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낮은 산도 산은 산이다

신경림, '우음(偶吟) - 예산에서'

by 인문학 이야기꾼

우음(偶吟) - 예산에서

-신경림


아무리 낮은 산도 산은 산이어서

봉우리도 있고 바위너설도 있고

골짜기도 있고 갈대밭도 있다

품안에는 산짐승도 살게 하고 또

머리칼 속에는 갖가지 새도 기른다

어깨에 겨드랑이에 산꽃을 피우는가 하면

등과 엉덩이에는 이끼도 돋게 하고

가슴팍이며 뱃속에는 금과 은 같은

소중한 것을 감추어두기도 한다

아무리 낮은 산도 알 건 다 알아서

비바람 치는 날은 몸을 웅크리기도 하고

햇볕 따스하면 가슴 활짝 펴고

진종일 해바라기를 하기도 한다

도둑떼들 모여와 함부로 산을 짓밟으면

분노로 몸을 치떨 줄도 알고

때아닌 횡액 닥쳐

산 한모퉁이 무너져나가면

꺼이꺼이 땅에 엎어러져 울 줄도 안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근심어린 눈으로

사람들 사는 꼴 굽어보기도 하고

동네 경사에는 덩달아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출 줄도 안다

아무리 낮은 산도 산은 산이어서

있을 것은 있고 갖출 것은 갖추었다

알 것은 알고 볼 것은 다 본다


‘우음(偶吟)’은 ‘우연히 읊조리다’는 뜻입니다. ‘얼핏 떠오르는 생각을 시로 읊는 것’을 말하죠. ‘우음(偶吟)’은 ‘무제(無題)’와 함께 한시(漢詩)의 제목으로 많이 쓰입니다.


화자는 충남 예산 지방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예산 지방은 아마 높은 산이 없었나 봅니다. 낮은 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얼핏 떠오른 생각을 시로 읊은 듯합니다. 높은 산이 없다고 이 지방을 무시한 사람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봉우리도 있고, 새도 있고, 산꽃도 있고 금과 같은 보배도 있고, 있을 것은 다 있다고 화자는 항변합니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비바람 치면 몸을 웅크릴 줄도 알고, 불의에 분노할 줄도 알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울 줄도 알고, 알 것은 다 안다고 화자는 항변합니다.

시인은 산을 표면에 내세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우리네 삶을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도회지에 산다고 촌에 사는 사람을 무시하고, 돈이 좀 있다고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직위가 좀 높다고 직위로 사람을 무시하고, 한 방면의 전문성이 좀 있다고 전문성으로 사람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직업으로 무시하기도 하고, 차종(車種)으로 무시하기도 하고, 아파트 평수로 무시하기도 합니다. 마치 우리가 외국인을 볼 때,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형편이 못한 동남아 어느 국가나 아프리카 어느 국가에서 왔다고 하면 무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란 시에서 ‘오래 보고 자세히 보면 아름답고 예쁘지 않은 꽃이 없다’고 했습니다. 들판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들꽃도 그렇게 아름답고 예쁜데 사람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지역과 돈과 직위와 전문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내가 무시했던 사람이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사람이라도 내면에 무엇을 간진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보다 귀한 것들을 간직하고 있고, 나보다 귀한 것들을 알고 있다는 겸허한 생각이 필요함을 이 시를 읽고 알게 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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