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

by 인문학 이야기꾼

종족 보존을 위해 숙주를 조종하는 기생충이 있습니다. 뇌충이죠. 이 뇌충은 개미의 배 속에 수십 마리가 살고 있는데, 번식은 양의 배 속에서 합니다. 뇌충이 번식기가 되면 수십 마리 중 한 마리가 개미의 뇌로 이동해 개미의 신경 계통을 교란시켜 개미의 행동을 조종합니다. 뇌충에 의해 감염된 개미는 양이 좋아하는 풀 위에 올라가 양이 풀을 뜯어 먹을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풀 위에 앉아 있습니다. 개미는 이 뇌충에 자신의 행동을 조종당한 거죠. 양이 풀을 뜯어 먹으면 양의 배 속에 들어가 번식에 성공합니다. 뇌충은 양의 변을 먹은 개미의 배 속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실컷 놀다가 또 번식기가 되면 개미를 조종해 풀 위로 올라가게 하고 양이 풀을 먹고……. 중앙일보에 연재된 ‘조현욱의 과학산책’에서 인용했는데 약간 각색했습니다.


뇌충의 일생을 보면 평범합니다. 그러나 종족을 보존하는 방식이 평범해 보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인간의 시각으로는 평범해 보이지 않죠. 개미의 배 속에 뇌충 수십 마리가 있으니 뇌충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됩니다. 그렇게 작은 놈이 어떻게 양의 배 속으로 들어가는지가 평범하지 않습니다. 수십 마리 중 어떻게 한 마리만 개미의 뇌로 이동하겠습니까? 개미의 뇌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이동합니까. 또 그 한 마리를 어떻게 정합니까. 가위바위보로 정하겠습니까? 평범하지 않습니다. 개미는 양이 좋아하는 풀을 어떻게 알고 풀 위에 올라갑니까. 그렇게 부지런한 개미가 양이 풀을 먹을 때까지 꼼짝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떻게 평범합니까. 이렇게 특이한 삶을 평범하다고 여기고 생사를 반복하는 뇌충은 분명 비범한 존재입니다.


아프리카 ‘나미브 사막’은 연평균 강수량 50mm 이하이며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낮에는 지표면의 온도가 40℃까지 올라가는 척박한 땅입니다. 여기에 엄지손톱 크기의 ‘거저리’라는 딱정벌레가 삽니다. 거저리는 해가 뜨기 전에 300m 높이의 사막 정상으로 올라갑니다. 정상에서 물구나무를 섭니다. 등껍질에 안개의 수증기가 조금씩 달라붙어 물방울이 맺힙니다. 물방울이 흘러내려 입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목을 축이고는 다시 내려왔다가 다음날 또 올라갑니다.

우리가 아침에 세수하고 밥먹듯이 거저리의 삶도 참으로 평범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눈으로 보면 거저리의 삶이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1.5cm 정도 크기의 거저리가 어떻게 300m 높이를 매일 올라갑니까? 사막의 정상에 가야 이슬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합니다. 물구나무는 누구에게 배웠는지도 궁금합니다. 힘든데 정상에서 내려오지 말고 계속 정상에 머물 수는 없는지 물어보고도 싶습니다. 누구에게는 일상이 누구에게는 결코 평범한 일상이 아닙니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가 소개하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의 한 장면을 보겠습니다. ‘그냥 한 번 걸어봤다’라는 제목이 붙은 글입니다.


“버스 안에서 일흔쯤 돼 보이는 어르신이 휴대전화를 매만지며 ‘휴~’ 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는 모습을 보았다. 어찌된 일인지 창밖 풍경과 전화기를 번갈아 바라보기만 할 뿐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어르신은 조심스레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우연히 통화 내용을 엿들었는데 시집간 딸에게 전화를 거는 듯했다. “아비다. 잘 지내? 한 번 걸어봤다.” -『언어의 온도』 중에서


아버지가 시집간 딸에게 거는 전화입니다. 그냥 한 번 걸어본 전화입니다. 일상적이고 평범해 보입니다. ‘그냥’이란 말은 아무 용건이 없다는 것이죠. 진짜 그냥 걸어본 전화이겠습니까? 평범한 말이지만 아버지는 오랫동안 딸의 소식을 몰라 궁금했던 거죠. 손자 손녀도 보고 싶습니다. 딸의 사정을 모르는데 용건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냥 한 번 걸어봤다’는 말에서 딸을 배려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잘 지내는지 목소리만 들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냥’이란 평범한 말에 녹아 있는 아버지의 진심을 알아차리고 주말에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친정 나들이하는 딸을 기대해 봅니다.

평범한 듯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시,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의 한 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황동규, ‘즐거운 편지’ 중에서


화자가 그대를 생각하는 것은 너무 사소합니다. 해가 지고 바람 부는 것처럼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해가 지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지구의 한쪽은 항상 낮이고 한쪽은 항상 밤이 되죠.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합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해가 뜨고 지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바람도 잠시도 쉬지 않고 붑니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것은 잠시도 쉴 수 없습니다. 화자는 그대 생각을 잠시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밥 먹을 때도 생각하고 잠잘 때도 생각하고 하루 86,400초 동안 생각합니다.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습니다. 뇌충과 거저리의 삶만 비범한 것이 아니라 화자가 그대를 생각하는 것도 비범한 것이죠.

‘평범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고, 비범해 보이지만 비범하지 않은 삶이 너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