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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Nov 28. 2022

언어유희(言語遊戲)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2)

  박재삼(1933~1997) 시인은 언어유희를 사용해 ‘매미 울음에’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한낮은 뒤 숲에서 매미가 우네. 

    

    그 소리도 가지가지의 매미 울음.

    머언 어린 날은 구름을 보아 마음대로 꽃이 되기도 하고 잎이 되기도 하고 친한 이웃 아이 얼굴이 되기도 하던 것을.     


    오늘은 귀를 뜨고 마음을 뜨고, 아 임의 말소리, 미더운 발소리, 또는 대님 푸는 소리로까지 어여뻐 기삐 그려 낼 수 있는 

    明明한 明明한 매미가 우네.

                    -박재삼, ‘매미 울음에’     


  ‘춘향이 마음 초(抄)’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의 화자는 춘향입니다. 한낮에 뒤 숲에서 각양각색의 매미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어린 시절에는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구름이 꽃이 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구름이 잎이 되는 것을 보기도 하고 구름에서 친구의 얼굴을 보기도 했습니다. 구름이 꽃으로, 잎으로, 친구 얼굴로 변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합니다. 오늘은 매미 울음소리가 임의 말소리로, 임의 미더운 발소리로, 임이 대님 푸는 소리로 들립니다. 화자의 마음이 밝고 환해집니다. 그러니 매미 울음소리가 ‘맴맴맴맴’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明明明明’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맴’과 ‘明(명)’은 음이 유사합니다. 음의 유사성을 이용해 임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밝고 맑은 화자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매미 울음이 누구에게는 맵게 들리고 누구에게는 밝게 들립니다. 매미 울음 자체에 정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심리 상태에 따라 기쁘게도 들리고 슬프게도 들리고 맵게도 들립니다. 이런 정서를 언어유희를 사용해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하상욱 작가의 『시로』라는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은 대부분이 언어유희로 되어 있습니다. ‘작가 소개’ 란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작가’, ‘소’, ‘개’ 세 컷 그림으로 ‘작가 소개’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소개(紹介)’는 ‘소개[牛犬]’와 동음이의어입니다. 차례를 뜻하는 ‘목차(目次)’도 ‘발로 목을 차는 그림’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어떤 회사나 기관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에 앞서 훈련받는 사람을 뜻하는 ‘인턴(intern)’을 소재로 한 시는 언어유희의 웃음과 함께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꼬집고 있습니다.     


    人턴,

    사람을

    턴다는

    건가..?

                -하상욱, ‘시로’에서     


  영어의 ‘intern’을 발음의 동일성을 이용해 한자와 우리말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면서 정식 구성원을 미끼로 영혼까지 털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해 사회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퇴근 후에 회식이라뇨.

    회식 후에 퇴근이겠죠.

                    -하상욱, ‘시로’에서     


  단어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해석한 경우입니다. 회사에서의 ‘업무’와 ‘퇴근’의 개념은 직원에 따라 다릅니다. 회식을 업무로 보느냐 퇴근으로 보느냐에 따라 회식 참가 여부가 자율이냐 타율이냐를 가르게 되죠.      


    월세 내다가 

    세월 다가네

                    -하상욱, ‘시로’에서     


  단어를 이루는 글자를 바꾸어서 대상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경우입니다. 월세의 부담이 너무나 가중하여 월세 마련하느라 세월 다 보내는 현실을 풍자적 수법으로 토로하고 있습니다.     


  동음이의어를 잘 모르면 언어유희가 아닌 언어유희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TV 뉴스 백브리핑에 언급된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주체측에서 무엇인가를 잘못하여 사과할 일이 발생했습니다. 공지사항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일부 누리꾼의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고 심심한 사과를 한다고?”라는 댓글이 보였습니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의 ‘심심(甚深)하다’와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의 ‘심심하다’를 잘 몰라서 언어유희 아닌 언어유희를 만들어냈습니다. 

     

  ‘과제 제출에 대한 공지를 하겠습니다. 금일 자정까지 과제를 제출하면 됩니다.’ 이에 한 학생이 질문을 합니다. ‘금일’이 아니고 ‘금요일 아닙니까?’ 이 경우도 ‘오늘’을 뜻하는 ‘금일(今日)’과 ‘일곱 요일 중의 하나’인 ‘금요일(金曜日)’의 의미를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질문한 학생은 정상적인 언어 사용이라고 생각하고 말했지만 언어유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번 주는 임시 휴일이 겹쳐 사흘 연휴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누리꾼은 ‘3일 연휴인데 왜 사흘 연휴라고 하는 거야?’라고 댓글을 답니다. 이 누리꾼은 ‘4일’에 해당하는 ‘나흘’이라는 어휘를 잘 모르고, 우리말 ‘사흘’의 ‘사’를 한자어 ‘사(四)’로 이해하여 언어유희 아닌 언어유희를 만들어 낸 겁니다.  

    

  언어유희는 말장난이지만 단순한 말장난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다양한 생각이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재치있게 표현하여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며, 심각한 문제를 심각하지 않게 표현하여 웃으면서 사회의 문제점을 들여다보자는 뜻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언어유희의 글들을 읽으며 삶이 재미있고 여유롭고 풍성해지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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