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에도 발전소가 있다

안도현, '살구나무 발전소'

by 인문학 이야기꾼

살구나무 발전소

-안도현


살구꽃……

살구꽃……


그 많고 환한 꽃이

그냥 피는 게 아닐 거야


너를 만나러 가는 밤에도 가지마다

알전구를 수천, 수만 개 매어다는 걸 봐


생각나지, 하루 종일 벌떼들이 윙윙거리던 거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날도

전깃줄은 그렇게 울었지


그래,

살구나무 어딘인가에는 틀림없이

살구꽃에다 불을 밝히는 발전소가 있을 거야


낮에도 살구꽃……

밤에도 살구꽃……


화자는 살구꽃을 보고 있습니다. 수천수만 송이 살구꽃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아름다움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올 때, 그 알전구의 밝음이 떠오릅니다. 어릴 때 전깃줄에서 윙윙대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가 전깃줄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인지 전깃줄에 전기가 흐르는 소리인지는 잘 몰랐습니다. 어릴 때 전깃줄에서 윙윙대던 그 소리를 지금 살구나무에서 벌떼들의 윙윙대는 소리로 듣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살구나무 속에 발전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보내 알전구를 밝히듯 살구나무 발전소가 전기를 보내 살구꽃을 피워낸다고 생각합니다.


너를 만나러 가는 화자의 마음에도 발전소가 있습니다. 너만 생각하면 살구꽃이 피듯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알전구가 켜지듯 마음이 밝아집니다. 밤낮으로 너가 생각나는 것을 보면 그 발전소는 밤낮없이 하루 온종일 가동됩니다. 함민복 시인은 ‘가을’이라는 시에서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라고 한 줄짜리 시를 썼습니다. 잠자면서도 ‘당신 생각을 켜 놓은’ 것을 보면 마음의 발전소는 밤낮으로 가동될 수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그러고 보니 살구나무에 발전소가 있다는 시인의 생각은 맞는 것 같습니다. 뿌리가 흙 속의 수분과 영양분을 빨아당겨서 나무 꼭대기까지 밀어올리는 것을 보면 나무에 발전소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심장이 있기에, 심장이 발전소 역할을 하기에 온몸 구석구석까지 혈액이 공급되는 것처럼 나무 구석구석까지 나무의 혈액이 공급되는 것을 보면 나무에 발전소가 있다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나무 발전소는 온도도 측정하고 계절의 흐름도 알고 동료 의식도 있습니다. 봄이 되면 나뭇가지 속에 숨겨두었던 살구꽃을 힘차게 밖으로 밀어냅니다. 아무 때나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온도와 계절에 맞게 밀어냅니다. 이웃 나무와 꽃 피는 시기도 맞출 줄 압니다. 때가 되면 꽃을 미련없이 떨구어 냅니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를 힘차게 밀어 올립니다. 나뭇잎도 풍성하게 밀어 올립니다. 가을이 되면 애써 밀어올렸던 나뭇잎과 열매를 매몰차게 떨구어 냅니다.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에도 얼지 않도록 겨울 발전소를 가동합니다. 펄펄 끓는 심장을 가진 사람도 겨울 산에 두 팔 벌리고 서 있으면 손끝 발끝에 동상(凍傷)이 찾아오는데, 나무는 맨몸으로도 얼지 않고 겨울을 납니다. 나무 발전소가 있기 때문이지요. 나무 발전소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과 용도에 맞게 발전기를 가동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살구나무가 살구꽃을 피우는 것을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나무 발전소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시인의 눈과 가슴에도 발전소가 있다는 방증이 아니겠는지요? 시인의 발전소가 있기에 살구꽃이 피듯 시인의 가슴에 알전구가 필 수 있고, 너를 만나러 가는 길에 알전구를 켜고 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의 눈과 가슴에도 발전소가 있습니다. 그 발전소에서도 항상 맑고 밝고 아름다운 생각들이 발전되고 가동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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