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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의 아들 압두 모하메드
그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온 수의학(獸醫學)을 공부하는 유학생이었다. 그는 나로 하여금 아프리카에 대해 눈을 뜨도록 해주었고 아프리카 선교의 비전을 열어준 귀한 친구였다. 나는 그를 통해서 나의 선교의 비전이 특정한 한 두 나라에 머물지 않고 세계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네 살 아래의 온순하고 영리하게 생긴 흑인이었다. 그는 모스크바의 5년제 대학인 ‘모스크바 동물 아카데미’ 4학년 때 나를 만났다. 극장을 시간제로 빌려서 예배드리는 베다니 새 생명교회를 지나다 교회 안내문을 보고 우리의 예배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1992년도 조 용기 목사님의 모스크바 집회에 참석하여 유학생활을 괴롭히던 질병을 치유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의 성장 과정은 불우했다. 아편과 술로 살아가던 아버지를 두고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그 후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에게서, 고모에게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에티오피아와 소련이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그는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지금도 러시아에 있는 유학생들 중에 공산국가와 사회주의 국가 그리고 제3세계에 있는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을 학비를 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기숙사도 제공받고 매달 적은 액수이지만 생활비도 지급받는다. 그리고 공부를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귀국 편 항공권을 무료로 제공받는다. 그런 일들은 지난날 소련이 참 잘한 일들 중의 하나이다. 압두 형제를 통해 다른 에티오피아 형제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모스크바에만도 예수님을 믿는 에티오피아 유학생들이 사십여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토요일마다 그들의 집회를 가졌다. 그들은 한 달에 러시아 정부로부터 칠천 루블의 생활보조금을 받는 데 그것의 십일조를 모아 대학 강의실 하나를 빌려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괜찮다면 우리 선교 훈련원 강의실에서 예배를 드려도 좋다고 했다. 그 후로 그들은 우리 선교 훈련원 강의실에서 매주 토요일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압두 형제가 다니는 대학의 에티오피아 유학생들이 와서 예배를 드렸다. 그들의 예배는 다섯 시간가량이나 길게 이어졌다. 찬양과 기도를 드리고 돌아가며 말씀도 나누었다. 그들의 찬양은 참으로 독특하고 은혜로웠다. 아프리카인들이 흔히 추는 춤을 추기도 하고 타잔처럼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엔 밤을 지새우며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었다. 그럴 때면 그들은 음식을 준비해서 우리 선교훈련원 냉장고에 넣어두는데 그날따라 냉장고가 고장이 난 모양이었다. 그때 내가 주방에 갈 일이 있어 가보니 그들은 모두 냉장고에 손을 올리고 기도하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내가 물으니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작동하라고 기도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때때로 나에게도 설교를 부탁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각기 자신들의 모국어를 제쳐두고 우리들의 공용어인 러시아어로 말씀을 나누었다. 그들의 문화는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우리 두 나라는 러시아보다 더 가까이 있었다. 예컨대 그들 중에 하나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그들은 모두 공항에까지 나가서 전송을 했다. 그리고 그들 고국에서 누군가의 가족이 상(喪)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그들은 대학에 알려서 삼일 동안 강의도 빠지며 기숙사에서 같이 지냈다. 그들은 만날수록 친밀감이 더했다. 그들은 여름마다 구소련에 흩어져 있는 그들 나라의 기독 유학생들이 모여 수련회를 개최했다. 그땐 주로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목사님이 오셔서 집회를 인도한다고 했다. 그해 여름, 수련회를 준비하는 유학생 대표 몇 명이 나를 찾아왔다. 수련회 준비 상황과 필요한 예산서를 보여 주었다. 다른 지방에서 오는 형제들의 숙소와 4박 5일 동안의 전체 삼백 명가량의 형제들의 식비 그리고 장소 임대료 등에 필요한 액수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그 예산 중의 얼마가 준비되어 있느냐 고 물으니 전혀 없다고 했다.
