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구간, 산동~주천 2026.03.22
이번 지리산 둘레길 걷기는 순차대로라면 제7구간 순서지만, 산수유꽃 장관을 보여주기 위해 산행대장은 지리산 둘레길 마지막 구간인 21구간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구례군 산동면에서 남원시 주천면을 잇는 구간이다. 산수유 이름만큼이나 정겨운 설렘을 가슴 가득 안고 9시 부산에서 출발하여 11시 40분 산동면사무소에 도착했다. 완연한 봄이다. 봄이 겨울을 저만치 밀어내고 계절의 자리를 차지했다. 산동면사무소부터 산수유꽃으로 울타리를 둘렀다. 면사무소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지리산 둘레길 21구간에 올랐다.
산동면(山洞面)은 중국의 산동성(山東省)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산이 태항산(太行山)인데, 산동성(山東省)이 태항산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되었다. 태항산 서쪽의 성(省)은 산서성(山西省)으로, 황하(黃河) 남쪽은 ‘하남성(河南省)’, 황하 북쪽은 ‘하북성(河北省)’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구례의 산동면은 지리산의 서쪽에 있으니 한자로 산동(山東)이라 쓸 수 없고 ‘산동네’라는 의미의 ‘산동(山洞)’으로 표기한 듯싶다.
국내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답게 산동면사무소를 떠나 둘레길에 오르자마자 노란 물결의 산수유꽃이 지천을 덮었다. 관광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해 놓은 것이 아니라 담장과 밭 둔덕과 산자락에 무더기무더기 산수유꽃이 피어 있어, 산수유는 주민들의 삶의 일부가 된 듯싶었다.
산수유 길에 취해 조금 걸어가니 현천마을이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현천마을의 옛 지명은 ‘개미내’라고 한다. 개미내가 현천마을이 된 과정은 약간의 추리가 필요하다. 추리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바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다.
마을 뒷산인 견두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어둑하고 깊어 보였다고 해서 ‘현천(玄川)’이라고 불렀는데, ‘현(玄)’은 단순히 검은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깊고 그윽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검다’는 말이 ‘거무’, ‘개미’ 등으로 불렸고 이것이 계곡을 뜻하는 ‘내(시내)’와 결합하여 ‘개미내’가 되고 이를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현천(玄川)’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그럴듯한 추리의 영역이다. 마을 뒷산인 견두산의 형세가 개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개미의 모습에 어울리는 한자로 ‘玄’(검을 현)이 있다. ‘玄’에서 ‘검다’라는 의미는 버리고, 한자의 형태가 개미의 모습과 비슷한 ‘玄’을 따서 현천(玄川) 마을이라 명명했다는 추리 또한 약간의 상상을 더하면 가능하다.
현천마을 앞에는 제법 큰 규모의 저수지가 물을 가득 담고 있었다. 현천제(玄川堤)였다. 저수지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수면에 띄우고 탐방객의 눈을 호사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수면의 풍광과 함께 저 멀리 지리산 서북 능선의 한 축을 담당한 만복대, 고리봉, 노고단이 높이를 다투듯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저수지 둑을 걸었다. 걷는 재미와 보는 감동이 발끝에서 가슴으로 밀려왔다. 지리산 서북 능선의 봉우리들은 우리 일행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따라와 다정한 동행자임을 알아달라는 듯했다. 저수지 옆 정갈하게 조성된 묘지 주위에서 준비해간 점심을 먹었다. 오찬(午餐)이었다.
산수유 꽃길은 계척마을로 이어졌다. 계척(桂尺)마을은 예전에 계수나무가 많아서 불렸던 이름인 것 같다. 계수나무에서 산수유나무로 마을의 상징이 바뀐 것은 중국 산동성에서 이곳 산동면 계척마을로 시집온 한 처녀 때문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약 1,000년 전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살던 처녀가 구례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 그녀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고향의 산수유나무를 가져와 이곳에 심었는데, 그 나무가 산수유 시목(始木)이고, 이로부터 산수유가 퍼져나가 지금은 구례군 산동면 전체가 산수유 군락지가 되었다.
