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길이 모랫길이 되기까지

간절함의 정도

by 인문학 이야기꾼

조선시대 ‘이옥봉(李玉峰)’이라는 여류작가의 ‘몽혼(夢魂)’이라는 7언절구는 돌길이 모랫길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짐작하게 합니다.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요즈음 어찌 지내시는지요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달빛 드는 창가에 저의 한이 깊습니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만약 꿈속의 넋이 오가는 자취를 남긴다면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그대 문 앞 돌길이 반은 모래가 되었을 겁니다.

-이옥봉, ‘몽혼(夢魂)’


‘이옥봉’은 서녀(庶女)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시문(詩文)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서녀라는 신분의 굴레는 그녀를 독신녀로 살게 만듭니다. 옥봉은 당시 문인들과 교류하며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옥봉은 첩이 되기 싫어 결혼을 거부했으나 ‘조원’이라는 선비를 만나 첩이 되겠다고 자청합니다. 조원은 이옥봉을 받아들이면서 다시는 시를 짓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옥봉에게 어떤 아낙네가 찾아와 자기 남편이 도둑의 누명을 쓰고 잡혀갔으니 도와달라고 합니다. 옥봉은 남편에게 부탁할 수 없어서 직접 시 한 수를 써서 해당 관청에 보냅니다. 시를 본 관원은 아낙네의 남편을 풀어주고 조원에게 이 사실을 말하게 됩니다. 조원은 옥봉이 약속을 어긴 점과, 함부로 관청일에 관여했음을 크게 꾸짖고 친정으로 돌려보내고 다시는 부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뒤 안부가 궁금합니다. 불러주지 않는 임이 야속합니다. 한이 깊어갑니다. 그러나 그리움도 사무칩니다. 날마다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임의 집 앞에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돌길이 모래가 될 정도로 임의 집을 찾았습니다. 돌길이 모래가 되는 것은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날마다 하루에도 몇십 번씩 임의 집을 찾았습니다. 돌길이 닳아 모래가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화자에게는 평범한 일상입니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평범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비범을 평범으로 만든 화자의 애절함은 사랑을 해 본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본 사람에는 절규처럼 들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향하는 간절한 마음이 돌길을 모랫길로 만든 것입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만난 김현태 님의 ‘첫사랑’도 읽어보겠습니다.


눈을 다 감고도

갈 수 있느냐고

비탈길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답했다


두 발 없이도

아니, 길이 없어도

나는 그대에게 갈 수 있다고

-김현태, ‘첫사랑’


그대를 향한 그리움이 화자에게 눈을 감고도 갈 수 있고, 발이 없어도 갈 수 있고, 길이 없어도 갈 수 있게 만듭니다. 사랑의 힘이죠. 비탈길을 평지로 만들고 없는 길을 고속도로로 만드는 이런 힘이 사랑의 힘입니다. TV 드라마를 보면 종종 사랑보다 조건이 우위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식의 사랑론과 부모의 현실론이 갈등의 중심 축이 되는 드라마죠.

사랑의 힘을 어찌 부모의 현실론이 이길 수 있겠는지요? 아들의 비범한 사랑을 부모는 평범하다고 봅니다. 평범 이하라고 보죠. 아들의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눈이 평범하니 평범을 따르라고 강요합니다. 길이 없어도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아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할 뜻이 없습니다. 두 발이 없이도 갈 수 있는 아들의 간절함을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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