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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으로 남겨둔 감 두 개

신경림, '풍요조2'

by 인문학 이야기꾼

풍요조 2

-신경림


새파란 하늘

이리저리 뻗은 검은 감나무 가지

가지 끝에 까치밥으로 남은

빨갛게 익은 감이 두 개,

초가지붕은 검누렇게 썩었고

한쪽이 무너져앉은 쪽마루에서

두 자매가 밤콩을 까고 있다,

면에서 타온 구호미로 짓는

그 밥 밑에 놓을 콩을 까는

푸릇푸릇 터진 손

버스는 서고 관광객들은

내려서 사진을 찍는다,

까치밥과 초가지붕과 소녀들이

아름답다고 감탄하면서,

이것이 사람 사는

소중한 모습이라 되뇌면서,

피아노와 그림 교습에 시달리는

내 딸에게 보여줘야지

이제는 호텔에서 먹는

뷔페와 갈비에도 질려 굶는

가엾은 우리들의 딸들에게

보여줘야지,

그래서 더욱 감격하면서.


이 시는 어느 농촌에 사는 두 자매의 가난한 삶의 모습과 이들을 바라보는 관광객의 부유한 삶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검누렇게 썩은 초가지붕’, ‘무너져앉은 쪽마루’, ‘구호미’, ‘콩을 까는 터진 손’ 등은 두 자매의 열악한 삶의 모습을 말해줍니다. 자매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와 이웃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행간에 깊이 숨겨두었습니다. 산업화, 도시화 시대와 관련하여 독자의 상상력으로 행간을 채워 넣으라는 시인의 배려입니다.

‘피아노와 그림 교습’, ‘호텔 뷔페와 갈비’ 등은 관광객들의 풍요로운 삶의 모습을 말해줍니다. 관광객들은 두 자매의 삶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합니다. ‘푸릇푸릇 터진 손으로 콩을 까는’ 두 자매 또래의 자기 딸들은 피아노와 그림 교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호텔 뷔페에도 질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런 딸들이 너무나 가엾습니다. 무너져앉은 쪽마루의 두 자매의 처절한 삶의 현실을 사진으로 찍어 자기 딸들에게 보여주면 교육적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 딸들에게 보여줄 좋은 교육 자료를 확보했다고 감격까지 합니다. 검누렇게 썩은 초가지붕의 두 자매의 모습은 아름답고, 뷔페에도 질려 굶는 자기 딸들은 가엾다고 합니다.


맹자(孟子)는 인간 본성의 하나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뜻이죠.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누구나 측은한 마음이 들어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겁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아이의 부모와 친해지기 위해서도 아니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지나쳤을 경우 받을 비난이 두려워서도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맹자는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고까지 했습니다.[無惻隱之心 非人也(무측은지심 비인야)]


맹자의 논리로 본다면 이 관광객들은 측은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남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의 도구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관광객의 딸들이 이 풍경을 찍은 사진을 보면 무엇을 배우겠는지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겠는지요? 과연 두 자매를 더불어 살아야 하는 대상으로 여길까요? 부모와 마찬가지로 가난을 자기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겠는지요?


제목은 풍요의 노래입니다. 관광객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두 개의 감을 까치밥으로 남겨놓을 수 있는 자매의 삶이야말로 풍요로운 삶이 아니겠는지요?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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