지난번 경우엔 강사로 오시는 분이 그 경비를 준비를 해 온 모양인데 이번엔 그것이 여의치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린 그 자리서 함께 기도했다. 그리고 내가 알아볼 테니 나를 위해 기도할 것을 부탁하고 나 역시 그 일을 위해 기도드렸다. 감사하게도 한국에 계신 어느 목사님께서 전액을 지원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렇게 사랑하셨다. 몇 달 전에는 그들의 겨울 수련회가 우크라이나 공화국에 있는 ‘하리꼬프’라는 곳에서 개최되었다. 그곳에 있는 유학생들이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구 소련이 해체된 이후로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갈 때에도 비자가 필요한데 러시아에 있는 에티오피아 유학생들은 그곳으로부터 받은 초청장에 문제가 생겨 시간에 맞추어 그곳에 가는 비자를 받지 못했다. 기차로 서른 시간 정도를 가며 국경을 통과하는 데 아직 확실한 원칙이 없어 간혹 비자가 없어도 통과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모스크바의 그 에티오피아 유학생들은 비자 없이 가기로 결정을 하고 내게 인사를 하러 왔다. 나는 조금의 헌금을 보내며 무사히 다녀오도록 함께 기도했다. 우리 선교 훈련원에서 훈련 중인 에티오피아 유학생인 압두와 이사야 형제도 함께 출발했다. 그런데 며칠 후 그들은 예정보다 빨리 핼쑥해진 얼굴들로 돌아왔다. 어떻게 되었냐고 물으니 우크라이나 국경을 조금 지난 곳에서, 목적지를 3킬로미터가량 남겨 두고 우크라이나 경찰에게 붙잡혀 열두 시간을 난방도 안 된 그곳 감옥에 갇혀 있다 되돌려져 왔다고 했다. 우린 배를 잡고 웃었다. 그들은 감옥 안에서 러시아어로 찬양을 불렀다고 했다. 그들만의 그 겨울 수련회는 그렇게 우크라이나의 감옥 안에서 성황리에 끝이 났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항상 잘 지냈다. 그들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흘렀고 평안이 있었다.
그들 중에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 바로 압두 형제였다. 내가 선교 훈련원인 ‘월드 비전 하우스’를 시작도록 계획한 데는 적지 않은 그의 역할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내 가정적인 문제로 참으로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었다.
네 살배기 장남 필립 하고 둘만 살았다. 사역에의 의욕도 없었고 단지 종일토록 기도드리는 것만이 나의 일이었다. 외롭기도 곤고하기도 했다. 처음 교회에서 만난 그도 외롭고 힘들어 보였다. 그와의 대화 중에 그가 있는 기숙사에선 기도와 경건 생활을 하기에는 지장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겨 왔다. 후에 그곳이 선교훈련원이 되었는데 그 후에 이름 붙인 ‘월드 비전 하우스’에 그가 가장 먼저 입주한 셈이 되었다. 그가 함께 살면서 우린 끈질기도록 기도했다. 그래서 우린 마치 기도하려고 태어난 사람들처럼 기도에 매달렸다. 그때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주셨고 자신의 일을 우리를 통하여 시작하셨다. 압두 형제는 특히 설교하기를 좋아했다. 그에겐 그러한 달란트가 있었고 듣기 불편치 않을 정도의 러시아어 실력이 있었다. 그의 조국에 대한 선교의 비전이 깊었고 자신의 조국을 더없이 사랑했다. 어느 날 에티오피아에 십여 년 만에 닥친 심각한 가뭄의 소식을 뉴스로 함께 전해 들었는데 그때 나는 그의 맑은 눈에 맺혀있는 그의 눈물을 보았다. 그는 선교 훈련원의 공동체 생활에서도 단연 모범을 보였다. 자진하여 청소하기를 즐겨했고 자신이 식사 준비를 하는 당번인 날엔 늘 최선을 다했다. 음식 맛은 솜씨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정성에서 온다는 것을 나는 그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여기 모스크바에는 수입 즉석조리품인 ‘엉클 벤스’가 유명한 데 그는 그의 요리를 항상 ‘엉클 압두’라 했다. 그는 우리 선교 훈련원에서 매달 지급하는 극히 적은 액수의 장학금을 에티오피아 형제들의 토요 모임을 위해 차와 빵을 사는 일에 거의 다 사용했다. 그의 생활은 언제 보아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는 참 순결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선교 훈련원의 성경 공부 시간 후 라이사 전도사님이 압두에게 좋은 설교를 위해 러시아어 공부를 좀 더 하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하는 러시아 말은 이만하면 됐다면서 설교에는 그 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그분 앞에서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 말했다. 그때 라이사 전도사님이 “그럼 너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느냐?”라고 웃으며 물었다. 그는 정색을 하면서 그렇다 고 했다. 주위에 있던 다른 이들은 아무도 그의 말에 이의(異意)를 제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에 그는 그토록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겸손했다. 그날 난 나의 일기에 그날의 일을 기록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나의 스승 같은 제자다.' 고맙다. 그의 조국 에티오피아가 그를 통해 변화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는 그의 나라에 전화나 편지로 소식을 전할 만한 가족도 없는 듯했다. 한 번도 그러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제 그는 일 년 후면 선교 훈련원을 졸업하여 선교사가 되어 그의 나라로 돌아간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시리라. 애굽의 요셉처럼, 화란의 야곱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