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농무(農舞)'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무(農舞)는 농부들이 풍물놀이에 맞추어 추는 춤을 말합니다. 농사가 천하에서 으뜸이 된다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장대 현수막을 가운데 세우고 꽹과리, 북, 날라리(태평소), 징을 울리며 그 소리에 맞추어 빙빙 돌며 흥겹게 추는 춤을 말하죠. 이 시에서 농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가설무대에서 행해지는, 농민들의 실제 삶과 무관한 연기(演技)로서의 춤이 있고, 장거리에서 행해지는 농민들의 실제 삶이 반영된 춤이 있습니다.
이 시에 서사적 줄거리를 채워 넣기 위해서는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화자는 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가설무대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농무를 춥니다. 관(官)이 주최한 마을 대항 농무 대회인 모양입니다. 농민들의 실제 삶과 무관한 가설무대의 농무는 끝이 났습니다.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이 화자의 허망하고 답답한 삶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 허망함과 답답함은 연기로서의 농무가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때문입니다.
1970년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공장이 잘 돌아가야 하고, 공장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저임금의 노동력을 확보해야 하고, 저임금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먹거리인 곡물 가격이 저렴해야 했습니다. 정부의 저곡가 정책의 희생자가 된 농민들은 저곡가의 희생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시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화의 바람은 농촌 정책과 함께 농촌 사람들에게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게 하는, 이촌향도(離村向都)라는 새로운 성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현실에 대한 울분과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화자들은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섭니다. 온 가족이 힘을 모아 뼈빠지게 1년 농사를 지었지만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민들의 비참한 삶을 알리기 위해, 그런 울분과 원통함을 잠시나마 털어내기 위해 장거리로 나서 진짜 농무를 춥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 아니라 ‘농자패가망신(農者敗家亡身)’이라고 알리고 농사가 천하의 으뜸이 되도록 정책을 펴 줄 것을 알리기 위해, 시위(示威)하기 위해 장거리로 나섰는데 따라붙어 호응하는 건 쪼무래기들뿐입니다. 쪼무래기들에 의해 이런 농촌 현실이 공론화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화자네는 원통함과 울분을 징과 꽹과리에 담아 농무의 행진을 계속합니다. ‘도수장’ 앞에서 신명이 절정에 달합니다. 도수장은 도살장(屠殺場)입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숙연해야 할 도수장 앞에서 신명이 난다는 것은 역설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역설적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농촌 현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정책 입안자에게로 향하는 울분과 분노를 농민들은 도수장 앞의 신명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1970년대 경제성장 정책의 이면에는 발버둥치며 살아야 하는 농민들의 울분이 숨어 있습니다. 화자는 직접 농민의 일원이 되어, 농민들이 추는 농무꾼의 일원이 되어 농민들의 울분과 답답함과 원통함과 고달픔을 온몸으로 토로하고 있습니다. ‘한 다리를 들고’ 비정상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삶의 현실이 시대를 넘어 현재에도 아프게 살아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