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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내리는 날에

신경림, '겨울날'

by 인문학 이야기꾼

겨울날

-신경림


우리들

깨끗해지라고

함박눈 하얗게

내려 쌓이고

우리들

튼튼해지라고

겨울 바람

밤새껏

창문을 흔들더니

새벽 하늘에

초록별

다닥다닥 붙었다

우리들

가슴에 아름다운 꿈

지니라고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은 폭설로 변하고 모든 것을 고립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화자는 함박눈에서 깨끗함을 보고 있습니다. 함박눈을 보고 함박눈처럼 더욱 깨끗해지라고 함박눈은 하얗게 내려 쌓인다고 합니다.

안도현 시인은 ‘우리가 눈발이라면’이라는 시에서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 사람이 사는 마을 / 가장 낮은 곳으로 /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고 했습니다. 함박눈을 따뜻하게 느끼는 것은 시인의 특이한 능력입니다.


겨울바람이 세차게 창문을 흔들어댑니다. 창문 틈새로 혹한의 바람이 방안까지 침투합니다. 그러나 화자는 겨울바람이 우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준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굳건히 맞설 수 있는 튼튼함을 키워주기 위해 겨울바람이 창문을 흔든다고 합니다.

김남조 시인은 ‘설일’이라는 시에서 ‘겨울 나무와 / 바람 /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 나무도 바람도 / 혼자가 아닌 게 된다’고 했습니다. 겨울바람은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겨울바람은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하는, 앙상한 겨울 나무의 친구가 되어 줍니다. 겨울바람과 겨울나무를 친구로 만들어주는 것 또한 시인의 특이한 능력인가 봅니다.


눈이 지나간 새벽하늘에 초록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습니다. 무엇이 바쁜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산동네 집들의 등불들이 새벽 초록별처럼 초롱초롱 밝혀지고 있습니다. 새벽하늘의 초록별처럼 새벽 산동네에 켜지는 등불에서 화자는 아름다운 꿈을 보고 있습니다.

박노해 시인은 ‘별은 너에게로’라는 시에서 ‘어두운 길을 걷다가 /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 절망하지 말아라 // (중략) 가장 빛나는 별을 지금 / 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 /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새벽녘 산동네에 켜지는 초록 등불에서 미래에 실현될 아름다운 꿈을 읽을 수 있는 것 역시 시인의 신비한 능력인가 봅니다.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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