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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키나 파소’에서 온 라사마네 무예데
그를 만난 것은 앞에서 이야기 한 압두 형제의 소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역시 ‘모스크바 동물 아카데미’의 학생이었는데 나를 만났을 때는 이미 졸업을 하여 수의사 자격을 취득한 후였다. 그는 서부 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 사람인데 에티오피아 형제들과는 달리 유난히 검고 입술이 두툼했으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형적인 아프리카인이었다. 그는 모스크바 동물 아카데미 졸업한 후 귀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러시아 정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귀국 편 항공권도 있었다. 그는 그때까지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기 전 모스크바에서의 여유 있는 마지막 시간들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때 그는 술과 여학생들을 좋아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여권과 한 장밖에 없는 항공권을 잃어버리게 된다. 여권은 그의 나라 대사관에서 다시 만든다 하더라도 그의 경제적인 능력으로 항공권을 구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잃어버린 항공권을 다시 찾거나 재발급을 받는 일도 여기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도 가도 못하는 그는 무작정 세월만 보내게 되었다. 더 이상 여유로이 즐길 수 있는 입장도 못되었다. 이제 그는 원치 않았던 불법 체류자가 된 것이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전도 집회에 참석케 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말씀을 듣는 중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삼십 분가량 기절 상태에 있으면서 그는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된다. 그 이후로 그는 항공권을 분실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고 변화된 삶이 그를 주장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압두 형제의 소개로 우리의 ‘월드 비전 하우스’에 입주했다. 그의 가슴속의 비전은 우상 숭배 국가인 그의 조국과 회교국인 그 인근 국가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월드비전 하우스에서 지내는 동안 열심히 배웠고 열심히 기도했다. 어찌나 큰 소리로 기도를 하던 지 밤 기도 시간에는 소리를 좀 낮추도록 내가 부탁하기도 했다. 간혹 그가 하는 설교를 들으면 항상 조리가 분명했고 메시지에 힘이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두 살 아래인 그는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 와서 선교 훈련원에서 훈련 중인 고려인 자매를 혼자서 좋아하게 되었다. 그 후에 그 자매는 그 사실을 알고 아주 싫어했다. 그 사실이 그를 아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그 무렵 어느 한국 선교사님께서 그를 만나 함께 일할 것을 제의하고 한국으로 유학도 보내 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 짐을 챙겨서 그 선교사님 집으로 가 버렸다. 그 일로 인해 남아있는 우리는 몹시도 서운하고 슬펐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우리의 곁을 떠났다. 사마르칸트에서 온 자매도 그 후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던 어느 날 그가 찾아왔다.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그 선교사님 댁에서 나와 전에 다니던 학교의 기숙사에 와 있다고 했다. 다시 훈련원으로 오라 했더니 그는 당분간 일을 해서 귀국 편 항공권을 구입해 놓고 나서 그때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는 지하공장에서 불법으로 제조하는 보드카 공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하루에 여덟 시간 일하면 10달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잔업을 하면 더 받을 수도 있다 했다. 너무 슬펐지만 그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기약을 마음속으로 간직할 수밖에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하나님의 좋은 일군이 될 것이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난 그에게서 분명 그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단지 그의 삶의 끝부분이 아닌, 오로지 지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끝의 모양을 아신다. 그래서 그분은 언제라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라사마네,
그는 참 좋은 형제였다. 따뜻했고, 지혜로웠다. 검은 얼굴에 크게 입 벌려 웃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어른거린다. 그리고 먼지 나는 사막을 헤집고 다니며 복음 전하는 그의 모습이 그 위에 겹쳐진다. 그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