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잘 살아가기 위한 첫 걸음. 나 알아가기
나는 [ ]한 인간이다.
지적 허영심은 많지만 공부하기는 싫어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독서와 지성인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내 밥 친구는 ‘알쓸인잡’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인간상인 장항준 감독님과 언제나 멋지게 소수자를 대변하는 음악가 RM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매 회차를 대표하는 질문이 있고 패널들이 각자 생각해온 바를 답한다. 이 질문은 그 수많은 질문 중 내가 답해보고 싶은 질문이다.
나는 [사랑으로 충만한] 인간이다. 내 인생의 지향점에 대한 얘기를 해보는 게, 왜 내가 나를 사랑으로 충만하다고 정의하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떤 직업으로서 내 자아를 실현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지 않겠지만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성은 일관되고 뚜렷하다.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나로 인해 한 명이라도 더, 한 번이라도 더 웃고 행복감을 느끼는 게 내 기쁨이자 꿈이다. 어렸을 때는 약자를 구제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가 크면서부터 오만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은 사람을 구제할 수 없을뿐더러 내가 구제하는 쪽에 서 있다는 건 굉장한 착각이다. 물론 내 그 소망이 내가 남들보다 더 낫다거나, 남들이 동정받는 처지에 있다는 거만한 생각에서 기인한 건 아니었다. 의도는 선했지만 표현하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생각의 결을 조금 바꾸었다. 나는 왜 약자를 돕고 싶었나. 그 질문에서 다시 출발했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사랑의 대상이 행복하길 바라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재력이나 능력이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처한 상황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글을 쓰기에 앞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최근에 고민했던 건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가’였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자기 삶을 열심히 그리고 잘 살아가는 사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주변에 그런 사람이 꽤 많은데 그 이유는 내가 그런 인간 군상을 가까이 두고 싶어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구나 생각하지 않을까. 한 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아보고 싶다고. 그런 생각이 들어 열심히 살다가도 제풀에 지쳐 평범함이 목표가 될 즈음이면 그들의 삶이 보여주는 소리 없는 조언이 다시금 나를 일으켜 세우곤 했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멋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만큼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그 꿈에 닿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모두가 인간다운 삶의 격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꿈꿨다. 당연히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 즈음은 알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 꿈에 닿기 위해 하는 무수한 노력 중 몇 가지라도 사회에 닿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그 노력에 감응하여 같은 꿈을 꿀 수 있다면 멋지지 않은가. 그렇기에 나는 그 꿈에 동참하여 나만큼 타인을 사랑해 줄 사람들을 원하고 그렇기에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최근 만나는 사람들에 수도 없이 추천했을 정도로 ‘구의 증명’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그 어떤 스포일러도 하고 싶지 않기에 책의 내용은 생략하고 그 책을 읽게 된 계기이자 캐치프레이즈만 소개하자면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 적 있었나 하는 고민을 잠깐 했다. 내가 그간 사랑한다 생각했던 모든 사람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들을 사랑한 게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기술 저자인 에리히 프롬은 이상적인 사랑은 그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거라고, 대상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거라고 말했다. 덧붙이며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선 자아도취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나에게 꼭 필요한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최악일 때 당신이 나를 감당할 수 없다면 최상일 때의 나를 가질 자격도 없다고 말했던 마릴린 먼로의 말을 접하고 나서부터는 최악의 나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다. 누구나 양면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사람마다 좋은 사람의 기준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완벽한 사람이라는 주관적이고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세워 나 자신을 괴롭히기보다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한 것이다. 그게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완벽할 수 없듯 타인도 완벽한 모습을 지닐 순 없다는 것. 내가 소중한 사람인 만큼 타인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 이처럼 어쩌면 당연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보면 언젠가 나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타인도 나를 사랑하듯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