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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Oct 23. 2023

소설 <동백꽃>에 나타난 심리학 이야기

-허구적 합의 효과

  김유정(1908~1937) 작가의 <동백꽃>은 1930년대 농촌을 배경으로하는 우리나라 대표 소설입니다. 열일곱 살 청춘 남녀의 순박한 사랑 이야기가 해학적으로 펼쳐집니다. 그런데 사랑 고백의 방법이 이색적입니다. 

  마름(지주의 대리인)의 딸인 ‘점순이’는 소작인의 아들인 ‘나’에게 이성으로서 관심이 있습니다. 어느날 ‘점순이’가 ‘나’에게 구운 감자를 줍니다. ‘점순이’가 주는 감자는 사랑 고백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데 ‘나’는 감자를 거절합니다. 그 순간 점순이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얼굴은 홍당무처럼 새빨개지며 급기야 눈물까지 흘립니다. ‘나’가 감자를 거절한 것을 ‘점순이’는 사랑 고백의 거절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점순이는 그 앙갚음으로 ‘나’의 닭을 괴롭힙니다. 씨암탉의 볼기짝을 쥐어박는가 하면 ‘우리’ 수탉과 자기네 수탉을 잡아다가 닭싸움을 붙이기도 합니다. 이런 앙갚음은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점순이’의 의도된 행동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나’의 수탉이 빈사지경에 이른 모습을 보이자 ‘나’는 지게막대기로 점순이네 수탉을 단매로 때려죽입니다. 그 순간 소작인의 지위마저 박탈되지나 않나 하는 불안감에 ‘나’는 ‘엉’ 울어버립니다. 

  이때 ‘점순이’가 다가와 “다음부터 안 그럴 테냐?”라고 묻습니다. 닭을 때려죽이지 않을 것인지, 자기의 사랑 고백을 거절하지 않을 것인지 영문도 모른 채 “그래!”라고 대답합니다. 이 순간 ‘점순이’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파묻힙니다. 그때 ‘나’는 노란 동백꽃 향기와도 같은 이성에 대한 사랑의 눈을 뜨게 됩니다. 

     

  ‘점순이’는 ‘나’에게 감자를 주면서 “너 집엔 이거 없지?”라고 말하면서 줍니다. 감자를 주는 것은 마름의 지위를 과시하거나 소작인의 아들을 무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감자를 거절당했을 때 점순이의 표정이나 행동을 통해 볼 때 감자를 주는 행위는 사랑의 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노란 동백꽃 속으로 파묻혀 알싸하고도 향긋한 냄새에 아찔함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도 감자를 준 것이 사랑의 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먹거리가 부족한 봄에 귀한 감자를 특별히 너에게 준다는 보다 더 큰 의미의 사랑 고백인 것입니다. 점순이는 자신의 의도를 상대방이 당연히 알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심리학은 ‘왜 그런 행동이나 생각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실험을 통해 찾은 결과물인 셈입니다. 점순이가 자신의 의도를 상대방도 알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허구적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입니다. ‘허구적 합의 효과’는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남도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믿는 현상입니다. 어떤 음식이 나에게 맛있으면 남에게도 맛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책이 나에게 유용하면 남에게도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좋아하는 책이나 좋아하는 색깔이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교훈 역시 이 ‘허구적 합의 효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점순이’가 ‘허구적 합의 효과’를 미리 알았더라면, 소작인으로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나’의 처지를 이해하고 ‘나’의 약점을 자극하는 ‘너 집에 이거 없지?’라는 말은 하지 않았겠지요. 오히려 ‘내가 먹어 보니까 감자가 맛있어서 가지고 왔어. 맛있는 것 먹을 때마다 네가 생각나. 한번 먹어봐.’라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점순이의 자존심은 조금 상할 테지만 ‘나’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이성에 눈뜨지 못한 ‘나’를 이성에 대한 사랑으로 이끄는 데 오히려 큰 역할을 하지 않았겠는지요.  

   

    다른 곳은 다 놔두고

    굳이 수숫대 끝에

    그 아슬아슬한 곳에 내려앉은 이유가 뭐냐?

    내가 그렇게 따지듯이 물으면  

   

    잠자리가 나에게 되묻는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안도현, <나와 잠자리의 갈등1>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수숫대 끝에 앉은 잠자리가 위태롭습니다. 그 아슬아슬한 수숫대 끝에서 평평한 지상으로 내려오면 안전한 삶이 될 것으로 판단하여 내려오라고 합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옳은 것이니 잠자리의 입장에서도 옳은 것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허구적 합의 효과’죠. 그러나 잠자리가 인간을 볼 때, 인간이 서 있는 지상이 훨씬 위태롭게 보입니다. 질주하는 자동차와 난무하는 언어의 파편들, 인간들이 사는 지상이야말로 아슬아슬한 곳입니다.     


  ‘허구적 합의 효과’의 치료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갈등의 많은 부분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만한 인간관계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상대의 강점은 최대한 살려서 이야기하고 상대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원만한 인간관계의 출발임을 문학 작품을 통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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