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주고 가려주기

비켜준다는 것은

by 인문학 이야기꾼

세계 최고의 역사를 간직한 테니스 대회는 윔블던 테니스 대회입니다. 윔블던 테니스 코트는 잔디코트입니다. 지금 테니스 코트의 대세는 콘크리트와 고무 등을 이용해 만든 하드 코트이죠. 코트 관리의 용이성과 테니스공의 바운드가 일정하다는 장점이 있어 선수들은 대부분 하드 코트에서 시합을 합니다. 테니스공이 일정한 바운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잔디 코트도 단단해야 합니다. 코트가 무르다면 잔디는 잘 자라겠지만 공은 잘 튀지 않습니다. 공이 하드 코트처럼 튀는 단단한 지면에서 어떻게 잔디가 자랄 수 있는지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 채 윔블던 경기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테니스 동호인들은 흙으로 된 클레이 코트에서 대부분 공을 치죠. 단단하고 평탄한 바닥을 유지하기 위해 소금을 뿌리고 물을 뿌리고 육중한 롤러로 다집니다. 너무 단단하기에 이곳은 식물이 싹을 틔울 수 없는 공간이 됩니다. 한번은 테니스장 가장자리에 아기 주먹만한 버섯이 머리를 빼꼼히 내민 모습을 보았습니다. 테니스장 지면은 연필로 찔러도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합니다. 그런 지면을 어떻게 그 연약한 버섯이 뚫고 올라왔는지 의아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도현 시인(1961년~ )의 ‘비켜준다는 것’을 읽고서야 버섯의 탄생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둥굴레 새싹이

새싹의 대가리 힘으로

땅을 뚫고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게 아니다


땅이 제 몸 거죽을 열어 비켜주었으므로

저렇드키, 저렇드키

연두가 태어난 것


땅이 비켜준 자리

누구도 구멍이라 말하지 않는데

둥굴레는 미안해서 초록을 펼쳐 가린다

-안도현, ‘비켜준다는 것’


둥굴레 새싹이 땅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것은 땅이 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땅이 자기의 자리를 비켜주었기 때문에 싹이 틀 수 있었다는 거죠. 둥굴레도 고마워서 땅에게 무언가 베풀고 싶습니다. 자기 때문에 볼품없게 된 땅을 자기의 잎으로 가려줍니다. 식물들은 비켜주고 가려주는, 인간이 해야 할 행위를 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둥굴레 새싹은 하찮은 존재일 수 있습니다. 하찮은 존재이지만 내 것을 지키려고 하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둥굴레 새싹과 땅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가치는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만물이 서로에게 길을 열어주고 비켜주고 가려주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나무의 단단한 껍질을 뚫고 잎이, 꽃이 피어나는 것은 혼자서는 안 되죠. 나무가 밀어주고 껍질이 길을 열어주고 바람이 용기를 주어야 가능합니다.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주위의 배려가 너무 큽니다. 우리는 비켜준 길로부터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가려준 둥굴레로부터 보답하는 법도 배웁니다.

비켜주는 은혜를 입은 것이 비단 둥굴레만은 아닙니다. 나희덕 시인의 ‘못 위의 잠’을 읽으면 제비도 사람도 비켜주는 은혜를 입어 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깨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 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 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 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 ‘못 위의 잠’


제비집이 너무 작아 아비 제비는 새끼 제비들에게 잠자리를 양보합니다. 아비 제비는 제비집 옆에 박아 놓은 못 위에 위태롭게 앉아 잠을 잡니다. 아비 제비를 바라보는 화자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실직한 아버지를 따라 일터에서 돌아오는 엄마 마중을 갑니다. 엄마는 피곤에 지쳐 반쪽 난 달빛처럼 창백합니다. 아버지는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지 좁은 골목길을 세 아이와 아이의 엄마에게 양보합니다. 성인이 된 화자는 못 위에서 잠을 자는 아비 제비를 통해 유년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아비 제비가 새끼들이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비켜주는 것이나,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골목길을 비켜주는 것이나 그 마음은 같습니다. 배려니 희생이니 이런 말을 아버지에게 부여하는 것이 사치일 수 있습니다. 가장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만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던 그 시절의 아버지, 아버지가 비켜주었던 자리를 성인 화자는 가슴이 시리도록 떠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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