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을 보는 서로 다른 관점

귤동리 일박

by 인문학 이야기꾼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전국시대 위(衛)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미자하는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급한 마음에 허락도 받지 않고 왕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당시 허락 없이 왕의 수레를 탄 자는 발뒤꿈치가 잘리는 월형(刖刑)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왕은 미자하에 대해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효심이 깊다고 칭찬했습니다. 미자하가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하나 먹었는데 맛이 너무 좋아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바쳤습니다. 이에 왕은 자신이 먹던 것도 잊고 왕에게 준다며 충심을 칭찬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미자하에 대한 왕의 총애가 식고, 미자하가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왕은 “이놈은 허락도 받지 않고 과인의 수레를 탔으며, 먹다 남은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였다”고 하면서 벌을 주었습니다.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뜻의 ‘여도지죄(餘桃之罪)’라는 고사가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같은 데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칭찬이 죄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하물며 주체가 다르고 대상이 다르다면 상황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칭찬과 비난이 뒤바뀔 수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판단이 나와 다르다고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나의 판단도 틀렸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곽재구 시인(1954년~ )의 ‘귤동리 일박’이라는 시에서도 대상에 대한 판이한 관점을 볼 수 있습니다.


아흐레 강진강 지나

장검 같은 도암만 걸어갈 때

겨울 바람은 차고

옷깃을 세운 마음은 더욱 춥다

황건 두른 의적 천만이 진을 친 듯

바다갈대의 두런거림은 끝이 없고

후두둑 바다 오리들이 날아가는 하늘에서

그날의 창검 부딪는 소리 들린다

적폐의 땅 풍찬노숙의 길을

그 역시 맨발로 살 찢기며 걸어왔을까

스러져가는 국운, 해소 기침을 쿨럭이며

바라본 산천에 찍힌 소금 빛깔의

허름한 불빛 부릅뜬 눈 초근목피

어느덧 귤동 삼거리 주막에 이르면

얼굴 탄 주모는 생굴 안주에 막걸리를 내오고

그래 한잔 들게나 다산

혼자 중얼거리다 문득 바라본

벽 위에 빛바랜 지명수배자 전단 하나

가까이 보면 낯익은 얼굴 몇 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하나 더듬어가는데

누군가 거기 맨 나중에

덧붙여 적은 뜨거운 인적 사항 하나

정다산(丁茶山) 1762년 경기 광주 산

깡마른 얼굴 날카로운 눈빛을 지님

전직 암행어사 목민관

기민시 애절양 등의 애민을 빙자한

유언비어 날포로 민심을 흉흉케 한

자생적 공산주의자 및 천주학 수괴

바람은 차고 바람 새에

톱날 같은 눈발 섞여 치는데

일박 사천 원 뜨겁게 군불이 지펴진

주막방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사람을 사랑하고 시대를 사랑하고

스스로의 양심과 지식을 사랑하여

끝내는 쇠사슬에 묶이고 찢긴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문풍지에 부딪혔다.

-곽재구, ‘귤동리 일박’


이 시의 화자는 200여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다산 정약용이 걸었던 유배의 길을 따라 걷습니다. 혹독한 추위만큼이나 시대의 아픔을 느낍니다. 다산의 시대도 아프고 화자의 시대도 아픕니다. 주막집에서 다산을 생각하며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켜는데 지명수배자 전단이 눈에 들어옵니다. 1980년대에 지명수배자 전단은 흔히 볼 수 있었죠. 1980년대의 지명수배자에 200여 년 세월을 거슬러 다산도 추가됩니다. 현재 지명수배자의 죄명은 다산의 죄명과 같습니다.

누군가 1980년대 지명수배자 전단을 만든 사람들의 관점과 동일한 관점으로 지명수배자 명단에 다산을 슬쩍 끼워 놓았습니다. 1980년대의 지명수배자와 마찬가지로 다산도 ‘유언비어 날포로 민심을 흉흉케 한 자생적 공산주의자’라는 죄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사람을 사랑하고 시대를 사랑하고 스스로의 양심과 지식을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렇다면 1980년대 현재의 지명수배자 전단에 있는 그들도 ‘사람을 사랑하고 시대를 사랑한 죄’밖에 없다는 겁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볼 것인가에 따라 지명수배자들은 ‘애민을 빙자한 공산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백성을 사랑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은 어린이들의 인격 수양을 위해서 선현들의 명언(名言)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명심보감’은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란 뜻이죠.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春雨如膏 行人 惡其泥濘(춘우여고 행인 오기이녕)’ 이는 ‘봄비는 기름과 같이 귀하지만 행인들은 질퍽한 길을 싫어한다’는 뜻이죠. 가뭄 끝에 내리는 봄비는 농작물에 이롭기 때문에 누구나 좋아할 듯합니다. 그러나 짚신을 신을 수밖에 없는 행인들은 질퍽한 길을 싫어할 것이 분명합니다. ‘秋月揚輝 盜者 憎其照鑑(추월양휘 도자 증기조감)’도 위의 구절과 대구를 이룹니다. ‘가을 달은 밝게 비추나 도둑은 그 밝음을 싫어한다’는 뜻이죠. 가로등이 없던 시절, 대낮처럼 밝은 보름달은 누구나 좋아할 듯합니다. 그러나 도둑질하는 사람은 환하게 비취는 보름달을 싫어할 것이 분명합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가 ‘봄비’와 ‘가을달’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반은 작가요 반은 카피라이터인 ‘정철’이라는 사람이 쓴 『한글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물을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는 자주 펼칩니다. 시의 형식을 빌려 약간의 서정성과 감동을 녹여낸 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에 ‘방’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큰 방이 큰방인 것은

곁에 작은방이 있기 때문이다.

작은방이 사라지는 순간

큰방은 단칸방이 된다.

-정철, ‘방’


큰방은 항상 큰방인 것은 아닙니다. 큰방이 작은방이 될 수도 있고 단칸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추보다 크다고 사과가 으스대다가 수박을 만나면 초라해질 수도 있고, 대추가 사라지는 순간 외톨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술을 먹지 못합니다. 체질이 그렇습니다. 술도 못 먹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친구들이 가끔 놀립니다. 그러나 저는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술’을 인생에서 큰 비중으로 두는 사람도 있고, 사색을 영화를 운동을 인생에서 큰 비중으로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에게 비중이 크다고 남도 비중을 크게 하기를 강요해서는 안 되지요. 사물이든 인생이든 다양한 색깔이 있죠. 그 색깔이 나와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색깔이 있음으로 나의 색깔이 빛날 수 있는 것이지요. 다름을 알고 대상을 바라보는 것도 삶의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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