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기자회견의 두 가지 키워드-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의 키워드는 권위주의와 무지다. 이번 기자회견은 40분 간의 국정브리핑과 90분 간의 기자회견 2가지 형태로 나뉜다. 윤석열 대통령은 무려 130여 분간 수많은 말을 내뱉었으나, 그 기저에 흐르는 핵심은 권위주의와 무지다.
먼저 권위주의는 비언어적 요소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문제가 되는 비언어적 요소는 기자의 질문을 경청하지 않는 태도와 그로 인해 비롯된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하대하는 태도다. 특히, 기자회견 중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를 맡은 정해전 대변인에게 반말을 툭 던졌다. 본인이 기자의 질문을 경청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였다. 이 장면에서 평소 그가 얼마나 권위주의적인지 엿볼 수 있다. 이를 보면서 대통령은 과연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약 70%의 국민들을 향해 어떠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을지 예상할 수 있다.
다음으로 무지는 언어적 요소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모른다’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자신이 임명한 독립기념관장이 누군지 모른다고 하는 대통령, 뉴라이트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는 대통령. 엄밀히 말하면 대통령이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 대통령은 알아야 할 내용조차 알려고 하지 않는 듯하다. 이를 보면서 과연 판단력이 없는 리더가 국민은 물론 주위 참모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이 같은 우려와 달리 국정브리핑 내용과 이에 대한 대통령실의 평가는 극찬으로 가득 차있다. 예를 들면,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브리핑에서 ‘올해 상반기 수출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9.1%나 증가한 3천350억 달러를 달성’했고, 이로 인해 ‘상반기 일본과의 수출액 격차는 32억 달러’로 좁혀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과거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이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고 자평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자화자찬은 더욱 노골적이다. 한국경제 보도(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83077571)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기자회견에 대해 “원고 없이 1시간 20분가량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보고 참모들 사이에서도 ‘저렇게 하는 대통령이 누가 있겠냐’는 반응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마치 북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지도에 대한 노동신문의 보도와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제 기자회견 동영상을 살펴보면 현실은 다르다. 필자는 JTBC [윤석열 대통령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 풀영상(https://www.youtube.com/live/WgGoSLB7yxU?si=K_6RQU5jS3KFkKlG)을 모두 보았다. 이번 기자회견 관련 첫 번째 키워드인 ‘권위주의’는 위 영상 1시간 44분 부근에서 잘 드러난다.
문화일보 기자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인사 관련 질문을 한다. 윤 대통령은 이 질문이 조금 불편했는지 기자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질문을 3개쯤 하시니까 갑자기 뒤에꺼만 생각나고, 지금 뉴라이트 이야기부터 하셨나요?’라고 반문한다. 이후 착석해 있던 기자들이 첫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정리해 주자 윤 대통령은 답변을 시작한다. 그리고 답변을 하던 중 마지막 질문을 까먹자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를 보던 정해전 대변인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그리고 마지막이 뭐였더라?”
이 기자회견은 대통령 기자회견이다. 그렇다면 기자의 질문을 숙지하는 책임은 사회자가 아닌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 기자가 질문할 때, 대통령은 당연히 질문을 경청하고 질문의 요지를 정리했어야 한다. 설령 실수로 잊어버렸다면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정중하게 물어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는커녕, 자신의 실수로 비롯된 그리고 생중계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변인에게 반말을 했다. 이는 대통령이 카메라가 없는 평소에 부하직원들을 어떻게 인식하며 대하고 있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 같이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몸에 밴 대통령이라면 평소 국민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군대, 검찰과 같은 무력으로 정치적 상대와 국민을 제압하는 통치였다면, 민주주의 시대는 말과 글로 정치적 상대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에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는 고려하지 않은 수직적 관계가 보편적이었다면, 민주주의 시대는 상대에 대한 배려를 기반으로 수평적 관계가 기본인 것이다. 나아가, 민주주의 시대에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은 정치인은 국민과의 관계를 수평, 아니 국민을 주인으로 인식하며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기자회견에서 보인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는 권위는 없는, 그래서 더욱 권위주의적인 행태를 보이고 말았다.
2024년 현재, 우리 국민은 탈권위주의, 민주주의 시대의 국민으로 살고 있는데, 우리 대통령은 마치 196-70년대 권위주의, 독재 시대의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키워드인 ‘무지’는 국정브리핑과 기자회견 내내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의 무지는 인사과정과 역사의식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아니, 대통령은 마치 무지한 것이 자랑인 것처럼 말한다.
윤석열 정부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이후 뉴라이트 인사들을 등용한다는 지적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두 가지를 자신 있게 말한다. 먼저 인사와 관련된 답변은 아래와 같다.
“김형석 관장에 대한 인사는, 저도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는 분이다.
(중략) 보통 1, 2, 3등으로 심사한 서열을 매겨서 보내는 모양이다.
보통 1번으로 올라온 분을 제청한다. 저는 그런 인사 과정에 대해서 장관이
위원회를 거쳐서 1번으로 제청한 사람에 대한 인사를 거부해 본 적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은 문제가 되고 있는 김형석 관장을 모른다는 것을 넘어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모든 인사과정이 이번처럼 진행되었다고 실토한 것이다. 즉, 대통령은 지난 2년 반 동안 진행한 모든 인사에서 모두 1번으로 추천된 사람을 무비판적으로 선택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통령은 인사권자로서 무엇을 기준으로 인사를 했단 말인가. 어떻게 이것을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지금 윤석열 정부의 실질적 인사권자는 누군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최근 뜨거운 이슈인 뉴라이트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답한다.
“뉴라이트 이야기가 요새 많이 나온다.
저는 솔직히 뉴라이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인사과정에 대한 답변이 무지에 대한 자각이 없는 대통령을 보여주었다면, 뉴라이트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대통령의 답변은 역사의식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정확히 20년 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연세대학교에서 진행한 특별 강연에서 한 학생으로부터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판단력’이라고 답한다. 왜냐하면, 지도자인 리더는 많은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인데, 만약 그 리더의 판단력이 잘못되면 여러 사람이 낭패를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그 판단력을 역사를 꿰뚫어 볼 줄 아는 통찰력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저는 솔직히 뉴라이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은 단순한 의미의 무지가 아닌 역사의식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뉴라이트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기록된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와 사회의 사상을 형성하는 가장 결정적인 토대는 동일한 역사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런 관점에서 1910~45년까지 대한민국 국민이 경험했던 식민지 역사와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일본의 주장으로 왜곡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방향을 정하는 리더가 될 수 있는가.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어떤 대통령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지 명확하게 드러났다. 첫째는 일방적인 힘으로 강제하는 권위적인 대통령이 아니라 수용자인 국민의 자발적인 인정을 이끌어내는 권위가 있는 대통령이다. 둘째는 모르는 것이 당당한 무지한 대통령이 아니라 역사의식, 즉 역사를 꿰뚫어 볼 줄 아는 판단력을 지닌 대통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