산수유 시목(始木)은 계척마을 중앙 공원에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었다. 시목을 중심으로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넓은 광장에는 산수유 축제를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산수유꽃에 취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마을 곳곳에는 옛 모습으로 남아 있는 돌담과 집들이 꽃과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산수유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 하루 2리터 이상의 물이 있어야 꽃눈을 터뜨린다고 한다. 잎과 열매가 무성한 여름에는 하루 2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많은 나무들이 그 많은 물을 어디에서 흡입하며 어떤 원리로 가지 끝까지 공급하는지 불가사의하다. 안도현 시인은 ‘살구나무 발전소’라는 시에서 나무에 발전소가 있기 때문에 물도 공급하고 꽃도 피우고 열매도 익게 한다고 했다. 시인의 탁월한 상상력이자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월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때, 덕천강 둑길의 길섶에는 산수유나무가 강둑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잎은 다 떨어지고 말라버린 붉은 열매만이 가지에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던 것을 보았다. 배고픈 겨울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새들이 멀리 날아가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퍼뜨려 주기를 바라는 산수유나무 나름의 계획에서 겨우내 열매를 매달고 있는 것처럼 보였었다. 노란 꽃이 핀 지금도 붉은 열매를 매달고 있는 나무들이 많았다. 작년의 열매와 올해의 꽃이 공존하는 특이한 장면은 산수유가 아니고서는 보기 어려울 듯싶었다.
계척마을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숲길이 나타나고 길은 조금씩 가팔라졌다. 계척마을의 산수유꽃과 이별이 아쉬워 우리 일행은 계척의 산수유꽃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꽃과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길이 가팔라질수록 산수유나무는 자취를 감추고 편백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편백나무는 하늘을 향해 시위하듯 치솟아 있었다. 길은 이제 완전히 편백나무에 점령당한 꼴이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내뿜는 나무로 유명하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자기방어를 위해 내뿜는 항균 물질이다. 피톤치드의 항균 작용은 인체의 면역 세포를 활성화하여 알레르기나 아토피 같은 피부 질환 완화에 도움을 주며, 중추신경계를 안정시켜 심리적 안정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오르막길이었지만 편백나무의 상쾌한 공기 덕분인지 숨이 차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듯 폐를 정화하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편백나무의 향이 온몸에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하늘을 향해 직선으로 솟아 있는 편백나무의 모습과 편백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의 향기가 퍼져있는 숲길을 벗어나자 구불구불 임도가 나타난다.
이 길은 19번 국도로 과거에 차량이 다녔는데, 지금은 ‘밤재 터널’이 뚫려 차량은 터널로 왕래하고, 이 길은 온전히 보행자들의 발품으로 풍광을 보고 청량한 공기를 흡입할 수 있는 둘레길의 명소가 되었다.
풍광에 취해 걷는 사이 밤재에 도착했다.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과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의 경계가 되는 밤재는 예부터 이 고개 주변이 밤나무가 많아 ‘밤재’나 ‘율치(栗峙)’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고개가 높고 험해 길을 가던 나그네들이 해가 지기 전에 넘지 못하고 밤이 되어서야 겨우 넘을 수 있다고 ‘밤재’라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둘 다 상상의 영역에서 보면 타당한 추리이다.
밤재에서 바라본 지리산 서북 능선은 우뚝 솟아 있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이어져 있었다. 마치 파도가 일렁이듯 낮아졌다가 높아졌다가 하면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만복대, 고리봉, 세걸산, 바래봉이 발아래 올망졸망 피어 있는 산수유 노란 꽃들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돌담길의 마을을 인자한 미소로 지켜보고 있는 듯 보였다.
밤재를 지나니 임도는 가팔랐다가 완만하기를 반복했다. 이 길을 걸었을 많은 사람들의 삶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탄탄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밤재처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고 곡절이 있게 마련이다. 그 곡절은 삶의 어려움이기도 하지만 한편 삶의 재미이기도 하다. 탄탄대로는 길로서도, 삶으로서도 얼마나 밋밋한가. 그런 길은 삶의 종착역으로 직행하는 길이다. 삶의 곡절이 있어야 여기도 기웃거려보고 저기에도 시비를 걸어보고 그러는 사이 삶이 다채로워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밤재를 다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평지를 걸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숲속 오솔길의 오르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이나 인생이나 또 하나의 오르막을 넘어가는 것이 힘은 들지만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숲길을 올랐다.
길 좌우에 있는 우뚝 솟아 있는 나무들도, 납작 엎드려 아직은 흙 속에 묻혀 있는 풀들도 겨울의 혹독한 추위라는 오르막과 곡절을 건너왔기에 새봄을 맞이하는 기쁨이 더욱 클 것이고, 새봄을 지나 강렬한 햇빛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곡절을 건너면서 더욱 튼튼하고 더욱 길찬 나무가 되고 풀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식물이나 사람이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숲속 오솔길을 오르내렸다.
그러는 사이 선두에 있어야 할 산행 대장이 산비탈에서 허리를 잔뜩 숙이고 휴대폰을 바닥에 대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땅에 붙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산꽃을 찍고 있었다. ‘청노루귀’라는 꽃이었다. 노루귀처럼 쫑긋하다고 붙여진 이름이었다.
