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기법 중에 PREP(프랩) 기법이 있습니다. 프랩 기법은 P(Point 주장) - R(Reason 이유) - E(Example 예시나 근거) - P(Point 결론) 구조로 말하는 기법입니다. 맨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확 말해 버리는 것입니다. 일종의 닻 내리기 기법이죠. 이런 기법을 활용하여 시를 쓴 경우도 있습니다. 시는 일반적으로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를 지니는데, 그러나 반대로 닻을 내리듯 핵심적인 내용을 먼저 내세우는 PREP(프랩) 기법을 활용하여 효과를 본 시도 있습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치환, ‘바위’
이 시는 첫 행에서 시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이야기합니다. 첫 행에서 ‘바위’와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행부터는 바위와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그 특징과 유형을 나열합니다. 1행에서 닻을 내리고 2행부터는 ‘바위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닻 내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시가 전개됩니다. 바위와 같은 사람이니까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정’에도 침묵할 수 있고,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을 수 있고, ‘두 쪽으로 깨뜨려지’는 아픔이 있다 하더라도 ‘소리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시는 첫 행에서 시 전체의 내용을 규정하는 닻을 내렸고 2행부터는 닻줄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게 시상이 전개되어 효과적으로 주제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도 ‘닻 내림 효과’를 염두에 두고 읽을 수 있는 시입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이 작품도 첫 연 첫 행에서 ‘껍데기는 가라’고 시의 핵심 내용을 확 말합니다. ‘껍데기는 가라’고 닻을 내리듯 선언을 해 버립니다. ‘껍데기’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남아있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남아있어야 할 첫 번째 대상은 ‘사월의 알맹이’와 ‘동학년 곰나루의 아우성’입니다. 불의에 항거한 민중 정신인 4.19 정신과 동학 정신은 알맹이이고, 피지배층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지배층의 정신은 껍데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연에서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은 남고 ‘쇠붙이’는 가라고 합니다.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가슴을 우리의 땅, 우리의 것이라고 본다면 껍데기는 우리의 것이 아닌 다른 나라의 것, 즉 외세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세는 우리의 것, 우리의 흙가슴을 쇠붙이로 파헤치는 것이기 때문에 ‘가라’고 울분을 토하듯 명령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민중의 위에서 군림하는 지배층의 정신과 우리의 것을 위협하는 외세를 껍데기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가라’고 첫 행에서 닻을 내리듯 외칩니다. 닻을 내렸기 때문에 닻줄을 벗어나는 타협의 여지는 없습니다. 이 시 역시 닻 내림 효과를 활용하여 주제 전달을 극대화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삼국지의 조조(曹操)도 ‘닻 내림 효과’를 알고 이를 이용할 줄 알았습니다. 동탁(董卓)이 어린 황제를 끼고 전횡을 일삼던 후한 말 때의 일입니다. 동탁을 제거하면 일약 정국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동탁을 제거할 계획을 품은 조조는 어느날 아침 느지막이 출근합니다. 동탁이 왜 늦었냐고 묻습니다. 말이 비실비실해서 늦었다고 조조가 대답합니다. 동탁은 호위 무사이자 양아들 여포에게 빠릿빠릿한 말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여포는 말을 가지러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우고, 동탁은 옆으로 비스듬히 눕습니다. 순간 조조는 동탁을 찌르기 위해 가지고 온 보검을 칼집에서 꺼냅니다. 옆으로 돌아누운 동탁은 칼을 뺀 조조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게 됩니다. 동탁은 조조를 향해 몸을 일으키며 ‘뭐 하는 행동이냐’고 묻습니다. 두뇌 회전이 빠른 조조는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보검을 승상께 바치기 위해 검을 꺼내 보았다’고 대답합니다. 그때 여포가 말을 가지고 옵니다. 조조는 그 빠릿빠릿한 말을 타고 줄행랑을 치고 맙니다.
뒤늦게 조조의 의도를 알아차린 동탁은 전국에 조조 체포령을 내립니다. 도망자 조조가 ‘진궁’이라는 사람이 현령으로 있는 어느 고을을 지날 때 진궁에게 체포되어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날 밤 진궁은 옥에 갇힌 조조에게 홀로 찾아가서 ‘그대는 동탁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는데 왜 동탁을 죽이려고 했는가?’라고 묻습니다.
이때 조조의 대답은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리오’라는 닻 내림이었습니다. 이 한마디에 진궁은 현령직을 버리고 조조와 함께 도망자가 됩니다. 만약 진궁의 물음에 조조가 기승전결로 구구절절이 대답했더라면 아마 압송되어 동탁 앞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겁니다. 그러나 조조는 야밤에 홀로 자신을 찾아온 진궁의 심중을 간파하고 자신을 더욱 흠모할 수 있도록 ‘참새와 봉황’으로 닻을 내린 것입니다. 도망 중에 여백사의 가족을 도륙하던 조조의 모습을 본 진궁은 ‘조조는 봉황이 아니다’는 판단으로 조조의 곁을 떠납니다. 진궁이 조조를 떠나기 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진궁은 조조를 봉황으로 인정하게 되었는데, 이는 조조의 ‘참새와 봉황’이라는 닻 내림 효과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의 한마디가 기준점이 되어 이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닻 내림 효과’을 알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써먹을 수 있었던 조조는 영웅인지 간웅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시대를 풍미할 정도로 뛰어난 사람임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