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입을 잘못 놀려 명을 재촉한 경우가 있습니다. ‘양수(楊修)’라는 사람은 총명하여 조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조조를 능가하는 총명함을 뽐내다가 조조의 질투심을 유발해 일찍 죽게 됩니다. 조조가 정원을 하나 만들라고 명을 내립니다. 정원이 완성되자 조조는 한 번 둘러보고 아무 말 없이 문에 ‘活’(활)자를 써놓고 갑니다. 아무도 그 뜻을 몰랐으나 양수(楊修)는 “門(문)에 活(활)자를 써 놓았으니 이는 闊(넓을 활)자로 문이 넓다는 뜻입니다”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문의 크기를 줄였습니다. 조조가 이 사실을 알고 겉으로는 양수를 칭찬했지만 속으로는 질투심이 일었습니다. 자기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차린 양수에게, 자기보다 잘난 양수에게 질투심을 느낀 거죠.
어느 해 북방에서 양젖으로 만든 음료가 진상됩니다. 조조가 먹어보니 별미였습니다. 두고두고 먹기 위해 아껴놓고는 통 위에 ‘一合(일합)’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양수는 그것을 모두에게 한 술씩 먹게 했죠. 조조가 연유를 묻습니다. 양수는 ‘一合(일합)’을 ‘一人一口(일인일구)’로 파자(破字)한 다음 ‘한 사람이 한 입씩 먹으라’고 풀이했습니다. 조조는 웃고 말았지만 양수의 재주에 대한 질투심이 심화됩니다.
조조가 한중 땅을 사이에 두고 유비와 대치하고 있을 때입니다. 조조의 입장에서는 만만찮은 싸움입니다. 빼앗자니 잘 안 되고, 버리자니 아까운 땅입니다. 마침 저녁 밥상에 닭갈비가 올라왔습니다. 닭갈비는 먹으려고 하면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깝습니다. 한중 땅이 닭갈비와 같습니다. 이때 한 장수가 암호를 받으러 옵니다. 닭갈비를 생각하던 조조는 닭갈비를 뜻하는 ‘계륵(鷄肋)’이라고 암호를 하달합니다. 양수도 암호를 전달받습니다. 양수는 계륵이란 암호를 조조가 직접 하달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전군에 철군(撤軍) 준비를 지시합니다. 위신과 관계되는 일이라 직접 철군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자신과 같은 인재가 있음을 알고 은어(隱語)로 철군 지시를 한 것이라 판단한 것이죠.
조조의 질투심은 양수를 군법대로 즉결 처단하게 합니다. 유언비어를 퍼뜨려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죄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형장으로 가는 양수는 조조가 자기를 시기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때가 늦었습니다. 결국 양수의 뛰어난 재주는 가벼운 입 때문에 활짝 피워보지도 못하고 이슬로 사라지고 맙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제갈량은 ‘남보다 똑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남보다 똑똑함을 드러내지 않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당나라 때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라는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개의 성을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겼다고 합니다. ‘오조팔성십일군(五朝八姓十一君)’을 섬길 정도로 처세의 달인이었나 봅니다. 그는 이와 같은 시를 남깁니다.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安身處處宇(안신처처우)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는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입니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친구 관계가 멀어지기도 하고 정치 생명이 끝나기도 하고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조선시대 송강 정철과 같은 이름의 카피라이터가 쓴 『한글자』에 있는 작품 한 편을 읽어보겠습니다.
-정철
총은 불법 무기이고
입은 합법 무기이다
기능은 같다
입과 총의 기능은 같다고 합니다.
민간인이 총을 소지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총은 사람을 죽이는 기능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입은 신체 일부이니 당연히 합법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입의 기능은 총과 같다는 것이 정철 카피라이터의 생각입니다. 총이 몸을 죽이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면 입은 마음을 죽이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합법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해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은 불법 무기를 소지하고 함부로 난사하는 경우와 같다는 것이죠.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을 넘어서 죽음을 부르는 문이 되고 있습니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마을에 있는 ‘말무덤[언총(言塚)]’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마을에 여러 성씨들이 살았는데,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문중끼리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답니다. 어느날 한 나그네가 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산세를 보니 이 마을이 시끄럽겠구나!”하고 하면서 구덩이를 파서 남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묻으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그대로 했더니 싸움이 사라지고 두터운 정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말의 문단속은 철저히 해야 되겠으나 철저한 문단속에도 불구하고 드나드는 말들은 말무덤을 만들어 묻어버리는 지혜가 필요한 게 아니겠는지요.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