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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yper Nov 08. 2024

튀르키예가 선택한 2024 브릭스 정상회의

 지금 국제질서는 변하고 있는가? 그렇다. 유럽과 미국이 구축했던 국제질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 도전의 선봉에 ‘브릭스’(BRICS)가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러시아에서 열린 2024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새롭게 회원국이 된 튀르키예의 선택은 우리 외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림-1> 브릭스의 성장 (G7과 BRICS의 구매력 평가 기준 세계 GDP 점유율 비교) (출처: statista)


G7과 브릭스(BRICS)


 위 <그림-1>은 지난 2023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자료를 토대로 G7국가들(7개국)과 브릭스 국가들(5개국)의 구매력 평가 기준 세계 GDP 점유율을 비교한 것이다. 1995년 44.9%였던 G7국가들의 점유율이 2023년 29.9%로 하락하며 30%선이 붕괴되었다. 반면, 동기간에 브릭스의 점유율은 16.9%에서 약 2배 가까운 성장을 보이며 32.1%를 기록했다. 중국, 러시아 중심의 브릭스가 미국, 유럽 중심의 G7을 넘어선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지난 1년 사이에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아랍에미리트가 2024년 1월 1일부로 브릭스의 정규 회원국이 되면서 이 GDP 규모는 35.8%까지 상승했다. 또한, 9개 브릭스 회원국의 인구는 약 36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44.8%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1> 지난 10월 22-24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제16차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국제기구 대표들이다. (출처: 브릭스 정상회의 공식 홈페이지)

브릭스(BRICS)의 확대


 브릭스의 확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10월 22일부터 24일 전쟁 중인 러시아의 카잔에서 개최된 2024 브릭스 정상회의는 알제리, 인도네시아, 베트남, 튀르키예 등 무려 13개국에게 파트너 국가(partner countries)라는 지위를 부여하면서 외연 확장을 가속화했다. 이번에 새롭게 브릭스의 구성원이 된 13개국은 이번 정상회의를 앞두고 가입을 신청했던 약 30여 개 국가 가운데 선택된 국가들이다. 즉, 브릭스에 참여하고자 하는 국가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여한 국가가 36개국에 달하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을 포함해 6개의 국제기구가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침공한 러시아가 주축이 된 이 협의체에 이렇게 많은 국가들이 참여한 점과 국제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유엔의 수장이 직접 참여했다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유엔 사무총장이 이 회의에 참석했다고 유엔이 러시아의 전쟁에 우호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국가들과 국제기구가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특히, 최근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했다는 국정원발 보도가 쏟아지고, 이에 질세라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는 윤석열 정부를 보면 우리 언론이 전하는 세상과 실제 국제질서에 적잖은 괴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 대한 국·내외 언론의 관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브릭스의 확대를 미국과 유럽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 시각이다. 실제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 대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기 위해 중국이 중심이 되어 남반구 국가들(글로벌 사우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둘째,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를 고립시키고자 했던 서방의 의도와 달리 푸틴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시각이다. 푸틴은 지난해 8월 남아공에서 열린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여했다. 그 이유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푸틴은 자국에서 브릭스 정상회의를 성황리에 개최하면서 서방의 고립 시도가 실패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과 같다. 


<사진-2> 10월 23일, 튀르키예 에르도안 대통령이 제16차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 카잔에 도착해 러시아의 환영을 받고 있다. (출처: DAILY SABAH)

튀르키예의 선택


 이 같은 분석과 함께 브릭스에 노크를 한 국가 중에서 ‘튀르키예’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브릭스 그리고 브릭스의 확대를 위에서 제시한 첫 번째 관점과 같이 미국에 대항하는 그 무엇으로 본다면, 미국과 유럽의 군사동맹으로 불리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튀르키예의 선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또한, 튀르키예는 1987년 유럽연합에 가입을 신청하고, 1999년 유럽연합(EU) 가입 후보국이 되었다. 이후 2005년부터 공식적으로 유럽연합과 가입 협상을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튀르키예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대해 서방의 언론들은 튀르키예 행정부의 지정학적인 무게 중심이 유럽에서 글로벌 사우스로 옮겨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과연 그러한가? 


