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하나에서 발견한 삶의 이치

안도현, '나뭇잎 하나'

by 인문학 이야기꾼

나뭇잎 하나

-안도현


나뭇잎 하나가

벌레 먹어 혈관이 다 보이는 나뭇잎 하나가

물속이 얼마나 깊은지 들여다보려고

저 혼자 물위에 내려앉는다


나뭇잎 하나를

이렇게 오도마니 혼자서 오래오래 바라볼 시간을 갖게 된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이 시의 시적 상황은 단순합니다. 나뭇잎 하나가 물 위에 떠 있고 그 나뭇잎을 화자가 들여다보는 것이 이 시가 보여주는 풍경의 전부입니다. 풍경은 단순하지만 화자가 관찰한 내용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나뭇잎의 내면까지를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나뭇잎의 혈관 하나하나 다 보입니다. 혈관이 보이는 이유로 벌레가 먹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벌레가 먹었는지 벌레에게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어주었는지는 모릅니다.

나뭇잎은 태어나면서부터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보며 살아왔습니다. 한번도 아래로만 흐르는 물의 속성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물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이 하나둘 물 위로 떨어지기 시작하자 물의 속성과 물이 흘러가는 방향이 궁금해졌습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물에게로 다가갑니다. 자신의 몸부터 벌레에게 내어주고 물 위에 내려앉습니다. 물의 깊이와 속성을 가늠해 보기 위해 나뭇잎은 물과 동행하기로 작정하고 물을 따라 나섭니다.


그런 나뭇잎을 화자는 오래오래 들여다봅니다. 자신의 몸마저 벌레에게 내어주고 물의 깊이와 속성을 가늠하기 위해 혼자 물 위에 내려앉아 물과 동행하는 나뭇잎을 화자는 오래오래 들여다봅니다. 기꺼이 제 살을 내어주는 나뭇잎의 마음과 낮은 곳으로만 향하는 물의 속성을 배우고 실천하는 나뭇잎의 사랑도 생각해 봅니다.

화자는 이때까지 참으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쫓기듯 살았습니다. 나뭇잎 하나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나뭇잎 하나라도 오래오래 바라볼 시간을 갖게 된 것이 얼마 만인지 모릅니다. 오래 보아야 시가 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 듯합니다.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 ‘정심장(正心章)’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心不在焉(심부재언) 마음에 있지 않으면(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視而不見(시이불견)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聽而不聞(청이불문)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食而不知其味(식이부지기미)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시청(視聽)과 견문(見聞)의 차이이지요. 시청(視聽)은 슬쩍 보고 듣는 것을 말하고, 견문(見聞)을 자세히 보고 듣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고 듣는 것은 마음을 다해 대상을 관찰하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나뭇잎 하나 따위는 늘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슬쩍 보았기 때문에 나뭇잎의 혈관도 보지 못했고, 나뭇잎의 생각도 읽지 못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나뭇잎을 관찰하면 나뭇잎의 혈관도 볼 수 있고, 나뭇잎의 지적 호기심도 볼 수 있으며, 낮은 곳으로 임하려는 나뭇잎의 마음도 읽을 수 있습니다.


나뭇잎 하나도 그냥 지나치듯 보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자세히 들여다보는 눈이 시인의 안목입니다. 하찮은 나뭇잎이지만 그 나뭇잎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는 삶의 이치를 또 배우게 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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