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 생각하기

by 인문학 이야기꾼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는데도 학생들은 여기저기에서 쉬는 시간의 이야기들을 이어갑니다. 고등학교 교실의 일상적인 풍경입니다. 이때 저는 “야! 거기! 서서 떠들고 있는 갑수, 을수, 병수, 너희 세 명!”하고 약간 뜸을 들이면 학생들은 순간 조용해집니다. 세 명이 앞으로 불려 나가서 어떤 꾸중을 들을까 기대하기 때문이죠. “너희 세 명! 빨리 자리에 앉아!”라고 합니다. 교실은 잠시 웃음으로 얼룩집니다. 학생들의 기대와 다른 말이 이어졌기 때문이죠.

수업이 한창인데 한 학생이 “선생님! 저 화장실 좀 빨리 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안 돼!” 하고 또 약간의 뜸을 들입니다. 학생들은 안 되는 이유를 기다립니다. ‘쉬는 시간에 뭐하고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려는 거야?’ 등의 상상을 하죠. 이때 저는 “빨리 갔다 오지 말고 천천히 갔다 와!” 라고 합니다. 학생들은 또 한번 웃음꽃을 피웁니다. 수업 분위기가 조금은 헐거워지지만 한층 부드러워집니다.

수업 시간에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 화장실은 쉬는 시간에 가야 한다는 것 등은 상식입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 볼 수도 있죠. 종소리가 울려 수업이 시작은 되었지만 쉬는 시간의 대화는 마무리해야 하는 것도,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것도 상식일 수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는 한참 훈계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쉬는 시간까지 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업 시간에 화장실 못 가게 하면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상식이 편견이 될 수 있고 편견이 상식이 될 수도 있는 인식의 시대에 와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머리에 나야 할 뿔이 엉덩이에 났습니다. 평소에도 이 송아지가 미운데 뿔까지 엉덩이에 났으니 얼마나 더 밉겠습니까? 그래서 이 속담은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교만하게 굴거나 더욱 엇나감을 이르는 말’로 쓰이죠. 그런데 진짜 엉덩이에 뿔 난 송아지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앞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정철 카피라이터의 『한글자』라는 책에 ‘뿔’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머리에 뿔 난 착한 송아지는

기껏해야 한 근에 5만 원이지만


엉덩이에 뿔 난 송아지는

부르는 게 값이다.


다름이 가치다.


내겐 어떤 다름이 삐죽 속아 있는지

온몸 구석구석 더듬어 볼 것.

-정철, ‘뿔’


엉덩이에 뿔 난 송아지는 부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입니다. 행실이 바르지 않아 안 그래도 미운데 외모까지 보태니 얼마나 더 밉겠습니까? 이런 우리의 상식을 ‘정철’ 작가는 편견이라고 질타합니다. 남들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상식이고 상식은 보편적 가치일 뿐이지만,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편견으로 불리지만 무한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엉덩이에 뿔 난 송아지’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기에 무한의 가치를 지니듯,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생각은 편견일 수 있지만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편견이, 그런 가치가 있는지 온몸을 더듬어 찾아보라고 정철 작가는 말합니다.

학년말이 되면 대분분의 학교에서 축제를 합니다. 학생들은 1년 동안의 동아리 활동의 성과를 전시나 공연으로 보여주죠. 저는 축제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합니다. 교실에서 수업 시간에 그렇게 조용하고, 어쩌면 무기력하게까지 보이던 학생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부르고 춤출 때의 폭발적인 에너지 때문입니다. 이럴 때마다 저는 저의 편견을 반성합니다. 물고기에게 달리기를 시켜서 달리지 못하면 무능하다고 낙인찍는 교육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를 산에서 경주를 시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어떻고, 평가가 어떻고 정신없이 학사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물고기에게 달리기를 못한다고 소리치는 것이 저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학교 축제는 학생에 대한 편견을 새로운 가치로 바꾸어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어느 의학 박사님이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한 유튜브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근무 시간에 손을 10번 이상 씻어야 안심이 되는 분이 내원했답니다. 너무 자주 손을 씻으니 둉료 직원들 눈치도 보이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손씻기 횟수를 줄이려고 하니 이번에는 마음이 불안해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벽증이 있다고 판단하고 뒤집어서 역으로 처방을 했답니다. 근무 시간에 10번이 아니라 20번 이상 손씻기를 하라고 말입니다. 10번도 눈치보이는데 20번을 어떻게 하느냐고 처음에는 처방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박사님의 강한 권고로 20번을 씻기로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해 보았다고 합니다.

10번을 씻을 때는 증상에 끌려 손을 씻게 되었는데, 20번을 씻으니 자신이 증상의 주인이 되어 씻게 되더라는 겁니다. 증상이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증상을 통제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자신이 씻고 싶을 때 씻게 되니까 이제 5번만 씻어도 불안하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뒤집어 생각한 것이 치료에도 빛을 발하게 되었죠. 이것이 편견의 가치가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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