경기에서 파보다 버디를 많이 하지 못한다. 파보다 보기를 많이 하는 사람은 선수가 아니다.
Par를 향해 샷을 날려라
버디를 하고 나면 다음홀에서 보기를 할까 봐 불안하지만 파(Par)를 하고 나면 다음 홀의 버디를 꿈꾼다. 인생이든 골프든 파를 향해 목표를 세워야 한다. 사실 파는 어렵지 않다. 누구나가 할 수 있다. 버디를 목표로 잡으면 골프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온(On)을 시켜놓고도 쓰리펏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날의 골프를 망친다.
파를 자꾸 하다 보면 보너스처럼 버디가 따라 나온다. 치킨도 10번 시키면 한 마리가 따라오듯이 말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누구나 성공한다
마리아와 다윗의 다음 목표는 12월 초순에 개최되는 마다가스카르 챔피언십이다. 우승을 꿈꾸고 확신하며 오늘도 골프코스를 누리며 샷을 휘두르고 벙커샷을 갈고닦으며 그린에서 퍼팅을 달군다. 그리고 내년 봄에 조국의 하늘 아래에서 열리는 프로골프선발전을 대비하고 있다.
행복한 망치질과 행복한 샷은 가족을 위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행복한 사람들에게는 골프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골프가 행복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골프를 만든다.
Par는 누구나가 한다.
행복은 누구나의 것이다.
Par를 향해 샷을 날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