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平凡)을 비범(非凡)하게 보는 방법

by 인문학 이야기꾼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입니다. 연암은 세계적인 대국으로 발전한 청나라의 실상을 직접 보고 『열하일기(熱河日記)』라는 기행 견문록을 생생하게 기록합니다. 소설보다 더 리얼한 기록, 고문(古文)을 본받지 않은 자유분방한 문체로 이 책은 지금도 많이 읽힙니다. 연암은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전하는 ‘허생전’, ‘호질’ 뿐만 아니라 단편소설집인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에 ‘양반전’, ‘예덕선생전’, ‘광문자전’ 등 많은 한문 소설을 남깁니다.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을 살펴보겠습니다.

‘선귤자’라는 선비에게 ‘예덕선생(穢德先生)’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인분(人糞)을 쳐 내는 것을 생업으로 하고 있죠. 마을에서는 그를 ‘엄행수’라고 부릅니다. 선귤자의 제자인 ‘자목’이 미천한 신분의 엄행수와 벗이 된 스승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문하(門下)를 떠나고자 합니다. 이에 선귤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엄행수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뒷간에서 사람 똥, 마굿간에서 말똥, 외양간에서 소똥, 집안 구석구석에서 닭똥, 개똥 등을 치는 데 최선을 다한다. 마을 사람 누구도 그에게 염치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부귀를 부러워하지 않고 칭찬을 영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그의 분뇨를 가지고 농사를 지어 많은 돈을 벌어도 그는 욕심을 내지 않고 밥 한 그릇으로 만족한다. 그래서 엄행수를 이름을 부르지 않고 선생이라 부른다.”

이어서

“시정잡배들은 벗을 계급과 이익으로 사귀는데, 이익이 다하면 이들의 친구 관계도 끊어진다. 진정한 친구는 덕이 높은 친구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사람이다. 엄행수야 말로 진정한 친구이자 스승이다.”

라고 제자 자목에게 이야기하죠.

예(穢)는 ‘더러울 예’입니다. ‘예덕’은 더러운 것으로 덕을 쌓아 간다는 뜻이지요. 엄행수는 조선 후기 평범한 하층민입니다. 누구의 눈에나 평범하다 못해 미천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연암 박지원의 눈에는 비범하게 보입니다. 이익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당시 세태와 다르게 엄행수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삶에 만족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엄행수야말로 본받을 만하며 스승의 자격이 있다고 본 겁니다.


평범한 사람을 비범하게 보는 것은 연암이라는 작가의 안목입니다. ‘호질(虎叱)’이란 소설에서 유학자로 소문난 ‘북곽선생’은 열녀로 소문난 ‘동리자’라는 과부와 불륜 현장을 ‘동리자’의 아들들에게 들킵니다. 도망치다가 분뇨통에 빠지게 되죠. 표리부동한 당시 양반들이 연암의 눈에는 어쩌면 분뇨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분뇨와 같은 양반들의 위선과 허세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엄행수와 같은 내실 있는 사람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생각을 연암은 했을지 모릅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위도식하는 양반들에게 분뇨를 치더라도 실생활과 관련된 일을 하라고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을 보는 작가의 비범한 안목을 따라 소설을 읽는 것이 우리의 눈을 비범하게 만드는 방법이 되겠지요.

황지우 시인의 ‘심인(尋人)’이라는 시도 평범한 삶을 형상화했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게 읽힙니다.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

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1551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조순혜’ 21세 아버지가

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와라

내가 잘못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

-황지우, ‘심인(尋人)’


화자는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습니다. 사람을 찾는 광고를 보고 있죠. 제목 ‘심인(尋人)’은 ‘사람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화장실에 앉아서 신문을 보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합니다. 시인은 신문에 게재된 광고 3편을 나란히 인용했을 뿐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시의 방식은 아니지만 시인은 훌륭한 시로 탄생시켰습니다.

광고의 내용은 심각합니다. ‘김종수’라는 청년은 가출했습니다. 연락이 안 됩니다. 행방불명으로 볼 수도 있죠. 입대 영장이 나왔다는 것은 청년을 돌아오게 하기 위한 거짓말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연락이 두절된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입대 영장은 위압감을 줍니다. 이 청년이 살아있다면, 그리고 이 광고를 본다면 반드시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입대 영장이라는 공권력에 저항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광필’과 ‘조순혜’의 부모님도 가출한 자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다 지쳐 어머니가 위독한 지경에 이릅니다. ‘어머니의 위독’, ‘아버지의 사과’는 가출한 이들이 돌아오게 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가출한 이들이 광고를 본다면 꼭 돌아올 겁니다.

가출한 이들의 가족은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는지도 모릅니다. 이 시는 1983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그 시대와 1연의 ‘80년 5월 이후 가출’이라는 말로 보아 행방불명된 이들은 ‘5.18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광고를 낸 사람들은 심각하게 사람을 찾는데 화자는 화장실에 앉아서 볼일을 보고 있습니다. 자식이 죽었을 지도 모르는 심각한 사건과 화자의 볼일을 나란히 두고 있죠. 이는 다른 사람의 불행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시적 장치가 됩니다.

시인은 신문 광고라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재료를 사용하여 결코 평범하지 않은 시대 상황과 가족 상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진실이 외면되는 시대에 대한 작가의 현실 인식에 독자들이 공감하고 참여해 주기를 시인은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인의 의도를 따라 시를 읽는 것이 평범하게 읽을 수 있는 시를 비범하게 읽는 방법이 됩니다.

이문재 시인의 ‘농담’도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게 읽힙니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재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문재, ‘농담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을 때 같이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면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겁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도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면 강한 사람이거나 외로운 사람이라는 거죠. 종은 세게 칠수록 소리가 멀리 갑니다. 사람도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이니까요. 여기까지는 평범하게 읽힙니다. 그런데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풍경이 왜 종의 아픔과 연결되었는지는 평범하게 읽히지 않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 다음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자신과 같은 맛을 느낀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내게 맛있는 음식이 그 사람에게도 맛있는지는 더 고민하고 알아보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그 사람이 생각나 다음에 그 사람과 같이 풍경을 보러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바쁜 사람이라 풍경을 보러 갈 시간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해 주기 위해서 나는 더 고민해야 합니다. 좀 더 아프게 고민해야 하죠. 그 사람과 더 멀리 더 깊이 사랑하고 싶다면 내가 좀 아프더라도 그 사람 편에서 생각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읽으면 평범한 읽기가 아닙니다. 평범한 시를 평범하지 않게 읽은 게 됩니다.

그런데 제목이 ‘농담’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말고, 좋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라는 것으로, 이 시를 평범하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은 그저 농담으로 받아들이라는 거죠. 역으로 농담으로 읽지 말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진짜 사랑은 음식 하나에도 풍경 하나에도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시인의 간곡한 진심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제목의 농담은 농담(弄談)이 아니라 농담(濃淡)일 수도 있습니다. 음식과 풍경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진한 사랑을 하는 것으로 읽으면 그것은 농담(濃淡)의 ‘농(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의 농도가 옅다는 거죠. 농담(濃淡)의 ‘담(淡)’이 됩니다. 시는 시를 읽을 때는 평범하게 읽지 말고 이리저리 상상하면서 읽으라는 것은 시인의 배려입니다. 시인의 배려를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 비범하게 읽는 방법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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