 튀르키예의 선택은 옳고 그름을 떠나 유럽과 러시아 양쪽으로부터 몸값을 높이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유럽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튀르키예는 유럽통합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유럽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지도상에서 실제 영토는 유럽보다 아시아에 더 많이 속해 있음에도 튀르키예는 스스로 유럽을 자처하며 유럽의 일원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정작 유럽 국가들은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에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 튀르키예가 유럽연합의 민주주의, 인권 등과 같은 가입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회원국 가입 기준으로 ‘코펜하겐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1993년 합의한 이 기준은 소련의 붕괴 이후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 가입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유럽연합이 세운 것으로, 민주주의, 법치, 인권, 시장경제 등이 핵심이다. 이를 토대로 유럽연합은 주로 튀르키예 내 인권 탄압 등을 거론하며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둘째, 종교문제다. 이는 유럽통합의 역사적 맥락으로, 유럽연합의 대다수 국가들이 기독교라는 종교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반면 튀르키예는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유럽연합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유럽 내에서 더욱 종교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협상은 앞으로도 부정적일 가능성이 크다.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에 미온적이던 유럽연합이 오히려 이번 튀르키예의 선택으로 적잖이 당황한 듯하다. 유럽 뉴스 전문채널인 유로뉴스는 이번에 브릭스가 새로운 파트너 국가들을 받아들이면서 브릭스의 경제 규모가 유럽연합보다 2.5배가량 크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유럽이 크게 당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6월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이 브릭스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고 브릭스 참여 의향을 내비치자 유럽연합은 다급해졌다. 피단 장관의 발언 이후 약 2개월 만에 유럽연합은 외무장관 회의에 피단 장관을 초청한 것이다. 이는 유럽연합이 튀르키예와 유럽연합 가입 협상이 중단된 지 무려 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튀르키예의 선택으로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 전망이 밝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튀르키예가 유럽연합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분명하다. 즉, 이번 선택으로 튀르키예는 유럽연합과의 협상에서 레버리지를 확보한 셈이다. 


<사진-3>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의 푸틴과 튀르키예의 에르도안은 정상회담을 가졌다. 정상회담에 앞서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 뉴욕타임스)

 다음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다. 나토 회원국이자 미국 전술핵까지 배치된 튀르키예는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긴밀하다. 러시아에게 튀르키예는 세 번째, 튀르키예에게 러시아는 두 번째 교역 대상국이다. 이러한 관계는 에너지 분야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현재 전체 튀르키예의 천연가스 수입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42%에 해당하고, 휘발유와 경유 등 정제유는 러시아에서 무려 51% 가량을 수입하고 있다. 이와 함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러시아산 정제유 수입을 중단했다. 이 틈을 노린 튀르키예는 러시아산 원유와 정제유를 수입해서 이를 다시 튀르키예산으로 포장해 유럽연합에 재판매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오히려 두 국가의 경제적 친밀도를 높여주고 있는 셈이다. 


 양국의 이러한 경제적 관계 곳에서 이번 튀르키예의 브릭스 파트너국 참여는 2023년 이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던 튀르키예 국제 가스 허브 프로젝트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자국의 천연가스 수출에 대한 제재를 최소화하기 위해 튀르키예에 천연가스 허브 구축을 제안한 바 있다. 이 제안은 2023년 튀르키예 내부 사정으로 난항을 겪고 있었는데, 러시아 타스 언론은 푸틴과 에르도안이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만나 이 사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지난 1일 로이터 통신은 튀르키예 에너지 장관이 가능하면 2025에 튀르키예 보타스와 러시아의 가즈프롬이 협력해 가스 허브 구축을 하기로 했다고 인터뷰했다. 결국, 튀르키예는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 참여로 경제적 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사진-4> 지난 24일, 윤석열 대통령은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후 러시아에 살상 무기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출처: KBS)

 브릭스의 확대는 국제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실제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G20 회원국 중 브릭스 국가는 7개국으로, 10개 아세안 회원국 중 브릭스 국가는 4개국으로 증가했다. 통상으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에 브릭스의 확대는 매우 중요한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그간 윤석열정부의 외교는 매우 단순했다. 윤석열정부는 줄곧 미국과 일본 일변도의 외교를 보여왔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전면적으로 끼어들 태세다. 이러한 우리 정부의 외교를 보며, 나토 회원국이자 미국의 전술핵이 배치된 튀르키예의 선택은 우리 외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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