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서리에도 꽃 피울 수 있다면

안도현, '바람이 부는 까닭'

by 인문학 이야기꾼

바람이 부는 까닭

-안도현


바람이 부는 까닭은

미루나무 한 그루 때문이다


미루나무 이파리 수천, 수만 장이

제 몸을 뒤집었다 엎었다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뒤집었다 엎었다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흔들고 싶거든

자기 자신을 먼저 흔들 줄 알아야 한다고


화자는 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바람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변화의 바람이고 개혁의 바람입니다. 바람의 진원지를 찾아 나섭니다. 미루나무 한 그루가 바람의 진원지였습니다. 미루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천, 수만 장의 이파리들이 제 몸을 뒤집었다 엎었다 하고 있습니다. 이웃 미루나무도 제 몸 뒤집기를 반복합니다. 플라타너스도 자작나무도 은빛 반짝이며 제 몸을 뒤집습니다. 연약해 보이는 미루나무 이파리의 제 몸 뒤집기가 세상을 뒤집을 힘으로 발전합니다.

미루나무가 세상을 보니 몇몇 나무에게만 이익이 되고 대부분의 나무들에게는 손해가 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을 뒤집기 위해 자신의 몸부터 뒤집습니다. 자신의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면서 다른 나무들에게 이익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온힘을 다해 제 몸을 뒤집기 시작하자 다른 나무들이 세상 뒤집기에 동참합니다. 조동화 시인은 ‘나 하나 꽃피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중에서

중국 명나라 말기에 홍자성이 지은 『채근담(菜根譚)』이라는 책에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줄여서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고도 합니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차갑고 엄격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에게는 부드러운 잣대를,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흔들고 싶거든 먼저 ‘춘풍추상(春風秋霜)’의 자세로 자신을 돌아보아 한 점 부끄럼이 없을 때 자기 자신을 흔들면 이것이 이웃에 울림을 주고, 이런 울림들이 모여 세상을 흔들 수 있겠지요. 가을 서리에도 나 하나 꽃 피울 수 있다면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아우성으로 세상을 흔들 수 있고, 기미년(己未年) 아우내의 함성으로 세상을 흔들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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