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기시다의 한일정상회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던 그는 마침내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을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한국의 입장에선 재앙이고, 일본의 입장에선 대업이다.
지난 9월 6일, 퇴임을 앞둔 일본 기시다 총리가 마지막 국빈 방문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대통령실 보도자료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이번 12번째 정상회담은 말만 요란할 뿐 눈에 띄는 결과물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일견 퇴임을 앞둔 기시다 총리가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해 “지난 2년 간의 한일관계 발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양국관계 발전”을 당부하는 정도로 보인다.
이에 국내에서는 이번 한일정상회담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난무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왜 국민 세금으로 기시다 총리의 이임 파티를 해주느냐”며 대통령실을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부었다. 이와 달리 일본 언론들은 이번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두고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두고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한국 정부가 일본의 오랜 숙원이었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UNESCO) 등재를 동의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양국은 양해각서 하나를 체결했다. 양해각서는 기본적으로 ‘국가 간에 문서로 된 합의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과 같은 효력을 갖는 것’으로 공식적인 것이다. 이번에 양국이 체결한 양해각서는 「한일 제3국 내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보도자료에서는 한 줄로 설명이 되어 있다. (링크: https://www.president.go.kr/newsroom/press/TARKLbuT)
“아울러, 양 정상은 오늘 양국 외교당국 간 「한일 제3국 내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가 체결된 것을 환영하며, 이를 통해 제3국 내 위기 상황 시 양국 간 협력을 보다 강화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다수의 언론은 양국은 제3국에서 위기 발생 시 상호 간 자국민 안전을 지키는 체제를 구축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지난해 4월 아프리카 수단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가 마련한 버스로 일본인 여러 명이 대피한 것과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당시 한국군 수송기에 일본인 45명이 탑승해 탈출한 사례를 제시했다. 이처럼 양국은 앞으로 제3국에서 이 같은 위기가 발생하면 서로 자국민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명분은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이 양해각서에 대한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공식 자료를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다. 한국 대통령실의 보도자료와 달리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는 이번 양해각서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링크: https://www.mofa.go.jp/press/release/pressite_000001_00576.html)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이번 양해각서는 두 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졌다. 두 번째 조항이 실제 핵심 내용인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2. “이 양해각서에 근거해 양국은 평상시 위기관리 절차, 훈련 및 연습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비상시 제3국에서의 대피 계획을 포함한 위기관리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제3국에서 자국민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한 경우 상호 지원 및 협력하고, 고위급 논의 및 의견 교환을 실시한다.”
이 두 번째 조항에서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부분은 두 가지다. 첫째, 시기를 평상시(in times of peace)와 비상시(in times of emergency)로 구분했다는 점이다. 시기를 구분하면서 일본의 입장에서는 비상시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한국의 ‘위기관리 절차, 훈련과 연습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 권한이 생겼다는 점이다. 둘째, ‘제3국에서 자국민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한 경우 상호 지원 및 협력’을 명문화했다는 점이다. 이 문구에서 제3국을 북한으로 상정해 보자. 일본의 입장에서 일본 정부가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국민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한 경우,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를 향해 일본의 한국 내 공항이나 항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결국 이것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일본 자위대가 부산항에 입항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해석이 지나친 것일까? 일본 정부는 지난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대피’를 명분으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의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2015년 박근혜정부를 상대로, 2018년 문재인정부를 상대로 끊임없이 시도했다. 심지어 일본 정부는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한반도 유사시 주한 일본인 대피 방안’을 의제로 설정하려고까지 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15년 10월 1일자 한국일보 보도 제목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대피 협의 한국에 요구’다.(링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510011633643572) 당시 일본 아사히 신문을 인용한 한국일보는 일본 정부가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한국 내 공항이나 항만 사용이 제한될 경우 일본인 구출작전 실행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면서 일본 자위대의 한국 진입 근거를 구체화하려고 노력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당시 일본의 아베 정부는 한반도 유사시 한국 내 일본인 대피방안을 협의하자고 제안했지만, 한국의 박근혜정부가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년 후, 일본 정부는 다시 한번 기회를 엿본다. 2017년 9월 5일자 뉴데일리 보도 제목은 ‘아베, 한반도 유사시 주한 일본인 6만 명 대피 추진’이다.(링크: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7/09/05/2017090500072.html) 당시 일본 닛케이 아시아 리뷰 신문을 인용한 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거주 또는 체류 중인 일본인 6만 명의 대피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는 일본과 대립각을 보이던 문재인정부 시기다. 이에 일본 정부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2017년 11월 5일자 한국일보 보도(링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11051995900005)는 일본의 아베 정부가 미일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유사시 주한 일본인 대피 방안을 논의하려고 계획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당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요구에 전혀 응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아베는 미국을 활용하려는 속셈이었다. 실제 요미우리 보도에서 당시 아베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 측이 일본과의 협상에 적극 나서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일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부산항 진입을 한국 정부가 수용하도록 설득해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이번 한일 양국의 양해각서가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을 위한 제도적 토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껍데기는 양해각서이지만, 실제 내용은 일본 정부가 오랫동안 추진했던 안보정책인 것이다.
그럼 과연 이 정책을 누가 추진했을까? 그 주인공은 바로 일본의 마음을 중시하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다. 9월 6일자 서울경제 보도(링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11051995900005)를 보면 다소 충격적이다. 김태효 1차장은 이번 양해각서를 두고 “세계 각지에서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양국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라며, “우리 측에서 먼저 제안했다”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그동안 일본이 줄기차게 제안했지만, 우리 정부(심지어 박근혜 정부조차도)가 끊임없이 거절했던 그 정책을 우리 정부가 먼저 제안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체코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아 물의를 일으킨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이번 양해각서 체결을 볼 때, 그의 국기는 태극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그에게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