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감동시키는 '을'의 배려

갑질과 배려

by 인문학 이야기꾼

앞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장석만 교수의 『철학만담』에서 한 편 더 가져왔습니다. 이번에는 공자의 제자 ‘자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 자권(공자의 제자)은 아버지와 함께 외출합니다. 아버지는 자꾸 오들오들 떠는 아들을 ‘사내 녀석이 이런 추위도 못 견디고 떨고 있다’며 꾸짖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입고 있는 옷을 만져 보았습니다. 솜옷을 입어도 추운 날씨에 아들은 홑옷을 입고 있었던 겁니다. 자권의 아버지는 새로 얻은 아내가 제가 낳은 자식에게만 잘해주고 자권에게는 정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추운 날씨에 홑옷을 입힌 것을 본 아버지는 화가 치밀었죠. “당장 돌아가서 네 계모와 헤어지겠다.” 아버지는 즉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자권은 조용히 말합니다. “만일 어머니와 헤어진다면 당장 세 동생이 또 다른 계부 밑에서 울게 되지 않겠어요? 하지만 어머니를 그대로 두신다면 저 하나만 참으면 됩니다. 아버지, 세 동생이 모두 가엽게 되느니 차라리 저 혼자 참고 견디겠어요.” 아버지는 자권이 하도 기특하여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서 자권이 없는 틈을 타 계모에게 오늘 자권과 주고 받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계모는 남편의 말을 듣고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다음날부터 계모는 자신이 낳은 세 아들보다도 자권을 더욱 극진히 보살펴 주었습니다.


‘갑을 관계’는 계약을 맺을 때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용어죠. 수평적 나열의 의미였지만 인권의 성장과 함께 의미가 변화하여 주종이나 우열의 의미로 쓰입니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갑’이라 하고, 불리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을’이라고 하죠. 갑이 을에게 이래라저래라하며 제멋대로 하는 짓을 ‘갑질’이라고 합니다. 자권의 계모가 자권에게 한 행동이 갑질인 셈이죠. 자권은 을의 위치에 있지만 갑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배려의 힘으로 계모의 마음마저 감동시키죠. 자권은 계모의 갑질도, 계모의 갑질을 안 친부의 노여움도 세 이복동생에 대한 배려를 통해 사그라들게 합니다. 을의 배려가 더 감동적인 사례는 또 있습니다. 정용주 시인의 ‘밥’이라는 시를 읽어 보겠습니다.


뼈가 굳어 가는 병에 걸린 그녀는

무허가 지압집 3층 계단을 오르며

자꾸만 나를 쳐다봤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신발을 신고

한 칸씩 계단을 오르는 그녀는

어디 가서 밥 먹고 오라고

숟가락을 입에 대는 시늉을 했다.

-정용주, ‘밥’


‘그녀’는 무서운 병에 걸렸습니다. 가난 때문인지 지압집이 용하다는 소문 때문인지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않고 무허가 지압집에서 진료를 받습니다. 지압집 3층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힘겨워 보입니다. ‘나’와 ‘그녀’는 어떤 관계인지 모릅니다. 남편으로 볼 수도 있고 자식으로 볼 수도 있고 친구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보다 건강상 갑의 위치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심각한 병을 걱정해야 할, 건강상 을의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나’의 식사를 챙기고 있습니다. 배려를 넘어서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죠.

시인은 자신의 목숨보다 남의 배고픔을 먼저 걱정하는 이 여인의 헌신적인 사랑을 본받으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여인의 행동을 보여줄 뿐이죠. 시인은 한 장면을 포착해서 보여줄 뿐인데 이 시를 읽는 사람은 며칠 동안이나 시 속의 여인을 떠올리며 연민과 공감의 정서를 느끼게 됩니다. 시의 위대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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