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武陵桃源)은 폐촌(廢村)이 되고

신경림, '내원동 - 주왕산에서'

by 인문학 이야기꾼


내원동 – 주왕산에서

-신경림


물길 끝나는 곳이

무릉도원이라 했던

할아버지들의 옛말은 거짓말이다

이제 마을에는 뜯기고 헐린

어수선하고 스산한 집자리뿐

무성한 갈대들이

등 넘어온 바람을 타고

서럽게 운다

우리 고장 모두 이꼴이라고

세상 두루 다닌 바람이

아무리 달래도 막무가내로


* 내원동은 주왕산 속의 산마을로 한때는 소학교와 양조장까지 있는 삼백여 호의 큰 마을이었지만, 주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주왕산이 그 고장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산에서 구경 오고 놀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산으로 바뀌면서 이제는 서너 채만의 다 쓰러져가는 집과 버려진 농토만이 남은 폐촌이 되었다.


옛날에 내원동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이었습니다. 중국 진(晉)나라 때 살았던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桃花源記)’라는 글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중국 무릉(武陵)이란 땅에 한 어부가 살았습니다. 강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는 상류로 올라가다가 복숭아 숲을 만나게 됩니다. 복숭아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숲을 따라가던 중에 발견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지상 낙원과 같은 큰 마을에 이르게 되고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모두 즐겁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볼거리와 먹거리, 인간관계가 신선이 사는 세상 같았습니다. 이집 저집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나옵니다. 다음에 다시 그곳을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원동은 주왕산 속의 무릉도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국립공원에 놀러오는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는 집들은 헐리고 뜯겨 지금 내원동은 집자리만 남아 있고, 그 집터에 가늘게 피어있는 갈대만이 스산하게 울고 있습니다. 무릉도원과 같던 내원동에 살던 사람들은 이곳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게 떠밀려 갈대만 남기고 도시의 어느 산자락 판자촌에서 갈대의 스산한 울음을 이곳으로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저곳 다 다녀본 바람이 갈대를 찾아와 위로합니다. 내원동만 헐리고 뜯긴 것이 아니라 이 고장 모두가 헐리고 뜯긴 빈 집터뿐이라고, 그러니 너무 서럽게 울지 말라고 갈대를 달랩니다. 너무나 서러운 갈대는 이 집을 떠나 도시 판자촌으로 떠밀려간 이 고을 사람들을 대신해 막무가내로 웁니다.


일제 강점기 시인 이용악은 ’낡은 집‘이라는 시를 씁니다. 시(詩), ’낡은 집‘ 속으로 잠깐 들어가 보겠습니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행복하게 살던 ‘털보네’는 일제 강점기 일제(日帝)의 수탈을 견디지 못하고 고향을 떠납니다. ‘털보네’가 떠난 ‘털보네’ 집은 이렇게 묘사됩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 탐스럽게 열던 살구 /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 울안에 /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국립공원 주왕산을 구경 오는 사람들을 위해 집이 헐리고 뜯겨, 쫓기듯 떠난 내원동 사람들의 삶이나 일제 강점기 일제의 수탈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털보네’의 삶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도연명의 무릉도원도 그 어부가 다음에 찾을 수 있었다면 구경온 사람들로 인해 마을 전체가 헐리고 뜯기고 폐촌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내원동의 무릉도원도, 도연명의 무릉도원도 인간이 발길을 잘못 들여놓는 순간 봄이 와도 복숭아꽃도 피지 않고,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 ‘낡은 집’이 되고, 갈대만이 스산하게 우는 폐촌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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