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넌 뒤에도 뗏목은 필요한가?

신경림, '뗏목 - 봉암사에서'

by 인문학 이야기꾼

뗏목 – 봉암사에서

-신경림


뗏목은 강을 건널 때나 필요하지

강을 다 건너고도

뗏목을 떠메고 가는 미친놈이 어데 있느냐고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빌려

명진 스님이 하던 말이다

저녁 내내 장작불을 지펴 펄펄 끓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절방

문을 열어 는개로 뽀얀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곰곰 생각해본다

혹 나 지금 뗏목으로 버려지지 않겠다고

밤낮으로 바둥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 나 지금 뗏목으로 버려야 할 것들을 떠메고

뻘뻘 땀 흘리며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봉암사는 문경의 희양산에 있는 절이다.


화자는 ‘절방’에 누워 편안한 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장작불을 지펴 펄펄 끓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있으니 아무 근심이 없습니다. ‘문을 열어’ 짙은 안개 가득한 ‘뽀얀 골짜기’의 아름다운 풍광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세상 부러운 게 없습니다. 삶은 왜 아무 걱정 없이 이렇게만 펼쳐지지 않는 것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문득 우리네 삶은 괴로움[고(苦)]과 즐거움[락(樂)]이 차례로 반복된다는 부처님 말씀이 떠오릅니다.


지금 뜨끈한 ‘절방’에 누워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있는 화자는 ‘고(苦)’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절방’을 나서면 ‘고(苦)’가 엄습해 오겠지요. ‘고(苦)’의 원인은 ‘뗏목’에 있는 듯합니다. ‘뗏목은 강을 건널 때나 필요’합니다. 강을 다 건너면 강기슭에 뗏목을 두었다가 다음에 강을 건널 때 사용하면 됩니다. 강을 건너는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다음에는 강을 건널 일이 없을 수도 있고, 다음에 강을 건널 때는 강에 교량에 세워져 뗏목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뗏목을 평생을 두고 떠메고 가는 어리석음 때문에 ‘고(苦)’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한 부처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나아가 화자는 ‘뗏목으로 버려지지 않겠다고 밤낮으로 바둥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산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뗏목이 꼭 필요하니 뗏목을 떠메고 산길을 가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강을 건널 때나 필요했던 자신의 생각과 시편들을 산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버려지지 않겠다고 바둥거리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화자는 자신도 버려야 할 뗏목을 떠메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돈에 대한 생각을 떠메고, 공부에 대한 강박증을 떠메고, 자존심을 떠메고 살아가야 한다는 집착, 그것이 ‘락(樂)’을 멀리하고 ‘고(苦)’를 가까이하는 길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이사할 때 살림살이들을 꺼내보면 지난 십수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이 이구석 저구석에서 많이도 나옵니다. 버리기가 아까워 또 챙겨 갑니다. 챙겨가도 사용하지 않음을 뻔히 알면서도 또 떠메고 갑니다. 이삿짐만이 아니라 버려야 할 생각들도 땀 뻘뻘 흘리며 떠메고 가는 것은 아닌지 이 시를 읽고 생각해 봅니다. 나의 삶의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며 살아오지나 않았는지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고락(苦樂)’의 순환 속에서 강을 건넌 뗏목을 버리는 일이 ‘고(苦)’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이 시를 읽고 생각해 봅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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