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무인도'
-신경림
너는 때로 사람들 땀 냄새가 그리운가 보다
밤마다 힘겹게 바다를 헤엄쳐 건너
집집에 별이 달리는 포구로 오는 걸 보면
질척거리는 어시장을 들여다도 보고
떠들썩한 골목을 기웃대는 네 걸음이
절로 가볍고 즐거운 춤이 되는구나
누가 모르겠느냐 세상에 아름다운 게
나무와 꽃과 풀만이 아니라는 걸
악다구니엔 짐짓 눈살을 찌푸리다가
놀이판엔 콧노래로 끼여들 터이지만
보아라 탐조등 불빛에 놀라 돌아서는
네 빈 가슴을 와 채우는 새파란 달빛을
슬퍼하지 말라 어둠이 걷히기 전에 돌아가
안개로 덮어야 하는 네 갇힌 삶을
곳곳에서 부딪히고 막히는 무거운 발길을
깃과 털 속에 새와 짐승을 기르면서
가슴속에 큰 뭍 하나를 묻고 살아가는
너 나의 서럽고 아름다운 무인도여
무인도와 육지의 대비가 선명합니다. 무인도는 ‘나무와 꽃과 풀’이 있습니다. 새파란 달빛도 있고, 새와 짐승도 있고, 안개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아름답지만 갇혀 있기에 혼자만의 아름다움입니다. 육지는 ‘질척거리는 어시장’이 있고, ‘떠들썩한 골목’이 있습니다. 어시장과 골목에는 악다구니가 있고 콧노래가 있고, 사람들 땀냄새가 있고, 집집마다 별이 달려 있습니다.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무인도는 질척거리고 떠들썩한 육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인도는 ‘밤마다 힘겹게 바다를 헤엄쳐 건너’ 육지로 가는 꿈을 꿉니다. 꿈을 꾸면서 즐거워 춤을 춥니다. 그러다가 ‘탐조들 불빛’에 놀라 혼자만 있는 무인도의 현실로 돌아옵니다. 혼자만의 가슴을 새파란 달빛으로 채우고, 달빛이 물러가면 안개로 채울 수밖에 없는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러다가 탐조들 불빛이 물러가면 또 큰 뭍을 향해 힘겨운 헤엄치기를 반복합니다.
여기에서 극적 반전이 일어납니다. 갇혀 있고 혼자인 무인도의 삶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나무와 꽃과 풀과 새와 짐승을 기르면서, 그 아름다움에 만족하지 않고 사람들 땀냄새와 사람들 콧노래를 그리워하는 무인도를 서럽도록 그리워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화자입니다. 화자는 그런 무인도를 서럽지만 아름답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부분을 가득 채운 채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결핍의 부분이 있죠. 결핍은 그리움으로 채울 수밖에 없습니다. 무인도는 육지를 그리워하고, 육지는 또 무인도를 그리워하죠.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부러워 그의 능력을 채우고 싶고,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부러워 그의 능력 또한 채우고 싶어집니다. 그러다가 ‘탐조등 불빛’에 의해 현실로 돌아오면 자신의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입니다.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을 그리워하며, 그것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위대성이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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