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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Mar 06. 2023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길

신경림, '이슬'

        이슬

                    -신경림     


    봄이 되면 나도 대지처럼 두꺼운 옷을 활짝 벗고

    겨우내 감추어 두었던 보석들로 치장한 몸과 팔다리를

    햇살과 바람으로 말끔히 씻어내고 싶지만, 들쳐보니

    감추어 두었던 것은 누렇게 곪은 부스럼과 칙칙한 흉터뿐

    그래도 나는 조심조심 내 몸에서 누더기를 걷어낸다     


    그 부스럼과 흉터에 고이는 것이 맑은 이슬이 못될지라도          


  봄이 되었습니다. 새싹은 겨우내 두꺼운 흙 속에 감추어 두었던 보석의 씨앗을 힘차게 흙 밖으로 밀어올려 대지를 신록의 세계로 만듭니다. 꽃망울은 겨우내 두꺼운 나무껍질 속에 숨겨 두었던 보석의 씨앗을 껍질 밖으로 힘껏 내보내 새봄의 하늘을 오색의 화려함으로 수놓습니다. 새싹과 꽃망울은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한 번뿐인 기회를 살리기 위해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암흑의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려 새싹과 꽃망울은 온 세상을 보석 천지로 만듭니다. 

     

  봄이 되었습니다. 화자도 겨우내 깊이 감추어 두었던 보석을 꺼내 들춰봅니다. 그런데 이건 보석이 아니라 부스럼이고 흉터일 뿐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두꺼운 옷 속에 보석을 감추어 두었나 봅니다. 미리미리 보석 상태를 점검하여 햇살과 바람에 말끔히 씻어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새싹이나 꽃망울처럼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었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보석들의 상태를 점검한 것은 다행입니다. 그래서 부족하나마 보석에 낀 얼룩들을 조심조심 걷어낼 수 있습니다. 얼룩이 진 그 자리에도 이슬은 살며시 다가와 그 흉터와 부스럼을 가려줍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는 엄청난 보석들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봄이 오면, 대학에 입학하면, 취업에 성공하면, 결혼하면, 첫봉급을 타면, 퇴직을 하면 나의 보석을 꺼내리라고 다짐하곤 합니다. 그러나 봄이 오기 전에,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취업에 성공하기 전에 미리 보석을 꺼내 혹시 보석에 끼어 있을지도 모르는 부스럼을 햇살과 바람에 씻어내는 것이 보석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 아니겠는지요. 혼자만 아는 곳에 보석을 깊이 감추어 두었다면 지금 바로 꺼내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석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 아니겠는지요. 

    

  봄의 씨앗들은 혹한의 추위와 암흑의 세월을 인내하고 기다렸다가 실패의 확률이 제로일 때 일제히 세상 밖으로 몸을 내밉니다. 우리는 씨앗처럼 실패 확률을 제로로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있기에 우리의 보석들을 미리미리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겨울이지만 자주 외투를 벗어 자신의 몸에 묻어 있는 부스럼들을 햇살과 바람에 씻어내는 것이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자세이듯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아집과도 같고, 고정관념과도 같은 생각들을 꺼내 햇살과 바람에 씻어내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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