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저는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취미가 뭔가요?”
저는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잠시 고민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마땅한 취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동호회 활동도 하지 않고, 운동도 가끔 뛰는 것 말고는 하지 않습니다. 이에 어느 서류에 저의 취미를 기입해야 한다면, 저는 밋밋하게 ‘독서’라고만 적습니다.
이에 저는 ‘놀이’라는 것을 고민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빠로서 아들과 재미있게 그리고 의미 있게 놀아주어야 하는데, ‘아들과 놀아준다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놀이에 대한 많은 서적을 읽었지만, 제가 얻은 것은 ‘어떻게 자녀와 놀 수 있는지’ 대한 방법(how to play) 뿐이었습니다. 결국 책을 통해서 ‘아들과 놀아준다’라는 것의 의미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아들과 놀아준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았습니다.
몇 년 전 명절에 저의 부모님(아들의 조부모) 댁에서 아들이 할아버지랑 재미있게 노는 중이었습니다. 아들이 할아버지랑 윷놀이를 재미있게 하던 중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당시 할아버지도 당황하고 저 또한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들이 울음을 터뜨린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제 아들이 윷놀이 규칙을 좀 수정해서 하고 싶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제안을 받아주지 않고 원래의 규칙대로만 윷놀이를 하자고 해서 울음을 터뜨렸던 것입니다.
이때 저는 ‘놀이’라는 본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놀이는 ‘자유를 느끼는 것’이구나……
제가 인생 중에 자유를 느낄 때는 조용한 곳에서 홀로이 책을 읽을 때입니다. 혹은 홀로이 걷거나 뛸 때 자유를 느낍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놀이이고 취미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원하는 진정한 놀이의 본질은 바로 ‘자유’입니다. 일정한 범위와 규칙 안에서 구속받지 않으며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바로 ‘놀이’인 것입니다.
제 아들은 저와 보드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즉 아들의 취미 중 하나는 보드게임입니다. 어려서부터 자동차나 로봇과 같은 장난감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다양한 보드게임을 저와 함께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아들이 보드게임의 규칙을 변형해서 하자고 제안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저는 흔쾌히 아들의 요청에 따라서 변형된 규칙을 가지고 게임에 임합니다.
우리는 자녀들과 놀아주면서 사실 많은 것들을 제한시킵니다. 우리 부모는 그 제한시키는 것을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혹은 안전상의 문제로 자녀들의 놀이를 제한시키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녀들의 놀이를 제한시키는 대부분의 이유는 우리 부모들의 '귀찮음'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자녀와 놀아줘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녀와 놀아준다’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 부모가 깊이 고민하고 정립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놀이란 ‘자유를 느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