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냉장고와 슬기로운 부엌 생활
현재형 냉장고 갖기
포장 없이 사고 싶은 만큼
바구니에 담아 계산해 주는
노점이나 채소가게는
더없이 반갑다
마트나 슈퍼에서
포장된 과일이나 야채는
되도록 사지 않는다
특별히 유기농을 원하진 않지만
원치 않는 포장재가 둘러져
당도를 높였다거나
껍질에 흠을 없애고
빛깔을 곱게 만들었다는
예쁜 과일들을 위한
그러한 비용들의
프리미엄은 지불하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장보기 기준)
나는 입맛이 그렇다
달달해서 먹는 게 과일이라지만
심심한 단맛을 좋아한다
거품을 빼고
원치 않는 포장을 빼고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일주일 동안 두식구 집밥을 위해
야채와 과일을 장 봐 온다
여기에 주재료가 되는
고기나 두부 계란 해산물을
때에 따라 한두 가지 장을 보면 된다
이제부터 중요한 순간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은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온
지금이다
냉장고를 열었을 때
먹을 것 하나 없는 깡통 냉장고가 되느냐
배고픈 순간 포장 그대로의
식재료가 나를 반기느냐
혹여나 잊고 방치되어
시기를 놓쳐 화석이 되느냐는
장을 본 후
10분 선처리에 달려 있다고
나는 믿는다
깨끗이 씻고
먹기 좋게 썰어
담아 놓는 것만으로도
깡통 냉장고를 면한다
이미 배고플 땐 역시 늦다
냉장고 실력이 빈약한 것은
선처리를 안 해둔 당신 때문이다
나는 환경 운동가는 아니다
간소한 삶으로
나와 세상에 조금이나마
이로운 소비를
알아가는 중이며
더 나은 소비
필요한 만큼의 소비
불필요함을 걸러 내는 소비
이왕이면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소비
그에 따라
환경에 대한 생각도 배워가는 중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백화점 푸드 코너에서
점심을 포장해온 용기들이다
머리와 가슴은
여러 생각과 말들로
말풍선을 그려 내지만
조용히 가져와서 써본다
플라스틱은 더는 돈 주고 살 마음이 없고
스텐 찬통은 안 보여서 답답하고
유리 찬통은 무거워서 안 내킨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부엌에
재활용품을 득템? ^^ 해 본다
전자레인지 가능
식기세척기 가능 표시에
1회용이라는데
튼튼하기까지 하다
같은 재질의 플라스틱이
한쪽에선 1회용이란 쉬운 값어치로
다른 한쪽에선 마트 상품이 되어
몇천 원에 팔리고 있는 세상
혹시 너무나도 풍요로운 세상이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10분 선처리에 풍요로움을
접시에 담아 보자
한통에 담아 두니 더 좋다
계란 사 오는 날
몇 알 삶아 두었다면 완전 땡큐다
노점에서 만난 심심한
우리나라 키위 다래와
채소들을 담기만 해서
어쩌다 구운 두부나
먹고 남은 고기 몇 점이 있다면
여름에 더없이 편리한
소스 없는 3분 샐러드가 된다
조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10분 선처리는
가족들의 부엌 생활 자립을
도와줄 수도 있겠다
늦게 자는 딸아이가
좋아하는 닭가슴살을 올려
혼자 담아 먹는다
멍 때리는 시간에
날 건드리지 않아서 좋구나 ^^
고기 소식가의 고기 선처리
우리 집에서
냉동고기가 사라진 것은
3년 전쯤인 듯하다
한 번에 한 부위
한 종류의 고기로
한근만 산다
고기를 주재료가 아닌
부재료처럼 먹는 집 이야기다
주마다 주력 야채를 장 보듯
이번 주 주력 고기는 목살로 당첨
2장은 양파와 로스로 구워 먹고
2장은 돈가스를 해 먹는다
남은 2장은 카레로 들어갔다
음식에 따라 필요한 부위를
종류별로 사지 않는다
나는 이미 등심이 없어도
카레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다
돼지고기를 사 오면
후추와 소금 (허브 , 갈릭 소금도 ok)
맛술을 약간만 바르듯이 뿌려 둔다
소고기라면 소금 후추 식용유 약간으로
살짝 버무려 둔다
이것이 고기를 냉동하지 않고
