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육지
오늘도 윤산을 오릅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다가 길 가장자리에 쭈그리고 앉습니다. 개미 한 마리를 봅니다. 개미는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동료로부터 먹이가 있는 곳을 알아낸 모양입니다. 생각보다 개미의 속도가 빠릅니다. 쭈그린 자세로 한발 옮깁니다. 개미가 가는 길옆에는 여린 풀잎도 억센 풀잎도 있습니다. 여린 나무도 억센 나무도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좌우를 살펴봅니다. 풀잎의 모양과 나무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한 줄 새삼 느낍니다. 각자의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각자의 모습을 간직하며 사는 식물들을 바라보는 사이에 개미는 자신의 삶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나희덕 시인(1966년~ )은 ‘반 통의 물’이라는 수필에서 “선택보다는 공존이 땅의 본래적 질서라고 할 때, 밭은 숲보다 생명에 덜 가깝다.”고 했습니다. 밭에서는 필요한 채소만 남겨두고 잡초는 제거합니다. 이것이 농사의 기본이죠. 밭은 다양성과 주체성을 배제합니다. 밭은 하나의 품종을 하나의 모습으로 길들이는 공간이죠. 그러나 숲은 다양성과 주체성을 옹호합니다. 누구나 어느 곳에나 뿌리를 내리면 삶이 존중됩니다. 여림은 억셈을 탓하지 않고 억셈을 여림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여린 풀잎은 억센 풀잎이 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여린 풀잎은 바람에 하늘거리는 삶을 즐깁니다. 가시나무는 솔방울이 탐난다고 솔방울을 매달려고 하지 않습니다. 싸리나무는 가시나무의 가시가 부럽다고 가시를 매달려고 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모습으로, 봄이면 힘껏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왕성하게 성장합니다. 가을에는 시들지 않으려고 앙탈을 부리지 않습니다. 굴참나무는 겨울에도 꿋꿋한 소나무가 부러워 소나무를 따라 잎을 매달려고 있지 않습니다. 각자 자리에서 자기의 삶을 살면서 숲이라는 이름으로 조화를 이루고 산의 일원이 됩니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육지와 조화를 이루고 육지의 일원이 되고 싶은 ‘섬’을 만나 보겠습니다. 함민복 시인(1962년~ )의 ‘섬’이라는 시입니다.
물 울타리를 둘렀다.
울타리가 가장 낮다.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함민복, ‘섬’
‘울타리’는 보호, 경계, 접근금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섬’이 울타리를 두른 것으로 보아 섬은 진기한 보물들을 숨겨두었나 봅니다. 울타리가 너무 견고해 아무도 섬에 접근하지 않습니다. 섬은 외롭습니다. 진기한 보물들은 남들이 볼 때 가치가 빛납니다. 남들이 봐주지 않으면 보물도 돌멩이에 지나지 않죠. 섬은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울타리를 낮춥니다. 원래 바다가 울타리였기에 섬은 자신의 인식만 바꾸면 되죠. 인식을 바꾸니 울타리가 길이 되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옵니다. 섬은 자신만의 보물을 다 내어 줍니다. 이제 외롭지 않습니다. 섬은 나만의 삶에서 우리의 삶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모습을 바꾼 것은 아니죠. 자신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육지와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울타리’를 ‘길’로 인식했기 때문은 아니겠는지요. ‘정철’ 작가의 『한글자』에 실려 있는 ‘섬’이라는 글도 읽어보겠습니다.
섬이 외로워 보이는 건
하루 종일 육지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육지만 바라보느라 자신의 품에서도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물이 흐른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철, ‘섬’
함민복 시인의 ‘섬’과 달리 이 작품의 ‘섬’은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진기한 보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육지에 있는 보물로만 마음이 향합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글의 ‘섬’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죠. 섬이 보물로 여기는 ‘꽃’과 ‘새’와 ‘물’이 자기에게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외롭습니다. 섬은 자신의 보물을 보지 못한 채 스스로를 외로움의 틀에 가두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호아킴 데 포사다(1947년~2015년)’라는 사람은 『바보 빅터』라는 책을 썼습니다. 엄청난 재능이 있지만 그 재능을 모른 채 17년을 살았던 ‘바보 빅터’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난 뒤에도 자신을 바보로 살게 만든 사람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바보로 만든 것은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바보라는 틀에 가두었다고 본 것이죠. 그러면서 이 책은 “절대로 우리의 가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도 자신을 과소평가하면 재능을 펼치지 못한다. 남의 재능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가 가진 재능을 발견하라. 당신의 가치는 자신이 만드는 틀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고유의 모양과 색깔이 있습니다. 자신의 고유성은 자랑할 일도 숨길 일도 아니죠. 자신의 모양과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와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