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 속에서 찾은 비범한 능력

by 인문학 이야기꾼

『삼국지(三國志)』 ‘적벽대전’의 백미(白眉)는 제갈량의 동남풍입니다. 유비와 손권 연합군은 조조의 100만 대군과 양자강(揚子江)을 사이에 두고 맞섭니다. 유비의 제갈량과 손권의 주유는 화공(火攻)으로 적을 깨트릴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때가 겨울이라 조조가 있는 북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옵니다. 동남풍으로 바람 방향을 바꾸어야 화공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갈량이 바람 방향을 바꾸겠다면서 단을 쌓고 그 위에서 바람 방향을 바꾸는 신통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바람 방향이 바뀝니다. 조조의 100만 대군은 양자강의 드넓은 강물에서 불귀의 혼이 됩니다.

제갈량이 신통력으로 동남풍을 불게 했을까요? 아닙니다. 겨울이라도 하루 이틀은 동남풍이 분다는 것을 제갈량은 수 년 동안 관찰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주유가 연합군으로서 제갈량에게 화살 10만 개를 10일 안에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을 때 3일 내로 만들어 주겠다고 군령장으로 약속을 합니다. 손권 진영의 노숙은 제갈량에 우호적인지라 노심초사합니다. 3일 안에 화살 10만 개는 제갈량의 목숨과 같은 것이니까요. 3일째 되는 날 양자강에 안개가 자욱하게 낍니다. 제갈량은 배 수십 척을 짚단으로 덮고 북을 울리며 조조 진영으로 다가갑니다. 수전(水戰)에 약한 조조가 적의 공격으로 알고 10만 개가 훨씬 넘는 화살을 쏘아댑니다.

노숙이 제갈량에게 ‘오늘 안개가 낄 것을 알았냐?’고 묻습니다. ‘이때까지 관찰한 바를 토대로 알았다’고 합니다. 제갈량은 안개를 끼게 하고 바람 방향을 바꾸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던 비범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평소의 관찰과 공부로 안 겁니다. 처음부터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평범한 공부가 누적되어 남들이 볼 때 비범한 능력이 된 것입니다.

문정희 시인은 ‘나무 학교’라는 시에서 나무의 비범한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놓을 때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하며 나무를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문정희, ‘나무 학교’


나무는 태풍의 여름을 이겨내고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내공을 내면에 차곡차곡 원으로 새길 뿐, 결코 자랑하지 않습니다. 나이를 앞세워 이익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리다고 보호를 받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더위에 지친 길손을 위해 나무는 자신의 온몸으로 태양을 막아 주지만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겨울이 되면 스스로 잎을 떨구면서 내년의 울창함을 기약할 뿐 내색하지 않습니다.

제 눈에는 나무가 너무 평범하게 보입니다. 잎이 나고 잎이 지고 한 해가 지고 또 잎이 나고, 바람에 흔들리고, 더욱 심한 바람에는 ‘툭’하고 가지 하나 꺾어주는 모습이 너무 평범해 보입니다. 평범하게 보이는 것도 시인의 눈에는 비범하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밑둥치 잘린 나무에서 해마다 새겨둔 나무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 비범함을 제게 알려줍니다. 나무는 길손도 없는 혹한 속에서의 외로움을 촘촘하게 기록합니다. 가을의 낭만도 기록합니다. 어렸을 때 품었던 희망도 기록해 두었습니다. 내년의 다짐도 속에다 새겨 두었습니다. 그런 평범함의 기록들이 모여 비범함을 만든다는 것을 저는 ‘나무 학교’에서 배웁니다.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공자(孔子)의 제자인 자로(子路)가 석문에서 묵었는데, 새벽에 성문지기가 ‘어디에서 왔냐’고 묻습니다. ‘공자 댁에서 왔다’고 하자 성문지기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끝까지 해보는 그분 말이지요[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시지기불가이위지자여)]”라고 말합니다.

공자(孔子)도 비범해 보이지만 줄넘기의 달인처럼 평범한 사람입니다. 줄넘기의 달인에게 줄넘기는 평범한 일상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모아 달인의 경지에 오른 것이죠. 공자의 공부와 예법과 삶이 비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공자에게는 평범한 일상일 뿐입니다. 가능한 것만을 가려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도 끝까지 합니다. 일상이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이상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알았지만 13년 동안이나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 주유천하한 공자의 행위는 독자가 볼 때는 비범해 보이지만 공자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공자를 성인(聖人)이 되게 한 것이죠.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실천한 노력파 공자는 처음부터 비범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인터넷 서핑을 통해 만난 작품 하나 더 보겠습니다. 엄지용 님의 ‘다음부터’라는 작품은 평범한 일상에 대한 말 걸기입니다.

이번까지만 이렇게 하고

다음부턴 이러지 말아야지

라며 버려버린 시간들이

언젠간 한데 모여

우린 뭐 네 인생 아니었냐고 따져 물어올 것만 같다.

- 엄지용, ‘다음부터’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있죠. 결심이 사흘을 가지 못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내일부터 금연해야지. 내일부터 중국어 공부해야지. 새해부터 운동해야지. 이런 결심들을 수없이 합니다. 3일까지는 결심대로 합니다. 포기하고 또 결심하죠. 조금 하다가 포기하고 만 시간들도 소중한 내 인생입니다. 평범한 우리의 인생이죠. 이런 평범이 모여 비범함을 만듭니다. 다음부터의 시간들만 비범의 시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번까지의 시간들을 한데 모으면 동남풍을 일으킬 수 있는 비범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인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자신의 비범함이 어디 있는지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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