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을 만들 때 종이 깨지지 않고 좋은 소리를 내도록 짐승의 피를 바르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흔종(釁鍾)’이라고 합니다. 『맹자(孟子)』 ‘양혜왕 상편(梁惠王上篇)’의 이야기 한 토막을 보겠습니다.
제선왕(齊宣王)이 ‘자신도 백성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맹자에게 묻습니다. 이에 맹자는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무엇을 보고 아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제가 호흘에게 들은 말이 있습니다. 왕께서 당 위에 앉아 계시다가 소를 끌고 당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는냐?’하시니 ‘흔종에 사용하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하니, 왕께서 ‘놓아주어라. 소가 벌벌 떨면서 죄도 없이 사지에 나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라고 하시니 ‘그렇다면 흔종을 그만두라는 말씀입니까?’하니, 왕께서 ‘아니다.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하셨다는데 과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왕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맹자는 “소를 불쌍히 여기는 이런 어진 마음이면 족히 왕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맹자는 대상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왕이 가져야 되는 것으로 보았고, 이런 마음을 백성에게 베풀 수 있으면 어진 왕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왕이 흔종에 쓰이는 소를 직접 보았기 때문에 불쌍한 마음이 일어났고, 양은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불쌍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고도 맹자는 말합니다. 짐승을 죽이는 장면을 보았다면 그 고기를 먹지 못하겠지만 도살장을 멀리하여 죽이는 장면을 보지 않았다면 그 고기를 먹어도 괜찮다는 논리를 맹자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푸줏간을 멀리해야 한다고까지 맹자는 말합니다.
맹자의 논리에 대해 장자(莊子)는 다른 생각을 합니다. 『장자(莊子)-열어구편(列禦寇篇)』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장자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제자들은 스승님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려고 했습니다. 이에 장자는 “하늘과 땅을 관과 관 뚜껑으로 삼고 해와 달을 장식품으로 삼으면 장례 용품은 다 갖추어진 것 아니냐?”고 하면서 장례를 성대하게 하지 말라고 하죠. 그러자 제자들이 “까마귀나 솔개가 스승님의 시신을 파먹을 것이 두렵습니다.”라고 합니다. 이에 장자는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고 땅 밑에 있으면 땅강아지나 개미의 밥이 된다.”고 하면서 제자들의 편견을 나무랍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모습을 측은하게 생각한다면 역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의 모습도 측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장자의 관점이지요. 눈에 보인다고 측은하게 여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측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편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맹자의 관점을 버리고 장자의 관점을 따라야 할까요? 장자의 관점을 따르게 되면 우리는 육식과 결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맹자의 관점도 뒤집어 생각해보고 장자의 관점도 뒤집어 생각해 보아야 하겠지요. 뒤집어 생각할 수도 있는데 한쪽만 생각하는 것이 고정관념일 수 있고 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철 작가의 『한글자』에 수록된 ‘칼’을 읽으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낭비란
비싼 칼을 사는 게 아니라
비싼 칼을 사서
칼집 속에 가둬 두는 것이다.
가격은
파는 사람 마음이지만
가치는
사는 사람에 의해 다시 매겨진다.
-정철, ‘칼’
‘낭비’에 대한 편견을 지적한 글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전적 의미의 낭비가 편견인지, 위 작품의 ‘낭비’가 편견인지 확정할 수는 없지만 ‘낭비’라는 의미가 위 작품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비싼 옷 한 벌 샀습니다. 상식으로 보면 비싼 옷을 사는 것 자체가 낭비일 수 있습니다. 비싼 옷을 샀으니 막 입기가 아까워 아껴둡니다. 반지나 시계, 명품 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정철’ 작가는 이것이 낭비라는 겁니다. 비싸게 샀으면 비싼 만큼 많이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 소비라는 것이죠. 낭비에 대한 저의 고정관념을 뒤집어 놓습니다.
경주박물관에 걸려 있는, 신비의 울음소리를 간직하고 있다는 ‘성덕대왕신종’은 현재 타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타종할 경우 종에 충격을 주어 훼손이 우려된다는 겁니다. ‘종은 칠수록 생명이 길어진다.’와 ‘종은 칠수록 훼손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이라는 작품으로 보면 종을 치지 않고 그냥 매달아 두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은 분명해 보입니다.