겨우내 웅크리고 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온 힘을 다해 흙을 뚫고 올라온 앙증맞은 모습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의 작은 손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연약한 꽃이 다른 풀들이 고개를 내밀기 전에 꽃을 피웠다. 이것은 청노루귀의 생존 전략인 듯싶었다. 너무나 작기 때문에 주변의 풀들이 자라기 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종족을 보존할 수 있다는 청노루귀의 계산이 대를 거듭하면서 유전되었으리라.
청노루귀의 생명력을 간직한 숲길에는 솔잎이 가득 깔려 있었다. 푹신한 솔잎 향기가 발밑으로부터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솔갈비는 예전에 땔감으로 인기가 좋았다. 솔갈비는 천천히 타면서도 화력이 좋아 가성비가 최고다. 그래서 아이들도 갈고리를 들고 산에 가 종다래끼 가득 솔갈비를 긁어오곤 했다. 그 시절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땔감의 변화가 솔갈비에 얽힌 사연과 솔갈비의 화력을 추억 속으로 밀어 넣은 꼴이 되었다.
솔갈비의 추억을 떠올리며 걷는 사이 용궁마을에 도착했다. 용궁(龍宮)마을은 지리산 계곡에 용이 살만한 깊은 소(沼)가 많아 용궁이라 명명했을 수도 있고, 마을 뒷산의 형세가 용이 꿈틀거리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용궁마을이라 명명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비록 산골에서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마음만은 어느 궁궐보다 풍요롭게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용궁마을로 명명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용궁마을에도 산수유곷이 지천으로 피어 있어 마치 상상 속의 용궁을 연상케 했다.
용궁마을에는 장안제(長安堤)라는 저수지가 물을 가득 담고 있었다. 동행한 ‘만구님’은 저수지를 일컫는 명칭으로 ‘제(堤)’와 ‘지(池)’가 있다고 했다. 제(堤)는 국가적 차원에서 둑을 쌓아 물을 가둔 곳을 말하는데, ‘둑’에 초점을 둔 저수지를 말한다. 김제의 벽골제(碧骨堤)가 대표적이다. 반면에 지(池)는 둑을 높게 쌓기보다는 땅을 파내어 물을 모은 형태로 국가적 차원에서 조성했다기보다 마을 단위에서 조성한 저수지를 말한다. 경주의 안압지(雁鴨池)가 대표적이다. 그러고 보니 장안제는 둑의 규모가 굉장했고, 저수량도 상당했다. 장안제의 한구석에서 강태공 몇 명이 봄꽃을 즐기듯 손맛을 즐기고 있었다.
산수유꽃은 용궁마을과 외평마을을 이어주었다. 외평마을에 들어서니 관공서를 연상케 하는 현대식 건물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원천초등학교다. 초등학교의 가장자리를 따라 학교만큼이나 맑고 깨끗한 도랑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일행은 산행에 지친 발을 도랑물에 담그고 피곤을 씻었다. 도랑을 따라 돌아가니 원촌초등학교의 운동장과 함께 현대식 학교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겉모습으로 보아 규모가 상당한 학교였다. 학생수가 얼마나 되는지 학교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았다. 2025학년도 기준으로 학생수는 총 42명, 교원수는 총 11명으로 나와 있었다. 이렇게 좋은 시설에서 더 많은 학생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아 미래에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훌륭한 인재가 배출되기를 기원하며 종점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원천초등학교가 미래 인재의 요람이 되길 바라면서 걷는 사이에 지리산 둘레길 21구간의 종점이자 1구간의 시점인 주천마을에 도착했다. 지리산 둘레길 첫발을 디딜 때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가을비를 맞으며 걷던 길이 벌써 겨울을 지나 새봄으로 접어드는 길이 되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풍경은 바뀌었지만 둘레길을 걷는 마음은 늘 설레고 감동적이다.
둘레길의 감동과 별개로 오늘 걷기를 마쳤다는 신호로 시장기가 몰려왔다. 저녁은 ‘고추장 더덕 장어구이’로 유명한 ‘삼포가든’에서 먹었다. 맛도 양도 인심도 푸짐했다. 배가 든든했다. 집에 도착하니 21시 20분이었다. 만보기에 32,000보가 찍혔다.
산수유꽃도 길도 너무나 좋은 구간이었다. 좋은 길과 맛있는 집 안내해 준 산행대장께 감사 인사들 드린다. 좋은 길 함께 한 일행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