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문학 이야기꾼 Oct 04. 2023

절망을 치유하는 방법

김사인, <조용한 일>

        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화자는 갈등에 휩싸여 있습니다. 갈등은 소망과 현실의 괴리에서 발생합니다. 화자의 소망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그 소망이 충족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것 저것 해 보았지만 갈등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냥 있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려앉습니다. 곁에 앉은 낙엽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딱딱한 껍질을 뚫고 나온, 봄의 연약한 이파리가 한여름의 뙤약볕과 한밤의 어둠들을 견디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나무에게 에너지를 공급했습니다. 그러나 낙엽은 겨울이 오기 전에 스스로 아득한 공간으로 떨어져야 할 운명을 안고 있습니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제철에 떨어지는 것만도 서러운데 철이르게 떨어져야 한다니 그 서러움은 얼마나 크겠는지요.

  모든 걸 던지고도 때 이르게 떨어진 낙엽은 위로받아야 할 처지이지만 오히려 슬며시 내려앉아 화자를 위로해 줍니다. 큰 목소리로 생색내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조용히 ‘그냥’ 있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그냥’이겠습니까. 자신의 아픔은 속으로 삭이며 남의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은 내세우기를 앞세우는 세상에서 그냥일 수가 없습니다. ‘해 뜨고 바람 부는 일’이 그냥이 아니라 우주의 원리이듯이 힘든 사람 곁에 조용히 있어주는 일도 그냥이 아니라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함을 생각해 봅니다.  

    

  상심과 절망은 치유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낙엽 하나에서도 상심과 절망은 치유될 수 있습니다. 남의 상처를 볼 수 있는 눈, 남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자신의 절망을 지유할 수 있는 길입니다. 어떤 언어로도 치유될 수 없던 절망감을 낙엽 하나가 치유할 수 있음을 이 시를 읽고 알게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소리로 듣는 어느 해 가을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