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이명(耳鳴) 치료법

더불어 살아가기

by 인문학 이야기꾼

남에게는 들리지 않고 자기에게만 들리는 것은 이명(耳鳴)이고, 자기에게는 들리지 않고 남에게만 들리는 것은 코골이라고 합니다. 저는 30대 중반에 이명이 왔습니다. 남들에게 멀쩡하게 보이지만 제 귀에서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쉼 없이 났습니다. 제가 말을 하면 바스락거림이 소나기 쏟아지는 소리로 변합니다. 소나기 소리에 남의 목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저의 목소리도 묻혀 버립니다. 직업상 학생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입장인지라 중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처방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때로는 민간요법으로 때로는 의학요법으로 처방을 받았습니다. 처방대로 따랐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랑니가 귀 신경을 자극해서 그렇게 되었으니 사랑니를 뽑으라는 처방도 있었습니다. 멀쩡한 사랑니를 뽑았습니다. 드릴로 사랑니를 여러 조각으로 분해하는 시그러움을 참아낸 것도 이명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몇 주가 지나도 움푹 파인 사랑니 자국만 혀로 만져질 뿐 바스락거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믿는 편입니다. 돌부리를 차고 넘어졌다면 어제 혹은 며칠 전까지 저의 언행의 잘못을 더듬어 봅니다. 넘어질 만큼의 잘못이 포착됩니다. ‘이게 원인이 되어 넘어졌구나’ 하고 반성을 하곤 합니다. 이명의 원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지난 설날 고향에서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같이 놀던 친구들이 다 모였습니다. 한 친구가 꿩을 잡는 엽총을 가지고 왔습니다. 꺼림칙하였지만 따라나섰습니다. 꿩은 보이지 않고 비둘기들이 겨울 들판에 내려앉아 모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교대로 엽총을 발사했지만 비둘기들은 사수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넓은 들판을 이리저리 날아다닐 뿐이었습니다. 공명심이었을까요? 제가 총을 받아들었습니다. 비둘기가 가늠쇠 위에 얹혔습니다. 방아쇠의 차가운 기운이 손끝에 느껴졌습니다. ‘탕’ 소리와 함께 친구들의 함성이 울렸지만 손끝의 차가운 기운이 가슴을 업습해 왔습니다. 순간 여러 번 수업한 적이 있었던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쫒기는 새가 되었다.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인간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비둘기의 집을 파괴합니다. 비둘기는 ‘가슴에 금이 가’는 아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자기를 내몬 인간을 미워하지 않고 축복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를 쫓아낸 것은 결국 인간이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스스로 몰아낸 결과가 된다고 수업 시간에 힘주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제가 마음속에 있는 비둘기를 쫓아낸 것을 넘어서 총으로 쐈으니 응보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화의 새 비둘기를 사살한 응보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정도로는 안 되지. 이명 정도는 되어야지. 아니 이명도 다행이야.’ 속으로 되뇌면서 비둘기의 명복을 빌고 한참을 반성했습니다. 다음날 귓속의 바스락거림이 사라졌습니다. 사랑니를 뽑은 것 때문인지 두어 달 약을 복용했기 때문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비둘기가 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저와 비둘기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제 나름의 이명 치료법이었습니다. 물론 모기 정도는 사정없이 잡습니다. 그러나 웬만하면 미물이라도 존재의 소중함을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대상이 무엇이든 주체와 대상의 주종 관계가 아니라 주체와 주체의 대등한 관계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저에게 돌아올 수 있는 화를 차단하는 길이자, 저를 소중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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