냉장상태로 3 ~ 4일간 두고 먹는
나만의 방법이다
이렇게 냉장 보관한 고기는
보관 시 변색이나 냄새도 나지 않고
간도 되어 있어
음식에 바로 쓰기 좋다
불고기감으로 샀다면
반은 불고기로
나머지는 큼직하게 썰어
볶음밥 볶음국수 잡채에도 넣고
기본 간과 후추 양념이 되어 있으니
구워서 야채들과 곁들여
밥 없는 아침으로도 훌륭하다
사실 나는 이렇게 밑간 한 불고기감으로
미역국이나 뭇국도 잘 끓여 먹는다
필요한 만큼의 소비는
음식도 예외가 없다
2 식구가 한 근을 3 ~ 4번쯤 먹는다
고기를 너무나 좋아하는 분들에게
죄송스러운 말씀을 드리고 싶다
조금 줄여보는 것이 어떨까... ^^
냉동밥 역시 우리 집엔 없다
복더위가 시작됐기에
특히 전기밥통 사용자들께
추천드린다
가정마다 다르겠지만
한 번에 2인 2끼 분량 냄비밥을 짓는다
내 경우는 저녁때 집에 와서
밥이 없으면 슬프기 때문이다 ^^
한 끼 먹고 남은 밥을
그릇에 옮겨 미지근하게 한 김 날려
적당한 뚜껑을 덮어 놓기만 하면 된다
더운 날 문 닫고 외출을 하고
해질 때 돌아와서도
쉬지 않은 밥을 먹을 수 있다
냉동과 해동의 소모적인 동작과
용기 설거지는 자동 패스된다
양파가 맛있는 계절이다
필요한 순간에 양파 까기란 좀 귀찮다
양파를 까서 보관할 땐
위아래를 잘라내지 않고
보관하기를 추천한다
무르지 않고 오래 쌩쌩하기 때문이다
10분 선처리로
음식 쓰레기 적은 부엌을 만들어 보자
상해서 물러서 잊혀서
처리 노동과 상심을 부르는 야채
' 0 ' 퍼센트에 도전해 본다
식구가 적어도
양배추는 항상 통으로 산다
반으로 가르거나 자르지 않고
꼭지 쪽에서 한 장씩 벗겨 먹는다
양배추는 자른 단면이 변색되어
먹을 때마다 단면을 더 잘라내야 한다
통째로 벗겨 먹으면
공기가 들어가지 않아서
다 먹을 때까지 싱싱하다
시들어서 잎을 벗겨내 버리는 일도 없다
양배추 사온 날의
잊지 않는 선처리는
몇 장 벗겨 바로 쪄먹기
며칠 뒤 몇 장은 시들어서
분명 버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쪄낸 순간 이미 반은 사라져 버리는
나는 찐 양배추를 좋아한다
장본 날의 10분 선처리는
쓰레기를 줄이고
버려지는 노동을 줄이고
나의 경제활동으로 주어진
소중한 돈과 시간의 낭비도
줄여 줄 수 있다
귀찮음으로 잃을 것들과
귀찮음을 이겨내서 얻고 지켜질 것들을
생각해 본다
10분이 귀찮다면
후에 30분의 정리 노동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양배추 이야기의 마무리는
양배추 된장국으로 마치겠다
배추나 얼갈이 시래기가
아쉬울 때
여기 양배추가 있다
맛국물도 아닌 맹물에
벗겨 먹다 작아진 양배추를
대충 뜯어 넣고
된장 한 가지로 간을 맞추면
놀라지 마시라
생각보다 맛이 좋아 황당 ^^ 하기도 한
냉파용 양배추 된장국이 된다
양배추 남은 것
된장 2큰술
마무리로 대파 추가
입맛이 예민하다면 마법의 가루 추가
양배추가 말랑해질 때까지
끓이기. 끝
생부추를 늘 먹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삼일을 못 넘기는 부추를
나는 이렇게 꼭 얼려 둔다
쫑쫑 썰어 얼리면
사각사각 잘 떨어져
초록 채소의 부재에
다용도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어느 여름밤
작은 닭을 삶았다
과거에 나는
이왕이면 하는 김에...라는
꽤 합리적이라고 착각했던 마음으로
늘 큰 닭을 삶곤 했었다
그것은 정말로 맛있는 닭죽을
맛없게 먹는 방법이었다
누군가 어떤 음식을 하기 전
질리지 않고 연속으로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그것은 함정이다
자고 나면 입맛이 내게 거짓말을 할 테니까
잊지 않고 실천하는 것
손은 작게 작게
눈과 마음은 넓게 넓게
별거 없는 레시피
놀면서도 끓이는 닭죽
500그램 중닭 한 마리
찹쌀 1컵 (맵쌀을 섞어도 ok)
통양파 반개
당근 약간
마늘 3쪽
소금 후추
닭과 양파 마늘을 넣고
잠 길듯 물을 부어 삶는다
이때 약간의 소금 간을 한다
닭이 익으면
불린 찹쌀을 넣어 퍼질 때까지 끓인다
중간에 당근 다져 넣기
양파는 흔적도 없어지니
닭뼈만 추려 건져낸 후
후추 소금 간. 끝
이렇게 뜨거운 닭죽에
냉동 부추를 넣어 주면
생부추 못지않은 맛을 내준다
각종 볶음밥에
특히 중국식 계란 볶음밥!
