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신을 말살하여 조선을 영구히 지배하기 위해 지어진 조선총독부건물은 1995년에 철거되었습니다. 철거되기 전 이 건물은 중앙청 건물로 사용되다가 나중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게 되었죠. 국립중앙박물관은 오천 년 우리 문화유산의 정수만을 보관해 둔 곳입니다. 이곳에 일본 수학여행단을 포함한 일본 관광객이 엄청나게 왔다고 합니다. 그들이 와서 우리나라 문화의 우수성을 배우고 갔을까요? 아니면 과거 영광의 재현이라는 소망을 가슴에 안고 갔을까요? 누구에게 영광의 역사였다면 누구에게는 치욕과 고통의 역사였습니다. 관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누군가 땅을 빼앗아 가면 누군가는 땅을 빼앗겨야 하죠. 땅이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는 없으니까요. 누군가 지배한다면 누군가는 지배당해야 합니다. 지배도 없고 피지배도 없는, 정복도 없고 피정복도 없는,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곽재구 시인(1954년~ )은 ‘받들어 꽃’을 통해서 구현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놀이를 한다
장난감 비행기 전차 항공모함
아이들은 저희들 나이보다 많은 수의
장난감 무기들을 횡대로 늘어놓고
에잇 기관총 받아라 수류탄 받아라
무서운 줄 모르고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
한참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으니
아뿔싸 힘이 센 304호실 아이가
303호실 아이의 탱크를 짓누르고
짓눌린 303호실 아이가 기관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받들어총을 한다
아이들 전쟁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했듯이
아버지의 슬픔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떠들면서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과 학용품 한아름을 골라주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얘기했다
아름답고 힘있는 것은 총이 아니란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별과
나무와 바람과 새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늘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은 것이란다
아파트 화단에 피어난 과꽃
한 송이를 꺾어들며 나는 조용히 얘기했다
그리고는 그 꽃을 향하여
낮고 튼튼한 목소리로
받들어 꽃
하고 경례를 했다
받들어 꽃 받들어 꽃 받들어 꽃
시키지도 않은 아이들의 경례소리가
과꽃이 지는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흔들었다
-곽재구, ‘받들어 꽃’
‘받들어총’은 군대에서 총을 들고 하는 경례입니다. 최고 지휘관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경례이지요. 아이들이 전쟁놀이를 합니다. 항공모함이 있고 기관총과 수류탄도 등장합니다. 전쟁에서 진 아이가 이긴 아이에게 경의와 복종의 표시로 받들어총을 합니다. 전쟁의 폭력성이 순수해야 할 아이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음에 화자는 슬픔을 느낍니다. 그래서 총 대신 꽃을 줍니다. 총은 파괴의 섬뜩함을 꽃은 존재의 아름다움을 환기하죠. ‘받들어총’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진 쪽이 이긴 쪽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폭력적 이데올로기입니다. 반면에 ‘받들어 꽃’은 별과 나무와 바람과 새와 꽃을 나누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름다움을 향하는 사랑의 이데올로기가 됩니다. 시인은 남을 이기기 위한 연습을 하는 아이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의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혼자의 가르침으로 사랑의 이데올로기가 울려 퍼질 수 있을까요? 조동화 시인(1949년~ )은 ‘나 하나 꽃피어’라는 시에서 혼자서라도 시작하면 사랑의 이데올로기가 울려 퍼질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네가 물들면
결국 온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나만이라도’라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모두가 ‘나만이라도’라는 생각을 가지면 풀밭이 꽃밭이 될 수도 있고 온 산이 붉게 물들 수도 있습니다. 나만이라도 실천한다면 폭력적인 이데올로기를 사랑의 이데올로기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소통하기 위해 휴대폰이 있습니다. 그러나 휴대폰을 나 혼자만 가지고 있으면 소통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휴대폰은 의미가 없습니다. 휴대폰은 많이 가질수록 소통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휴대폰이든 꽃이든 나만 가지면 소통이 안 되고 더불어 살기 어렵습니다.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