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억센 파도로 스스로를 다스리는데

신경림, '동해바다'

by 인문학 이야기꾼

동해바다-후포에서

-신경림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 한 잘못이 맷방석만 하게

동산만 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신경림 시인은 1991년에 『길』이라는 기행시집을 냅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야기하듯 시로 풀어내었습니다. 시인의 눈에 비친 자연의 모습과 삶의 모습들을 시의 소재로 한 이 시집의 시편들은 쉽게 읽히면서도 진한 울림을 줍니다.


화자는 ‘후포’에서 동해바다를 보고 있습니다. 동해바다는 강물의 맑음이나 흐림을 가리지 않고, 큰 물줄기든 작은 물줄기든 가리지 않고 온갖 물줄기를 받아들입니다. 각양각색의 강물을 감싸고 끌어안는 너그러움을 보이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모진 매로 채찍질하여 푸른색의 바다로 만듭니다.

그러나 화자는 친구의 작은 잘못 하나도 포용하지 못합니다. 어제까지 그렇게 좋았던 친구가,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던 친구가 갑자기 원수보다 미워지기도 합니다. 티끌보다 작은 친구의 잘못이 맷방석보다 크게 보이기도 합니다. 같은 잘못이라도 자신의 잘못은 작게 보이고, 친구의 잘못은 크게 보입니다. 자신이 친구에게 베푼 것은 크게 보이고, 친구가 자신에게 베푼 것은 작게 보입니다. 자신이 친구에게 해 준 만큼 친구가 자신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욕심이, 그 셈법이 있기에 친구의 작은 잘못도 크게 보이겠지요.

친구만 미워지는 게 아닙니다. 자식이 공부를 좀 안 한다고 자식이 미워질 때도 있고, 부모가 잔소리를 좀 한다고 부모가 미워질 때도 있습니다. 다 자신에 베푼 것에 비해 상대의 잘못이 크게 보이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눈에는 상대의 잘못이 크게 보이겠지만, 상대가 자신을 볼 때에는 자신의 잘못이 훨씬 크게 보이겠지요.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 정치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도 있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 범충선공(范忠宣公)이라는 중국 북송(北宋) 때 사람이 자제들을 훈계하면서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을 꾸짖는 데는 밝고,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는 어둡다.”고 하면서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責人之心責己 恕己之心恕人 (책인지심책기 서기지심서인)]”고 했습니다. 내로남불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 새겨들어야 할 명언인 것 같습니다.


세상이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세상이 내 뜻대로 굴러간다고 해도 그 세상이 반드시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가 쨍쨍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비가 오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해만 쨍쨍해도 살 수 없으며 비만 내려도 살 수가 없습니다. 해와 비가 어우러져야 살 수가 있죠. 친구가 자신을 좀 서운하게 했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친구의 사정을 헤아리고 포용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기를 동해바다를 떠올리며 생각해 봅니다.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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