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
‘좌우봉원(左右逢源)’이라는 말은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로, ‘가까이에 있는 모든 사물이 학문의 근원이 된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기주 작가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보고 들은 것이 좌우봉원이 되어 좋은 글을 많이 썼습니다. 『언어의 온도』라는 책의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지하철에서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 가는데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시청합니다. 추임새를넣어가며 뉴스 시청에 정신이 없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무릎에 손은 얹고 ‘이어폰 끼고 보세요’ 한 마디를 하자, ‘알았어요. 당신 말 들을게요’ 하면서 이어폰을 끼고 뉴스를 시청하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작가는 큰 사랑과 작은 사랑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그렇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은 작은 사랑이죠. 상대가 선물을 원할 수도 있고 돈을 원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한다면 그것을 해줄 수 있죠. 그러나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으면 사랑이 식을 수도 있으니 작은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큰 사랑입니다. 상대가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고 이것이 배려입니다. 배려는 큰 사랑이라는 것을 작가는 말합니다.
상대가 듣기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해 한 해 더 공부하고 있는 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어느 대학에 다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죠. 취업 못한 자식이 있음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자네 아들 어디 취직했어?’라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아킬레스건은 있습니다. 이걸 일부러 건드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배려와 사랑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이죠. 이런 사람의 언어의 온도는 너무 차가워서 온도계로 측정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복효근 시인(1962년~ )의 ‘우산이 좁아서’라는 시는 배려의 참모습을 보여줍니다.
왼쪽에 내가
오른쪽엔 네가 나란히 걸으며
비바람 내리치는 길을
좁은 우산 하나로 버티며 갈 때
그 길 끝에서
내 왼쪽 어깨보다 덜 젖은 네 어깨를 보며
다행이라 여길 수 있다면
길이 좀 멀었어도 좋았을 걸 하면서
내 왼쪽 어깨가 더 젖었어도 좋았을 걸 하면서
젖지 않은 내 가슴 저 안쪽은 오히려
햇살이 짱짱하여
그래서 더 미안하기도 하면서
-복효근, ‘우산이 좁아서’
비를 맞아 옷이 젖으면 몸도 마음도 축축해지고 우울해집니다. 그래서 영화 주인공의 슬프고 우울한 정서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비를 맞는 모습이 제격이 됩니다. 눈 맞는 것과 달리 비를 맞는 것은 누구나 싫어하죠.
그런데 여기 비 맞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의 우산을 두 사람이 쓰고 갑니다. 상대의 옷이 젖지 않기 위해서는 내 옷이 더 젖어야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한사코 상대 쪽으로 우산을 밉니다. 상대의 어깨가 젖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자신의 옷이 젖지 않으면 상대에게 미안합니다. 이성적으로 따지면 내가 손해본 것 같은데 감성적으로는 뿌듯하여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것이 배려이고 사랑입니다. 비 맞는 것을 싫어하는 당신에게 당신이 싫어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보다 더욱 큰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묻습니다. ‘제가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 말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그것은 서(恕)이다.[其恕乎 기서호].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아야 한다.[己所不欲 勿施於人 기소불욕 물시어인]’고 답해 줍니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남도 마땅히 하기 싫은 일이기 때문에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게 하는 것보다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 큰 사랑이라고 이기주 작가와 공자는 말하는 겁니다. 공자가 가르쳐 주는 배려의 의미를 우리는 지하철의 어느 노부부의 대화에서 깨닫기도 하고, 비오는 날 우산 속에서 깨닫기도 합니다.
전한 시대 학자인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이라는 책에 실려 있는 ‘절영지연(絶纓之宴)’이라는 고사성어도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갓끈을 끊고 즐기는 연회’라는 뜻으로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해 준다.’는 속뜻을 가지고 있죠.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공을 세운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해 연회를 성대하게 베풀었습니다. 총희(寵姬)로 하여금 술시중을 들게 했죠. 연회가 밤까지 이어졌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져버렸습니다. 어둠을 틈타 총희의 손을 잡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총희는 그자의 갓끈을 잡아 뜯었습니다. 불을 켜서 갓끈이 끊어진 자를 찾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신하들에게 갓끈을 모두 끊으라고 합니다. 신하들은 모두 갓끈은 끊고 연회를 이어갔습니다. 3년 뒤 전쟁이 일어났고 한 장수의 용맹으로 초나라가 승리했습니다. 왕이 그 장수에게 어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냐고 물었습니다. 그 장수는 3년 전 술에 취해 왕의 총희를 희롱했을 때 왕의 용서에 은혜를 갚은 것이고 했습니다.
인권이 최상의 가치가 된 요즈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이지만, 신화적 가치가 현실적 가치와 병존하던 시대라 개연성이 있는 사건입니다. 신하가 왕이 아끼는 여인을 희롱하는 일이 발생했고, 갓끈이 있으니 범인은 금방 잡히겠지요. 갓끈을 잃은 신하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범인이 밝혀진 후라면 왕도 범인을 용서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 순간 왕은 모든 신하에게 갓끈을 끊으라고 하죠. 범인을 찾지 않겠다는 겁니다. 왕은 여인보다 전쟁에 공이 있는 장수를 더 아꼈나 봅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신하는 임금의 용서가, 임금의 배려가 너무나 고마워 언젠가 목숨으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하게 되죠. 잘못이 클수록 배려에 대한 고마움의 크기도 큽니다. 고마움이 클수록 고마움은 반성과 더불어 아주 오랫동안 가슴을 떠나지 않고 감동으로 되살아납니다.
저는 시골 면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쯤이었습니다. 연필이 필요해 친구들과 함께 문방구에 들렀습니다. 간판이 ‘서울목공소’로 기억됩니다. 안쪽에서 아저씨는 목공일을 하고 문방구에는 아주머니가 가게를 보았습니다. 연필을 사기 위해 우리는 ‘아줌마’하고 여러 번을 불렀습니다. 한참을 있어도 아주머니가 안 나옵니다. 친구들이 진열대 위에 있는 연필을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는 겁니다. 저도 한 자루를 집어 들었습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얼마나 갈등을 했나 모릅니다. 이걸 훔치지 못하면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머니에 집어 넣었습니다. 주머니가 얕아 아무리 찔러 넣어도 야속하게도 연필 꼬리가 보이는 겁니다. 이때 아주머니가 나왔습니다. 무엇 사러 왔냐고 물었죠. 친구들은 가고 저 혼자 벌개진 얼굴로 대답도 못하고 연필 꼬리만 잡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의 시선이 연필 꼬리를 잡은 제 손에 머물자 저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신기하게도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우는 저를 꼭 안아 주셨습니다. 꼬리가 보이던 연필도 덤으로 얻었지요. 벌써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 아주머니의 용서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도둑을 위로할 수 있는 아주머니의 마음은 그날 이후 제 삶의 방향으로 가슴 한편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서울목공소’는 서울로 갔는지 간판과 함께 아주머니의 모습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