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극우와 유럽의 극우 정치세력의 비교-
이제는 유럽 극우정치의 약진을 부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를 거치며 대한민국은 마치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최근 한국 경제와 정치를 보면 불과 2년 사이에 ‘눈 떠보니 후진국’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
2019년 영국에서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보며 놀랍기도 하고 부러워했다. 그 이유는 기후문제를 대변하는 정당인 녹색당이 총 751석 가운데 74석을 획득하며, 유럽의회에서 4번째로 의석수를 많이 확보한 정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내심 한국에서도 조만간 초국가적 이슈를 다루는 녹색당의 선전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2024년, 윤석열 행정부의 행보를 보며 민족주의에 기반한 유럽 극우정당의 약진을 부러워하고 있다. 지난 6월 있었던 유럽의회 선거의 핵심은 ‘극우 정당의 돌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 <사진-1>에서 유럽의 극우정당은 84석의 ‘유럽을 위한 애국자’(Patriots for Europe)당과 78석의 ‘유럽보수와개혁’(European Conservatives and Reformists Group)당이다. 프랑스의 마린 르펜과 헝가리의 빅터 오르반이 중심이 된 ‘유럽을 위한 애국자’당은 단독으로 유럽의회 내에서 3번째로 큰 정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두 극우 정당의 합은 162석으로 단숨에 유럽의회 내에서 제2 정당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다 유럽의회에서 녹색당의 선전을 부러워하다 극우정당의 약진을 부러워하게 된 것인가? 2024년 현재 대한민국 행정부의 현실을 보여주는 3가지 장면이 그 이유다.
#1. 일본군 위안부를 ‘논쟁적 사안’이라고 밝힌 이진숙 방통위원장
지난 7월 24-26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수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이 후보자의 답변은 귀를 의심케 했다. 최민희 국회 과방위원장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 후보자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습니까? 위안부입니까, 아니면 강제입니까, 아니면 자발적입니까?”라고 묻자 이 후보자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논쟁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2.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광복절 다음날은 16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남긴다. 앵커가 최근 윤석열 정부가 일본 정부에 취하고 있는 외교에 대해 수세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자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며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죠.
마음이 없는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것이 과연 진정한가?”
#3.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윤석열 대통령
광복절은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동시에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축하하는 날이다. 이 국경일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36년 일제의 만행과 그 일제 치하에서 선조들이 겪은 아픔을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그러한 역사 속에서도 민족과 국가의 뿌리를 잊지 않았던 선조들의 독립운동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다시금 자유만을 늘어놓으며, 통일이 완전한 광복이라는 주장을 했다.
“우리에게 완전한 광복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중차대한 역사적 과제가 있습니다. 바로, 통일입니다. (중략)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광복절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완전한 광복은 통일이 아니라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는 친일파 청산과 가해자인 일본의 진정한 사과로 실현되는 것이다. 2024년 독일이 8-90년 전 스스로 나치 독일의 전쟁 범죄를 청산하고, 피해자인 유대인들에게 사과하듯이 말이다.
2024년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극우(極右)’의 사전적 의미는 ‘극단적으로 보수주의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인 성향 또는 그 성향을 가진 사람이나 세력’이다. 이 용어가 최근 정치권에서 특정 정치인 혹은 극우 유투버 등을 지칭하는데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극우란 국수주의, 즉 ‘편협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그 핵심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와 지역이 바로 유럽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유로존 위기와 난민문제 등으로 유럽에서는 극우정당들이 본격적으로 유럽의회에서 부상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프랑스, 덴마크, 오스트리아에서 소위 극우정당으로 불리는 정당들이 득표율에서 1위를 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FN)은 24.9%, 덴마크인민당(DF)은 26.6%, 오스트리아자유당(FPO)은 20%를 기록했다.
이처럼 반이민과 반유럽통합을 전면에 내세운 극우 정당들이 유럽 각지에서 높은 지지를 받자 중도우파정당들 또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실제 2019년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유럽의회에서 제1정당인 유럽국민당(EPP)은 반이민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유럽국민당(EPP)은 불법이민으로부터 유럽지역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드론 등 최신 기술과 1만여 명의 국경 경비대를 배치하는 공약을 천명한 것이다.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녹색당의 선전으로 가려진 측면이 있지만, 유럽의 극우정당들은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유럽시민들에게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 이 같은 유럽 극우정당의 성장에 대해 다양한 주장이 존재하지만, 가장 핵심은 ‘종족적 민족주의(ethno-nationalism)’라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의 핵심은 특정 국가는 언어와 가치 등 문화적으로 동일한 집단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언어와 종교가 다른 이질적 집단이 한 국가에 진입할 경우 그들이 지니고 있던 문화적 정체성이 소멸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이민과 같은 이슈에 적대적인 입장을 가지는 것이다.
국가별로 다양한 유럽의 극우정당들이 유럽연합의 이민정책에 대해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카스 무데(Cas Mudde)의 주장처럼, 다양한 유럽 국가들의 극우 정당과 세력을 하나로 묶어주는 가장 핵심적인 이념은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의 극우는 어떤가. 얼마 전, 성균관대 좋은민주주의센터 황인정 연구원의 논문이 흥미롭다. 이 논문은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스스로 극우적이라고 표시한 이들의 특성을 분석한 내용이다. 분석 결과, 몇 가지 특징들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극우적 성향을 갖는 사람들은 주로 1) 강력한 한미동맹을 주장하고, 2)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고, 3) 민주주의가 항상 최선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4) 지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점이다.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보면, 한국의 극우는 유럽과 달리 강력한 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며 스스로를 극우적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인식했던 국민들은 최근 윤석열 행정부의 행보를 보며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집단은 ‘편협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기반하기보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부정하고,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개념을 부정하고, 오로지 일본 극우의 이익을 대변하는 부역자 집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윤석열 대통령과 그 주변 핵심인사들은 정통 극우가 아닌 것이다.
유럽의 극우는 이민/기후위기와 같은 초국가적 이슈를 외면하고, 자국 중심주의를 전면에 내세운다. 반면 윤석열 행정부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과 같은 국가적 이슈를 외면하고, 일본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사도광산을 비롯한 정책은 물론이고,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을 비롯한 일련의 인사를 보면 윤석열 행정부는 일본 자민당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스럽다.
마지막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의 마음’을 헤아리지 말고,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극우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