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20~30년 동안 형성된 각자의 성격과 생활방식을 서로 조율하며 그리고 존중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려서부터 형성된 우리의 성격과 생활방식은 하루아침에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에 부부는 다소 힘들더라도 자신의 고집을 조금씩 조금씩 내려놓고 서로 맞추면서 살아갑니다.
11년 넘게 와이프와 살아온 저 또한 아직까지 와이프와 많은 것들을 조율하고 있는 중입니다. 집안의 가구를 배치하는 방법, 주말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 등 많은 영역에서 서로 맞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단정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합니다. 항상 제 자리와 주변은 청소되어 있어야 하며, 모든 물건들은 제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또한 대략 3개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저는 나름대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합니다.
아들과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고, 아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 저는 저의 성격과 생활방식을 아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정리해 놓은 것을 내 방식대로 재정리하고, 내가 보기에 불필요한 아들의 물건들을 아들의 동의 없이 항상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을 깨버리는 작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와이프와 아들이 친정을 방문했을 때 저는 집에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물건들을 구분하여 버렸으며, 그중에는 아들이 학교에서 만든 종이접기 등이 있었습니다. 와이프와 아들이 집에 돌아와서 아들은 어느 순간 자신이 만든 종이접기 작품을 찾게 되었으며, 아들은 직감적으로 제가 그 종이접기를 버렸다는 것을 알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들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빠가 내 소중한 종이접기 작품을 버렸어요.”
저는 '미안하다'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단순히 종이 쪼가리에 불가했던 것이 아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훌륭한 예술작품이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하나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나서, 정리하지 않고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장난감을 정리하지 않고, 또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아들에게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전에 이전에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은 정리하세요”라고 얘기하였습니다.
후에 아들이 엄마랑 얘기하면서, 이러한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나는 모든 장난감을 다 가지고 놀고 나서 정리하는 것이 좋은데, 아빠는 항상 중간중간에 정리하라고 잔소리를 많이 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장난감을 가지고 논 것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들이 다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인 것 같은데, 아들은 지속적으로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이러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들은 나를 닮았으니까, 나의 성격 또한 닮겠지?”
이것은 제가 저의 성격과 생활방식을 아들에게 강요하는 하나의 근거와 정당성을 제시하였으며, 이는 제 아들을 힘들게 했었습니다.
우리 부모의 DNA를 물려받은 우리 자녀들은 부모와 외형적으로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서 성격 또한 비슷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성격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는 우리의 자녀의 생각이 우리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외형적으로는 우리를 닮았지만, 자녀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성격과 생각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