파가 똑 떨어진 날
요긴한 냉동 부추는
이렇게 뜨거운 음식에
바로 넣어 먹으면 된다
은근 편리하니
부추를 좋아하는 동지들에게
추천하겠다 ^^
장 볼 때가 다가오던
어느 날의 우리 집 냉장고 실력
깡통 냉장고라고 흉봐도 할 수 없다 ^^
숨으려야 숨을 수도 없고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뻔한 우리 집 냉장고
시어머니도 함부로 열어보면
실례라는 냉장고 속
시원하게 열어 보겠다
1번 서랍
국멸치 고춧가루 청양고추 등
양념과 건어물
2번 서랍
유일하게 쟁이는 냉동야채
대파와 부추
그리고 다진 마늘 브로콜리와
딸아이의 야식용 물만두가 있던 날
이렇게 가끔은
깡통 냉장고가 되기도 하지만
반이상 채우는 일은 흔치 않다
760리터 냉장고에
3분의 2를 채워 두며 살던 나
3년 전엔 상상도 못 했던
작은 냉장고를 쓰고 있다
내일 이사 가는 집처럼 비워진 냉장고에서
나는 더 잘 먹고 더 태평해졌다
재난을 대비했던 것도 아니었고
전국의 마트가 함께
문을 닫을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무엇을 그토록 저장했던 것일까
나는 이제야말로
필요한 만큼이란 것을 배우며
쓸모없는 욕심을 털어내는 중일까
어떤 생각도 말도 필요 없이
그저 편안해졌단 것만 확실하다
마음 가는 대로
조금씩 마련하여
감사히 먹기를
시작했을 뿐이다
3번 서랍
식구가 적으면 버려지는 음식이 많다?
한 달에 한 번쯤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한다
3리터의 정해진 용기로 배출하기 위해
열흘째 모으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
버려지는 음식이 거의 없고
약간의 야채와 과일의
꼭지나 껍질이 전부다
알고 보면
별거 없는 쓰레기 적은 부엌
몸과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만 장을 본다
누가 뭐래도 하기 싫은 날은
차라리 깡통 냉장고를 택한다
그게 남는 거니까
편식쟁이라고 해도 좋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만들지 않는다
일주일간 먹을 고기 야채와 과일을
정한 후 장 본다
장보기는 한두 번에 끝낸다
어지간히 단련되지 못했다면
가까운 시장 슈퍼라도 자주 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집어 오기 때문에
그리고
돌아와 앉기 전 10분 선처리를 해둔다
욕심 중에 최고 욕심은
먹는 욕심도 빠지지 않는단다
가져야 하는 것을 갖기 만큼
버려야 하는 것을 버리기는 더
어렵기에...
또한 주어진 음식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나와 내 가족의 일상에 대한
예우이기에
그러하기에
나는 조금 더
노력하는 마음을 가져 보기로 했다
그뿐인 것이다
살다 보니
지식 보단 지혜가 간절했고
비워 보니
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더라
부디...
흔한 것들에 목매지 않고
조바심에 헛된 것들을 채우지 말고
누구도 아닌 나대로 살아가길 소망해 본다
written in 2019.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