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w Jan 06. 2022

40대 후반, 삶을 재정비하다

지금 이순간 내가 집중해야 할 것들


이 글은

나의 비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자기 성찰이다

 

반평생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이미 반평생 이상 살았을지도

어쩌면 반평생 이상 남았을 수도 있겠다


정리정돈을 각 맞춰 줄 세우며 살았고

특기는 물건 오래 써서 버리기였으며


옷은 거품이 많으니

땡처리 세일에서만 사는 것이라며

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나

취향은 무시하면서

매번 적당한 가격에 타협했고


예쁜 유리병을 보면

모아두던 유리병 호더였으며


언젠가는, 혹시나, 어쩌면...

하는 물건은


내가 들어가서 앉을 만큼

커다란 장바구니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한결같이 수납장 안에 모셔놨다


정리정돈은 잘하는 편이라

물건이 많아도

깔끔하다 단정하다 칭찬을 들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흐를수록

정리할 물건들은 늘어만 갔다


아이가 다 컸어도

나는 직장에서 돌아오면 쉴 시간이 없었고

시간은 더욱더 부족하기만 했다

아이가 크면 하고 싶은 거 하고 놀러 다녀야지

했던 다짐은 점점 기약이 없었다


고단했다


언제 40대 50대 60대가 될까

세월이 그저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내 삶은 언제나 다람쥐 쳇바퀴처럼

내게 고단함을 주었다

즐기고 놀고 할 시간이

내게는 없었다


일찍부터

가계 전반을 책임지며 살았다

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고

수입은 적었으며

대단치 않은 무언가를 생각하더라도

아직은... 내 처지는...

때가 안됐다며

나 혼자 선을 그었다


나는 너무나 큰 것을 잊고 살았다는 걸

미니멀 라이프로 깨닫게 되었다



커다란 집에 살며

명품을 쓰고 세계일주를 하는 호사를

인생에 목표로 삼은 것은

절대 아니었음에도


왜 나 자신에 대한

작은 행복은 꿈꾸지 않았을까


지나고 보니 몇 푼에 작은 돈이라도

나를 위해 뿌듯하게 기분 좋게

써볼 생각을 못 해본 것 같다


열심히 생활해온 자세는 옳았지만

내게는 채찍만이 있었을 뿐

당근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누구 때문도

무엇 때문도 아니었고

나 자신이 그렇게 한 것이었다


나에 대한 것은

매번 미뤘고 포기했고 참았다


내 집 마련과

어느 정도의 저축액은

있어야 한다는 목표로

' 나 '를 미루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며

불편한 신발도 무던히 신었고

날씨가 좋은 날에도

장식한 물건 위에 먼지가 더 신경 쓰였



알뜰함과 검소함과

미련함과 시간낭비를

혼동하면서 살던 여자는  


몇 해 전

새집으로의 이사와 함께

낡은 가구와의 이별을 시작으로

미니멀 라이프를 만나게 된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인생 중

답답함이나 후회가 있을 것이다


삶은 현재와 내일만 있을 뿐

지난 과거의 후회는

쓸 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위하지 못한 생활면에서

후회가 많이 되었다


미련했던 살림 노동과

정리 노동으로 보낸

내 소중한 젊은 날에 시간들이다


살림하는 사람은 늘 시간이 없는 거라며

직장에서 돌아오면 로봇처럼

일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던 내가 변하고 있었다

변했다

이제는 변해야만 했다



오늘은 장맛비가 내린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흐른다


남은 김밥 재료를 꺼냈다

음식재료가 떨어져 간다

이번엔 어떤 제철 재료를 장 볼까?

상온저장 음식까지 머릿속에

사진처럼 떠오른다


즐겁다

내일은 장 보는 날이다



창문 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김밥 재료를 준비했다


이제 시간은 ' 나 '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전과 다른 삶이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관리가 버겁기만 했던

저장용기를 비우고 처음 싸는 김밥이다

평소와 다르게 짤막하게 준비한

김밥 재료를 보고 즐겁기만 하다

길지 않으니 더 간단하다

커다란 용기에 준비할 때 보다

무게도 없다



이제 내가 살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만 남긴 지금은


' 정리 '라는 말을 잊고 살고 있다


이제 우리 집엔 시간을 들여

정리할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있고

적층하여 보관하지 않으며

편하게 꺼내고 편하게 제자리에 넣는다


모든 물건

불편하지 않은 제자리가 있다


2년 6개월간  처음

모으기만 했던 나는

설레며 비움을 실천했다

 

1차 잡동사니 버리기


2차 마음에 안 드는 물건과

언젠가는 어쩌면 혹시나 했던 물건들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


3차 미련이 남아 남긴 것들 중

1년 동안  안 쓴 것, 수명이 남은 것

비움과 채움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에 대한 결단이 있었다

(지역 마켓에서의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했으며 채움은 기나긴 검토와 검색을 거쳐야 했다)


미니멀 라이프로

연마하고 수련해왔던

마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3차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제일 과감하게 마음을 비우고

물건을 놓아줄 수 있었다.



생강차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6개월간 마음에 드는

유리 포트를 기다렸다


채움은 느려도 답답하지 않다

기다림은 후회 없는 물건을 주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물건 비움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생활 간소화에 주력하고 있다


지금은 사십 대 후반

더 늦기 전에 내 삶을 정비하고 싶었다


불필요한 부엌 노동

청소 노동 정리 노동을 벗어나

의미 없이 흐르는 시간을 줄여

나에게도 멍 때리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이제는  자신에 대해

무심히 그러려니 하지 않고 싶다

 

나를 위해서 

불편한 의자도

바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살랑 거리는

단정한 꽃무늬 셔츠가 너무 좋다


가격에 타협하던 내가

기분 좋은 마음으로 구입했던 옷이다

봄부터 초여름 가을까지

입을 때마다 내게 행복감을 주었다


나를 잘 알고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건

이렇게 꼭 마음에 드는 셔츠를

내게 주는 것과 같다


이제

소소한 작은 것일지언정

나에 대해 대충은 없다


그렇게 살고 싶다

 

비움과 채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더 간결하게 삶을 정비 나가

더 나은 일상을 살게 될 거란

설렘을 가져 본다.


written in 2018.06.2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